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미 Oct 26. 2020

이불 킥(Kick)

  홀에는 드럼통 테이블 여남은 개가 흩어져 있고, 먼저 온 친척들은 이미 서너 명씩 자리를 잡아 고기를 구우며 왁자지껄하다. 40명이랬다.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자식 대인 우리들까지 합한 숫자가 그렇다고 장손인 사촌오빠가 알려줬다. 이제는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멀리 살아 못 온 친척도 있어서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외갓집 행사가 있을라치면 당신네 친정 식구까지 함께 불러 모으기 좋아하는 외숙모 탓에 식당 안은 사돈들이 결혼식인 듯 섞여 있었다. 사실, 잔칫날에도 양쪽은 각자 행사를 치른다. 외숙모의 궁색한 레퍼토리도 한결같다. “길에서 만나면 누군지도 모를 거야! 시비가 붙어 실컷 싸우고 나서, 알고 보니 사돈이었다면 서로 얼마나 민망하겠어!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얼굴이라도 익혀둬야 하는 거라니까!” ‘길가다 사돈 사이에 시비 붙어 싸울 확률이 그렇게 높았던가?’ 속으론 삐죽거렸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기도 하는지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당뇨와 관절염으로 거동이 편치 않은 엄마를 모시고 빈 테이블 앞에 앉자, 외사촌들이 고기며 반찬이며 음식을 차려주느라 분주하다. 엄마를 향해 별일 없으신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싹싹하기도 하다. 조카들이 물어오는 안부인사에 엄마는 당신이 지금 얼마나 몸이 아픈지 설명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사촌들은 예상한 답이라는 듯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운동이 최고라는 같은 처방을 내린다. 이런 걸 바라셨던 걸까?      


  외삼촌의 미수(米壽) 잔치를 위해 사촌오빠는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넣었다. 엄마에게도 당연히 연락이 갔고 모임 날짜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사촌오빠는 당신을 데리러 오라는 고모의 성화에 못 이겨 퇴근 후 모시러 갔다. 그렇게 엄마는 ‘친정오빠’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추워서 더 있으래도 못 있겠다.”는 우리 집에 연락도 없이 나흘 먼저 도착하셨다. 그리고 일각이 여삼추인 듯 그 날을 기다리셨다. 모임 시간이 12시라도 좀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며 출발을 서두르던 마음을 선선히 헤아리려 애쓴다. 혼자 사시는 데다, 몸도 불편해 하루 종일 TV 앞에만 앉아계시는 지루한 일상이니, 동기간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기다려지셨을까 싶다가도, 친척들 앞에서 마치 중환자실 환자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일어나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다. 내가 맘이 꼬여 있는 걸게다. 이렇게 또,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제풀에‘인정머리 없는 년’이 되고 만다. 자리가 무르익자, 식구들끼리 앉아있던 테이블의 멤버가 슬슬 바뀐다. 엄마는‘업어 키운’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위문을 받고, 사돈은 또 다른 사돈과 섞여 궁금하진 않지만 딱히 더 나눌 이야기가 없으니 뻔한 안부만 자꾸 주고받는다.     




  엄마의 친정 오 남매는 몇 해 상관에 결혼을 했고, 이어서 주르르 자식을 낳다 보니 동갑내기 사촌이 여럿이다. 별 재미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어 엄마 옆에 앉아 빈 젓가락질만 하다 물을 먹으러 정수기 쪽으로 가려니 사촌이 나를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힌다. 테이블엔 다른 사촌 둘이 이미 합석해 있다. 그녀는 자기가 만드는 ‘쏘맥’ 맛이 끝내 준다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술을 섞어 코앞에 들이댄다. 종류가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걸 꺼리는 데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쏘맥을 못 마신다며 가볍게 사양하자, “쏘맥을 못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내가 만든 건 달라, 이건 원 샷을 해야 하는 거야!”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사촌이 얼른 맥주를 따라 건네고는 잔을 부딪친다. “얘가 내숭이 있는 거 내가 잘 알아! 얘는 살찌는 거 싫어해서 엄청 신경 쓰거든!” 그녀에게 몸이 불어 보인다며 운동 좀 하라고 농담을 한 사촌동생이, 나 보고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거 같다며 말을 잇자 보인 반응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다른 사촌이 “그게 무슨 내숭이냐?”며 건배를 청한다.

난 그냥, 웃고 있었다. 이런 때 해야 할 말이 떠오르기는커녕, 약간 이상해진 분위기가 어색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할 말이, 했어야 하는 말이 떠오른다. 늘 그런 식이다. 억울한 상황이어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질 않는다. 당시에는 그냥 멍 했다가 나중에 불쑥 생각이 나서 ‘이불 킥’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그래, 그게 뭐 어때서? 그저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 아닌가? ‘나는 이렇게 살이 쪘는데 쟤는 왜 그대로인 거지?’하는 생각에 샘이 난 건 아니고? 내숭이 있다고? 아무데서나 목청을 키우고, 쏘맥을 원 샷 해야 내숭 없고 소탈한 건가? 난 이 자리가 마냥 편하지는 않아. 큰 행사가 있어야나 만나는, 가까운 이웃보다도 먼 친척이라 그런지 피가 섞인 일가친척이라는 이유로 마구 반가워지진 않더라고. 게다가 어렸을 때 알게 모르게 부모님들이 우리를 비교해서 그랬는지 암암리에 서로를 의식하기도 했잖아.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전 같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어린 시절의 비교방식이 다시 작동을 하기도 해. 누구는 평수를 넓혀 입주했다느니, 누구네 첫 째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느니. 아니면, 그 집 둘째는 택배 일을 한다네, 셋째네 아들이 대리기사를 한다는군 따위의 정보(?)라도 전해지면 사라진 줄 알았던 ‘인생 줄자’가 다시 손에 쥐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건가? 


 알다시피 우리 엄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셨어. 고작 7년 남짓한 결혼생활이었지. 생전에도 본가와 별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친정 형제들에게 더 많이 의지하게 됐어. 가장 가까웠던 삼촌댁 근처로 이사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엄마가 일하느라 우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마다 삼촌과 외숙모들이 많이 챙겨 주셨지. 끼니가 변변치 않을 때면 삼촌댁에 가서 숟가락을 얹기도 했고, 사촌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덕에 소풍날 도시락은 언제나 외숙모가 담당이셨어. 참 감사한 일이야! 그런데, 그거 아니? 그런 상황마다 느껴지던 묘한 분위기. 나는 언제나 객식구였어. 펼쳐진 김밥 도시락에 선뜻 먼저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했지. 명절에 사촌들이 모여 북적대면 어른들은 우리더러 정신없다고 나가 놀라고 하셨고, 그러면 우리는 가까이 있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몰려가 놀다 오곤 했지. 그런데 신나게 놀다가도 뭔가 틀어지면 외사촌들은 으레 한 목소리로, ‘야! 너는 우리랑 성(姓)이 다르잖아! 우리 식구 아냐! 너네 식구한테 가!’라며 밀쳐 냈었던 거 기억하니? 


 철없는 아이들이었어. 그래도 알았단다. 내가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그 자리가 그냥 맘 놓고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던 거 같아. 그 무렵부터 명절에 외가에 가도 혼자 다락방에 올라가 우리 집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소년동아’와 ‘새 소년’ 잡지는 물론이고 ‘세계문학전집’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 내가 없어진 줄 알고 식구대로 날 찾아 동네를 헤매게 만들기도 했었지. 그렇게 켜켜이 쌓여 있던 무언가가 살짝 건드려지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뒤집어지는 건가 봐. 아버지 없는 아이, 말 수 적은 아이, 똑똑해서 재수 없는 아이로 흘겨지던 아이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있잖니, 이젠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가 다시 먼지를 일으켜도 그건 지난날 비우지 못해 남아 있는 미숙한 찌꺼기일 뿐이라고 여겨. 누구든 비워내지 못한 게 있을 수 있고 언젠가는 바람결에 조금씩 날아가 결국엔 다 비워지게 될 거라는 것도. 


 살다 보니 알게 됐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게 좋더라. 나와 ‘다른’ 걸 ‘틀리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우리 중 누가 자신이 살아 보지도 않은 삶에 대해 자를 들이댈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거야.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나는 때늦은 ‘이불 킥’을 날린다. 사촌의 너스레를 그냥 모르는 척 받아 줄 수도 있었으련만… 엄마의 어리광(?)을 안쓰러운 마음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련만… 어쩌겠는가. 내 품은 고작 이 정도인가 보다. ‘이불 킥’이란 후회와 아쉬움의 다른 말인 것을. 옆방에서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꿈에서 즐겁게 ‘이차’ 중이실까. 

작가의 이전글 색공(色球)들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