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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Nov 16. 2020

외식하는 여자들

 큰 아이가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 무렵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기지개 켜듯 살아난다.

“아, 어떡해. 너는 어쩌다 반장이란 걸 해 가지고는…”

“엄…마…?”

“어, 그래. 취소! 미안하다. 기특하다, 딸! 잘할 수 있을 거야!”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무탈하다는 안심에 앞서 으레 따라붙을 ‘반장 엄마’ 역할에 겁부터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부모 모임이 많았다. 학급별 모임에, 대표들 모임까지. 아이가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자리였다. 호칭은 ‘학부모(父母)’지만 모두 ‘모(母)’, 엄마였다. 모임은 주로 오전이나 저녁 시간이었다. 학교에 드나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비교적 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어서 가능했으나, 직장이 하나 더 생긴 듯했다. 모르는 학부모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점심밥을 밖에서 먹는 횟수가 늘었다. 그날도 학부모회 엄마들과 산채비빔밥을 잘한다는 식당엘 간 거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년 남자 둘이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이 나와 먹기 시작할 때였다. 옆자리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야, 세상 좋아졌다! 아줌마들이 막 점심때 외식도 하고 말이야. 밥 해 먹기가 그렇게 귀찮나, 남편들은 쎄(혀)가 빠지게 일하는데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네, 그치 않냐?” “야야, 적당히 해. 그러다 혼난다! 이 동네 식당 점심장사는 아줌마들 없으면 안 될걸!” 그들끼리 하는 말이 아니었다. 들으라는 톤이었다. 산채비빔밥을 먹으니 변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며 우스개를 늘어놓던 우리는 순간 정지화면이 되었다. 못 들은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응을 보이자니 점심밥은 물론이거니와 식당 전체 분위기를 망치게 될 게 뻔했다. 모두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남자는 냉면을 가져온 직원에게, “여기 점심장사 죄다 아줌마들 덕분이지? 이 동넨 신수 편한 아줌씨들 천진가 보네!” 삼류 영화에 등장하는 양아치 수준이었다. 


 “이봐요, 아저씨들!” 6학년 대표 엄마였다. “식사하러 오셨음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남의 집 밥해먹는 거 걱정하지 말고! 그쪽이 돈 법네 어쩌네 하며 제대로 신경도 안 쓰는 애들 누가 챙길까? 엄마들이야! 당연하다고? 그게 왜 당연해? 둘이 낳아놓고 왜 책임은 모두 엄마가 지는데? 살림하고, 애들 챙기고, 돈도 벌어, 여자들이! 상황 파악도 못하면서 시비 걸지 말아요!”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입 끄트머리로 비웃음을 실실 날리던 남자들이 황당하다는 듯, “허, 참. 기가 차서. 여자들이 이제 막 남자한테!” 그녀도 지지 않았다. “여자들이 뭐! 남자한테, 뭐! 남자가 뭐 더 잘나서? 정신 차려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식당 주인이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애꿎은 주인에게 언성을 높이더니, 나가 버렸다. 냉면 값도 안 내고. 어쭙잖은 남자들에게 시원하게 한 방 날린 ‘우리’ 대표는 자리에 앉아서도 씩씩댔다. “웃기는 자식들이야, 냉면 먹고 시원하게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었는데, 찌질이들!”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좀 떨렸다.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물리적 폭력이라도 오갔다면 학교 대표들이 줄줄이 파출소에 가는 민망한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남자들도 찔리는 게 있으니 푹푹 거리며 나간 걸 거다. 진짜 ‘찌질이’다. 우리는 시킨 음식이니 다 먹고 가자고 했다. 식당 주인에게 빈대떡인가를 추가로 주문했다. 밥값도 안 내고 간 남자들 때문에 주인장 매상에 차질이 생겼으니 뭐라도 더 팔아주자는 뜻에서였다. ‘당연한’ 얘길 하면서도 주위 사정까지 헤아린다, 여자는. 그날 이후 6학년 대표 엄마는 우리의 ‘언니’가 되었다. 학교가 도를 넘는 요구(체험학습지원 필수인원 할당)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학부모는 학교직원이 아니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정중히 부탁하라는 그녀의 당찬 대답에 엄마들이 돌아서서 쾌재를 불렀다. 학교에 아이를 맡긴 ‘을’의 위치다 보니 불이익을 당할까 할 말도 못 하기가 다반사였는데, ‘언니’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다. 그녀도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바른말, 반대 주장이어도 남자가 할 경우엔 ‘줏대 있다.’고 하면서, 여성인 경우 ‘나댄다.’느니, ‘골치 아픈 여자’라느니 폄훼하기 일쑤인 세상이니.  


 오래전 일이었는데도 식당의 줄무늬 벽지까지 기억난다. 우리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공격하던 남자들을 어쩌다 보니 재수 없어 만난 함량 미달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런 폭력이 용납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겐 그래도 된다는, 여성이란 자기 대를 잇고, 밥하고 살림하면서 남자 뒷수발이나 하는 존재라는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가,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짓거리였다. 모든 남성이 그와 똑같지는 않다고? 나는 아직 여성에 대해 ‘공정’한 입장을 지닌 남성을 만나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세상의 중심이 남성이라는 생각은 뿌리 깊다. 남자들은 여자가 ‘완전히’ 통제되기를 바란다. 헤어스타일 하나 바꾸는데도 남편이나 남자 친구의 의향을 묻거나 허락을 구해야 하기도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여성의 휴식이나 놀이조차 남성의 ‘허락’과 ‘통제’ 아래서만 가능할 정도로 철저히 지배하는 것이다. 


 딸에게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에게서 귀가가 늦을 거라는 연락을 받으면 친구랑 같이 오든지, 걔네 집에 가서 자라고 한다. 그 말을 하는 자신이 비참하고 화가 난다. 마라톤 경기에 나가되 달리지는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공정한 세상이 실현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닭장 속 닭처럼 구속된 삶을 살 수는 없다. 남성의 언어로 ‘만들어진’ 여성이 아닌, 여성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진짜’ 여성이 되어야 한다. 당연하다 여겼거나 ‘반(半)은 포기’했던 삶을 다시 일구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요구하고, 행동해야 한다, 될 때까지. 여성이 가진 공감과 연대의 능력으로 ‘모두에게 공정한’ 세상을 향해 가면 된다. 여성은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 남성을 끌어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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