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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캣 Jan 31. 2021

서른여덟 프리랜서 PD, 그의 누적된 절망감

그의 누적된 절망감이 풀릴 수 있다면...


2020년 안타까운 소식 중 하나는 청주방송에서 14년 간 일한 프리랜서 PD의 죽음이었다. 모든 죽음은 아프고, 슬프고 처연한 것이지만, 유독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정규직의 겉모습을 취하였으나 그렇지 못했던 일터의 해고 통보가 첫 번째요. 그로 인한 허무감과 배신감에 깊은 공감을 한 것이 두 번째다.  


첫 번째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서른여덟, 14년간 한 달 16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일을 해온 PD는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가 해고되었다. 그는 방송국을 대상으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년 반 동안 소송을 했으나 중요 증거들은 방송국에 있었다. 동료들은 그가 생각지 못한 증언을 했다.(이들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정이라는 것이, 입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용기나 착한 심성으로 사태가 바뀔 수 있는 정도였다면 이렇게 비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이쯤 되면 알겠지만 그는, 패소했다. 


원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약서가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준계약서가 있다. 정부는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고한다. 그렇지만 의무사항은 아닌지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인력을 프리랜서로 사용하는 악습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꼭 방송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리랜서 PD였던 그의 패소 요인을 보면 "그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국 불안정 노동 철폐연대는 이런 말을 했다. "프리랜서는 자유로운 노동이 아니라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이름"이라고. 


처음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나를 아끼던 이들은 모두 나를 말렸다. 회사 사람들, 대학교 선배, 동기들, 친구들.. 처음엔 못내 서운했다. 응원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프리랜서 선언 2년쯤 되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모두 이해했다. 프리랜서라는 자유로움이 권리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안다. 그들의 따뜻한 만류였음을 지금은 정말 잘 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 것이다. 권리는 없지만 의무만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프리랜서 7년 차... 환경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하자.) 나는 2번째가 자꾸 맘에 걸린다. 그가 느꼈을 배신감... 그는 유서에 "억울하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가는 자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프리랜서 지인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노를 짐짓 감춘 채  뜨거운 커피를 들이켰다. 그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술잔을 기울이며 듣는 숱한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억울하다고 느낀 순간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없다고 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잔에서 술향이 났다.  동의하지 않았지만 겉으로 동의한 부끄러운 내 모습까지 더해져 다리가 무거웠다. 집에 오는 길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수다 속에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 일렁이는 치사하고 지리멸렬한 삶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주워 들 수 있다고 한 들, 그 프리랜서 PD의 절망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한 들, 그의 절망감이 가시는 것이 아니다. 얼굴이 욹그락 불그락했다가 핏기가 가셨다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절벽으로 민 것은 아닌가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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