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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앞맵시 이복연 Sep 04. 2023

이직의 기억: 3부. 편집자 시절

드디어 마지막 편입니다. 3부는 출판 편집자로 전업한 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다음 그림처럼 출판사 세 곳을 경험했습니다.



한빛미디어는 제법 큰 종합 출판사로, IT 전문서만 따지면 국내에서 가장 큽니다. IT 전문서 편집자는 20명 내외이고, 팀은 시기에 따라 서너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사이트는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특색 있는 출판사입니다. 출간 종수는 많지 않지만 스테디셀러를 많이 출간하여, 블로거들의 추천도서 목록에서 매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골든래빗은 한빛미디어 출신 편집자가 창립한 신생 출판사입니다. 한빛 색채가 많이 묻어 있지만, 점차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겠지요.


규모, 역사, 제 역할 등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스트레스가 가장 적었던 회사는 한빛미디어, 책을 대하는 생각이 저와 가장 비슷한 곳은 인사이트였습니다.


다음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 한빛미디어 시절

  - 출판계 첫인상

  - 일찍 싹튼 이직의 씨앗

  - 축! 개앞맵시의 탄생

  - 아름다운(?) 이별

# 인사이트 시절

  - 프로세스 개선(실패)과 개안

  - 나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은 없기를(내가 퇴사함)

  - 한빛 복귀 각?

  - 출판을 떠나자(1트)

# 골든래빗 시절

  - 토끼 집짓기

  - 토끼 vs. 구글

  - 예정된 이별

# 현재

  - 출판을 떠나자(2트)


[한빛미디어 시절]

출판계 첫인상

우여곡절 끝에 ‘최소 3년은 경험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한빛미디어에 입사했습니다. 출판은 제가 바깥에서 보던 세계와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IT 전문 출판사는 IT를 잘 알고 활용하리라 생각했으나, 출판은 엄연한 제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영세했죠.


그렇다고 이런 점이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업을 바꾸면서 출판사와 독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소셜 서비스를 구상했었는데, ‘어림없겠다’ 정도.. 그 외에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직의 기억 1부>에서 이야기한 출판의 장점은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 짧은 주기로 완성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 텍스트 자체가 곧 제품의 핵심이므로,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 제품 각각이 최소 수백 명의 삶에 도움을 준다.


재미는 없었습니다. 주로 혼자서, 저자나 역자의 원고를 하루종일 다듬는 게 편집자의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제겐 이 점이 중요했죠. 회사 근처에 좋은 카페가 많아서 한동안은 퇴근 후 카페 투어를 즐겼습니다. 스타트업 시절 상처받은 영혼이 빠르게 치유되었습니다.


일찍 싹튼 이직의 씨앗

꽤나 만족하며 다니던 제가 이직을 결심한 건 왜였을까요?


입사 후 1년여 만에 당시 팀장님이 “팀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차기 팀장으로 제 이름도 살짝 거론되었습니다. 다행히 출판 경력이 짧아서 비중 있게 논의되지는 않았죠. 하지만 다음 차례는 제가 유력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팀장의 삶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한빛미디어는 ‘출판계의 삼성’이라고 불리기도 할 만큼 프로세스와 관리 쪽이 철저했습니다. 기업을 크게 키우기 위해 큰 기업을 운영하는 데 적합한 체계를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팀장들의 일도 관리에 치중된 느낌이 강했습니다. 저는 ‘관리의 삼성’을 직접 겪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팀이라고는 하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으쌰으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너무 다르게 운영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10개 이상의 책을 동시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죠. 물론 팀마다 많이 달랐지만, 제가 속한 팀은 책을 빠르게 많이 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일하는 조직에서는 리더보다는 관리자가 될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팀장은 책 수십 권의 출간 일정과 매출을 항시 챙겨야 했습니다. 이 많은 책의 품질을 검수하고, 가격 결정과 마케팅 전략 논의 등의 회의가 줄을 이었습니다. 출간되는 책의 수만큼 새로운 책을 계약해야 했습니다.


저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조직 차원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몇 가지 설익은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출판에 입문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확신이 부족했고, 조직에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을 벌써부터 주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막연한 우려일 뿐이었습니다. 팀원으로서는 평안했고, 팀 매출과 개인 성과 모두 잘 나왔기에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축! 개앞맵시의 탄생

한빛미디어는 국내 최대 IT 전문서 출판사입니다. 이미 수백 종을 판매 중이고, 매년 수십 종을 더 쏟아냅니다. 그런데 책끼리 이어지는 게 거의 없는 느낌이고, 분류 체계도 너무 낡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개발자 로드맵’을 중심으로 새로운 분류 체계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로드맵의 세부 갈래별로 대표 도서들을 찾아 나열했죠. 이렇게 하여 ‘책으로 안내하는 개발자 로드맵’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개발자의 앞길을 밝혀주겠다’는 의미를 담아 ‘개앞맵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개발자의 앞길에 맵핵 시전’의 줄임말입니다.


개앞맵시는 크게는 다음 그림처럼 공통 분야와 전문 분야로 나뉘고, 각 분야는 다시 필요한 역량과 주요 기술 중심으로 세부 영역으로 나뉩니다.



예를 들어 [기본기 레벨업]의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분야의 지도(map)로 이동합니다. 분야별 지도에서 각 노드를 클릭해 확장하면 대표 도서와 더 세부적인 분야가 펼쳐집니다.



대표 도서의 선정 기준은 IT 도서 시장 전체입니다. 한빛 책 홍보가 아니라 순수하게 독자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었습니다(한빛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독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서, 조회수가 지금까지 수십만에 달합니다. 하지만 관리하지 않은지 4년이 넘어서, 지금은 콘텐츠가 많이 낡았네요. ㅠ


사실 개앞맵시는 출판사로 오면서 구상한 소셜 서비스의 아주 작은 단면입니다. 여기에 강의도 붙이고, 업계 선배들의 안내와 조언도 붙이고, 구인/구직 서비스를 붙이고, 독자를 포함한 현업 개발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종합 서비스를 그려봤었습니다. 서비스를 직접 만들 여건이 못 되니,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은 게 마인드맵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

저와의 인연은 한빛보다 인사이트가 빨랐습니다. 개발자 시절 첫 번째 번역서를 낸 곳이 인사이트였고, 제가 읽은 개발서 중 인사이트 책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출판사로 전업할 당시 인사이트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구상한 소셜 서비스를 실현하려면 큰 회사가 단연 유리했기에 결국 한빛을 택했습니다. 출판 업계에 대한 지식 부족이 낳은 고민과 결과였지요.


어쨌든 나름 잘 다니고 있던 저에게 인사이트에서 S.O.S를 보내왔습니다. 앞에 적은 이유들로 한빛에서는 오래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라, 어찌어찌 옮겨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떠나는 뒷정리는 정말 성심껏 했습니다. 기본적인 인수인계는 당연하고, 제가 한빛에 와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정리해 남겼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로그래머의 책쓰기>와 그 외 몇 가지 패턴별 집필 가이드(작심3일3분Blog2Book이펙티브) 등을 이 시기에 썼습니다. 나가려고 마음먹은 회사에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불만이 있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바로 옆의 경쟁사로 옮기는 것이라 모든 면에서 떳떳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한빛과 작별하고 인사이트로 향합니다.


[인사이트 시절]

프로세스 개선(실패)과 개안

제가 인사이트에서 처음 집중한 일은 프로세스 개선이었습니다. 인사이트와 비교해서 한빛은 편집자 1인당 두 배 이상 많은 책을 냈습니다. 인사이트 사장님도 당연히 책을 더 많이 내길 원하셨고, 편집자들도 한빛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과정 전체를 비교 분석하여 속도를 늦추는 방지턱들을 찾아냈습니다. 브리핑을 하고 하나씩 바꿔보려 시도했습니다. 편집자들은 대부분 변화 방향에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사장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답답했죠. 원인을 깨달은 건 시간이 꽤나 지나서였습니다.


우선 겉으로 드러난 현상 측면에서, 두 회사는 주력 분야가 달랐습니다. <IT 전문서 시장 오버뷰>에서 나눠 본 분야를 기준으로 표시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분야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므로 제품의 특성도 달라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제품을 만드는 방법도 달라야 하겠죠. 그런데 두 회사 모두 자신에게 맞는 프로세스를 전략적으로 발전시킨 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인사이트는 특히 사장님이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본기 레벨업’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영역으로는 쉽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인사이트의 그 누구도 이런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사장님은 A에 적합한 성향이신데, 편집자들에게는 B 쪽에서도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했죠. 하지만 책을 내려면 사장님을 통과해야 했기에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원인을 일찍 깨우쳤다면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빛과 인사이트의 차이를 깨닫자, 그렇다면 다른 회사들은 어떨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똑같은 시장이었지만, 보는 눈이 달라지니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IT 전문서 시장 오버뷰>도 이 깨달음이 있어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 방법을 알게 해 준 곳이 한빛이었다면, 출판 시장을 알게 해 준 곳은 인사이트였습니다.


나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은 없기를(내가 퇴사함)

인사이트에는 2인자 포지션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래서 이직하면서 다짐한 게 “나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은 없도록 하자”였습니다.


입사 당시 인사이트에는 일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많이 틀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 관계를 풀어보려 노력했죠. 개발자 시절부터 ‘한 몸처럼 어우러지는 팀’을 꿈꿔 왔기에 그랬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심리 전문가도 아니고.. 역부족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사람이 특정될 수 없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어쨌든 인사이트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95%는 사람 사이의 관계였습니다. 제 미련 때문에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일에 에너지를 너무 쏟으며 혼자 지쳐갔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면서 실무에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한빛 복귀 각?

이번에는 반대로 한빛에서 접촉해 왔습니다. 제가 있던 팀은 아니고, 다른 팀 팀장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한빛은 오래전부터 그 팀의 팀장을 구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 동네라 저도 사정은 알고 있었죠. 새로운 부서장님이 제가 분석한 자료들(<혼자 공부하는 C 언어><혼공 C vs. 이것이 C>)을 좋게 봐주신 듯했습니다.


저는 인사이트로 오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경험상 일이 제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너무 없기도 했고, 사장님도 “와서 함께 그려 보자”고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계획 부재가 인사이트에서의 초기 방황에 영향이 컸다고 느껴져서, 한빛의 제안에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 그려지면 연락드리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팀장으로서의 역할과 전략>입니다. 한빛에서 배운 것, 인사이트에서 깨우친 것, 팀워크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 것 등을 집약했습니다.


정성껏 준비했고, 저를 아는 한빛에서 먼저 제안한 자리이기도 해서 임원 면접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만,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어서 최종 거절했습니다.


출판을 떠나자(1트)

대략 이 시점부터 출판계를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크게는 개발 쪽으로 돌아가는 방안과 교육 관련 시장에 도전하는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IT 전문서 ‘집필 가이드’와 ‘편집 가이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겨놓고자 했습니다. 저는 개발자, 역자, 편집자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어설프게나마 번역 가이드와 집필 가이드를 써 보았죠. 출판 시장과 책들을 저처럼 분석해 공유해 주는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인터럽트가 들어왔습니다. 한빛 입사 당시 제 팀장이셨던 분이 독립을 선언하시며 함께 하자고 제의하셨습니다. 저는 입은 은혜도 갚을 겸,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드리기로 했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저의 ‘집필/편집 가이드’ 계획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이드가 공개되면 큰 출판사가 유리하다”는 이유로 미뤄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했지만, 일단 수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출판계 떠나기 1트는 실패했습니다.


[골든래빗 시절]

토끼 집짓기

코로나의 위세가 점점 커지던 2020년 7월, 골든래빗이라는 출판사가 세워집니다. 저는 처음부터 “내 회사를 만들 생각은 없다”, “내 목표는 시장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도와주기다”, “나는 어떠한 권한도 갖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하며 합류했습니다. 스타트업 시절에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갈등의 씨앗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도와주는 역할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골든래빗 대표님은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저와는 스타일이 매우 다릅니다.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식성부터 평소 관심사까지,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충돌이 생길만한 부분에서는 제 목소리를 줄였습니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사업 측면에서는 대표님 방식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합류한 이유도 분명했고, 더욱이 대표님의 회사이니 대표님의 색깔대로 끌고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점점 원고만 보게 되고 외부 활동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확실히 색깔이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것은 곤욕이었습니다.


토끼 vs. 구글

큰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저는 골든래빗 합류 당시 이미 번역 계약 세 건을 안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딥러닝 3>,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 머지않아 출간될 ‘자바 가상 머신’ 관련 책입니다. <밑바닥 3>는 마무리 단계였지만, 다른 두 권이 문제였죠.


초기에는 이제 막 창업한 회사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회사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번역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번역이 너무 지체되자, 이제는 반대로 회사 일에 지장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한 번은 스트레스가 심하여 번역 계약 하나를 파기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잠이 들 무렵, 퍼뜩 정신이 들더군요. 번역 중인 책들은 모두 제게 의미가 있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골든래빗은 지인을 도와주기 위한 선택이었죠. 다른 이를 도와주기 위해 내게 의미가 되는 일을 포기할 뻔했다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결국 회사 일을 줄이고(비례해서 월급도 줄이고ㅠㅠ) 번역부터 빨리 끝내기로 했습니다.


예정된 이별

목표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골든래빗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출간한 책은 몇 없지만) 책도 많이 나왔고 잔고 하락도 멈췄습니다.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 다행히 제가 쓴 만큼은 벌은 것 같았습니다. 간접적인 기여까지 고려하면 떠나도 폐를 끼친 건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골든래빗과는 이렇게 작별을 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떠난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져서 본인의 색깔대로 더 편하게 밀고가시는 듯 보이고요.


[현재]

출판을 떠나자(2트)

현재는 남은 번역을 마무리하며 묵혀뒀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이렇게 글도 쓰고요. 그러면서 골든래빗 합류로 미뤄진 ‘출판계 떠나기’ 2트를 천천히 시작하려 합니다.


출판계 떠나기가 확정은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퍼즐을 잘 맞춰봐야 하겠죠.


저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사회 초년생 때 세운 인생 목표가 아직도 유효한 셈이죠. 그래서 이 방향으로 폭넓게 고민할 계획입니다. 출판도 여기 해당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이니 여전히 좋은 후보입니다. 그 외에는 큰 기업의 HR 부서, 에듀 테크 기업, 교육/강의 관련 기업, 직접 저술 및 강의, 데브렐과 테크니컬 라이터 등도 떠오릅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개발로 복귀하려면 디딤돌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주니어급 역할부터, 혹은 품질 보증이나 테크니컬 라이터를 병행하면서 서서히 개발로 스며드는 시나리오도 괜찮아 보입니다.


서두르지는 않으려 합니다. 진짜로 출판을 떠난다면 제 직장사의 마지막 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신중해야 하겠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출판을 떠날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에 남는 결정을 한다면, 무언가 뚜렷한 그림을 안고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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