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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 마라톤 완주하기

JTBC마라톤 참가 후기

by 하루

"야 이거 나랑 같이 나가보자!"

한 여름에 친구는 나에게 JTBC마라톤에 출전해 보자고 했다. 옛날이야 누가 뛰라고 안 해도 밤낮없이 달렸겠지만 엄연히 직장인 된 나는 두터운 뱃살을 껴안는 내가 갈 수 있을까. 등을 떠밀듯이 얼떨결에 신청했고 그렇게 가을이 되어 마라톤을 뛰게 되었다.


누구보다 친한 친구처럼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도록 뱃살을 늘 내 곁에 있었다. 일요일 아침 7시쯤 집을 나섰다. 아침 날씨가 제법 선선해서 집을 나서는 와중에도 그냥 집에서 이불을 덮고 잘까 고민했다. 다행히 유혹을 이겨내고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3만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러 왔었다.


날씨도 춥고 해서 몸을 움츠린 필자와는 다르게 모두들 날쌘 다람쥐처럼 도로를 달리거나, 재기 발랄하게 높이뛰기를 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수많은 군중과 파티에서 나올 듯한 음악소리, 사람들의 웃음, 종종 마치는 특이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까지. 사뭇 진지하게 임할 뻔했던 마라톤은 운동이기 이전에 축제와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예전에 읽은 일본 소설인 '밤의 피크닉'에서 학생들이 밤새도록 달리기를 했다. 그 시간 중에 청춘들이 가진 고민, 상처, 오해를 풀었던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필자도 이번 달리기가 그런 고민, 혹은 깨달음이 있는 시간이 되지는 않을까 기대도 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무리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남과 비교하지 말자를 되새겼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10KM의 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마침내 카운트 다운을 세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몸을 움츠린 강아지였던 것처럼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나의 속도보다 최소한 2배는 더 빨랐던 것 같았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평소라면 차들이 즐비했을 도로를 사람들이 가득 차서 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도로 가운데에 가서 이 기분을 즐기리라 생각했다.


함 참을 달려 합정역까지 왔다. 월드컵경기장에서 합정까지 달렸으니 적어도 5KM 달렸겠거니 했다.

"야 우리 2KM 왔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나 왔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2KM밖에 안 왔다고 다른 누군가가 답했다. 그 순간 멘붕이 왔다.

'이렇게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힘든데... 겨우... 겨우... 2KM라고? 망했다..!! 진짜 망했다..!!'

그 순간 매 순간이 힘들기 시작했다. 나름 숨이 턱끝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1/5밖에 못 왔으니 원... 그래도 걷지 말고 천천히라도 계속 뛰자고 생각했다.


쉬고 싶고, 걷고 싶었다.

실제로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양화대교를 건널 때쯤 10명 이상의 분이 걷기 시작한 걸 보았다. 나도 걸을까 하다가 이 다리만 건너고 걷자고 생각했다. 다리를 건너며 아름다운 한강과 가을이 묻어나는 풍경을 음미할 줄 알았던 필자였지만, 실제로는 이 마라톤이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 밖에는 안 했던 것 같다. 마침내 다리를 건널 때쯤, 다리는 여의도를 향하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길목에서는 한 풍선을 달고 뛰시는 분이 계셨는데, 살펴보니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해 뛰시는 도우미였다. 그분들 뒤에는 시각장애인분이 달리기를 하고 계셨다.


무엇 때문에 저분은 저렇게 달릴까 싶었다. 10KM를 달리는 것도 힘들 텐데, 앞을 보기도 힘드시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을 다니면 위험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저분에게는 이 마라톤이 나와는 다른 의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분은 암센터 유니폼을 입고서 달렸고, 다른 분은 어느 지역 마라톤 대표로 달리고 있었다. 같은 10KM의 달리기였지만 사람들마다 의미는 달랐던 달리기였다.


나에게 이 달리기는 무슨 의미였을까.

그저 아침에 친구 따라 나온 그저 그런 달리기였을까. 같은 달리기라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최소한 걷지만은 말자. 그게 삶이든 이 달리기든 끝까지 가보자.


물론 그 생각은 잠깐 뿐 오르막을 보자 다시 머릿속에는 왜 이걸 나왔을까 하는 후회가 맴돌았다.

‘췟..! 제기랄!! 너무 힘들잖아!!’

그럼에도 함께 뛰던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뛰는 모습을 보니 쉴 수가 없었다. 굴다리를 지날 때면 누군가 ‘파이팅’을 선창 했고, 이후 누구랄 것도 없이 ‘파이팅’을 재창했다. 체면도 있고 해서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찼지만 포기만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의도를 막 들어섰다. 여의도 공원에서 끝이 날 예정이라 정말 한 2KM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2KM가 정말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필자는 이때부터 속도가 엄청 느려졌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달리자고 생각했다. 여의도 도로 옆에는 서포터스 분들과 각자의 연인과 가족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외치며 응원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응원하는데 갑자기 내가 걷는 다면 참 웃기겠지?’

그렇게 다시 체면 때문에 계속 달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의도의 단풍가 나무를 볼 새도 없이 마음속으로 온갖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그리고 정말 마침내 눈앞에 결승선이 보였다. 10초 정도 땅을 보고 뛰다가 다시 앞을 봤을 때 생각보다 결승선이 자꾸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걷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다리에 온갖 통증이 몰려왔다. 알고 보니 다리가 많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다리는 비록 아팠지만 성취를 했다는 생각에 괜찮았다. 기록은 54분. 1시간 내에 돌아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들어왔다. 그렇게 마라톤을 끝내고 나니 먼가 너무 후련했다. 특별한 목표 의식, 의미를 둔 마라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렸음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 뿌듯함이 마음에 소중히 남는 마라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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