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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19. 2023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된 나의 예전 기억

음식물 쓰레기 관련된 어릴 적 겪은 일과, 지금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된 나의 예전 기억

음식물 수거하는 차를 마주치면,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다소 역한 향기도 참는 버릇이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음식물을 수거하는 차나 혹은 비료를 싣고 가는 차들을 종종 마주치는 데, 그럴 때면 냄새가 나지만 태연한 척 차가 한참 지나갈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지나간다. 조금 기이할 수 있는 나의 이런 습관은 사실 어릴 적 겪은 기억 때문에 그렇다.


어릴 적 아버지는 병원이나 학교를 돌면서 남은 잔반을 수거하는 일을 하셨다.

당시 학교를 마치고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함께 잔반을 수거하거나, 아버지가 잔반을 수거하는 동안 잠시 밖에 나가 혼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일하던 아주머니가 오셔서 남은 튀김이며 간식거리를 종종 챙겨주곤 하셨는데, 그런 날은 정말 횡재한 날이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읍내를 다니는 것은 어쩐지 바람도 쐬고 즐거웠고,  무거운 것을 들기는 어려웠지만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있거나 화물차의 뒷문을 여는 정도는 직접 도와드릴 수 있어서 나름의 내 몫을 하였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오기 전의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잔반을 옮기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란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다녔던 것 같다.


아버지가 몰고 다니는 차는 파란 트럭이었는데,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하다 보니 짐칸은 검붉은 색이었다.

덕지덕지 붙은 음식물 찌꺼기며, 음식물에서 나오는 특유의 냄새는 매일 쫓아다니는 나 역시도 적응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당시 큰누나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음식물 수거를 마치고는 큰누나를 데리러 학교에 갔었다. 누나가 다니는 학교는 꽤 언덕에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터라, 학생들은 주말마다 우르르 학교에서 나왔는데, 우리 말고도 자녀들을 데리고 가려는 학부형들의 차들이 학교 언덕 앞에 즐비했다.


아버지는 항상 교문 가까이에 차를 둘지, 조금 멀찍이 둘지 고민을 하셨다.

차를 너무 교문 가까이해 두면, 음식물 냄새가 나는 차를 올라타는 큰누나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시는 듯했고, 그렇다고 멀찍이 차를 두자니 먼 길을 걸어서 차에 탈 걸 생각하니 그것 또한 미안해하신 듯했다. 차를 학교 앞과 먼발치 그 중간 얹저리에 두고서 나와 아버지는 차에 잠시 누워 낮잠을 청했다. 한 20분 정도 흘렀을까. 큰누나는 두 손에 웬 쓰레기를 들고서 차에 올라탔다. '웬 쓰레기를 두 손에 들고 올라타는 거지?'


"아빠, 누가 우리 차에 쓰레기 버렸어."

큰누나는 차 뒤에 누군가 버린 쓰레기 발견하고선 그것을 주워서 차에 탔던 것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잠시잠깐 낮잠을 잔 그 짧은 시간에 누군가 쓰레기를 트럭 짐칸에 버리고 갔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음식물 찌꺼기가 많기도 하고 하다 보니 그런가 싶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검은 봉지에다가 누나가 가지고 온 쓰레기를 담았다.


어쩐지 그때부터 아버지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이지 않던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모습이 그때부터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차는 사실 매우 지저분했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풍겼다. 그래서 차를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들 코를 막거나 인상을 찡그렸다. 음식물을 수거하러 갈 때마다 마주쳤던 식당의 아주머니들은 방과 후에 아버지를 따라 일을 하는 내가 많이 애처롭게 보셨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시작되었는 것인지,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벌거벗음을 깨달았을 때 마냥 세상에서 보는 시선의 부끄러움이란 것을 그때부터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버지를 잘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지저분한 일을 하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우리를 잘 키우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셨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 지저분하다고 치부될 수 있는 일들은 한 가족을 위해 부끄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하셨던 고귀한 일이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여전히 내게 향기롭게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하물며 아버지나 어머니도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좋으셨으랴. 한참 사춘기였을 큰누나도 분명 혼자 숨어서 많이 울었을 테지만, 내색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속이 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혹시 모를 그때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서라도 절대 인상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아버지, 우리 큰누나, 어린 내가 많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셨을 아버지가 매 순간 겪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일 그분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자식에게 더운밥과 따스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고귀한 일'이라 냄새가 그 일의 귀중함을 가릴 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과 생각 때문에, 길을 걷다 종종 마주치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채 태연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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