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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03. 2024

아이스크림 알바 이야기

군제대 후 대학생 때 잠깐 했던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 생활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일하게 된 것은 내가 군복무를 막 마치고 복학한 때였다.

군 복무를 막 마치고 바로 복학을 했어서 학비를 당장에 급하게 벌었어야 했다. 부모님께 얼마큼 도움을 청할 만도 한데, 당시에는 이제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했으니 적어도 내 밥벌이는 나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따로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 얼마 되지 않지만 군생활을 하며 틈틈이 모아둔 자금 (물론 이마저도 일본 여행을 다녀오느라 몇십만 원 정도밖에 남지는 않았다.)으로 한 2~3주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복무를 마칠 때쯤 운 좋게 한 기업의 장학생으로 합격해 학사에서 지내면서 월세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나름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지만, 당시에 과외를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과외사이트만 해도 명문 대학뿐만 아니라, 특목고등학교나 해외출신지 등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학력과 배경의 소유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려 구인광고를 하던 터라 정성껏 올려둔 과외 광고에는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당장에 쓸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군대를 막 마친 대한민국의 병장으로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여러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지원을 하던 차 운 좋게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해 본 터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일이 어떨지 잘 몰랐다.


사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재입대를 한 줄 알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기 전, 이곳의 이미지는 모두들 일하면서 웃음꽃이 넘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틈틈이 맡보면서 하는 그런 행복한 모습을 그리곤 했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군대가 따로 없었다. 가게 매니저 분은 정말 욕을 잘했는데, 손님이 앞에 있어도 내게 고함을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본사에서 컴플레인이 내려와 걸린 적도 있었다. 매니저는 그렇다고 쳐도, 당시 나와 동갑이었던 한 동료는 한 두 달 정도 먼저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계속 틈틈이 눈치를 주었는데, 참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흡사 이는 군대 이등병 시절 선임들에게 갈굼을 당하던 방식이어서, 사회에서 다시 이를 경험하게 되자 내가 사회에서는 완전 초년생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분 다 미필이셨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업무 자체만 놓고 보면 즐겁게 할 수 있긴 했다.

손님들께 주문을 받고,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면서 나름 일종의 성취감을 느꼈다. 그곳에는 저녁에 외국인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틈틈이 영어로 대화하면서 나름의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손님이 많아 저녁 12시까지 손님이 끊이질 않았는데, 딱딱하게 굳은 아이스크림을 5-6시간 푸면서 팔뚝의 힘도 제법 잘 기를 수 있었다. 한 겨울, 자정의 영하의 날씨에도,  반팔을 입고 마감을 하면서도 추위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당시 일하던 곳이 젊은 청춘들이 정말 바글바글한 그런 곳이라 새벽까지도 젊음을 발산하려는 여러 청춘들의 모습에 덩달아 기운을 받으면서 일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젊음의 풍경 속에 일부가 되는 것만 같아 기분이 많이 설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한 또 다른 장점은 알바를 하는 그 순간 의무적으로나마 내가 밝아진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들어오실 때면 큰소리로 하는 인사 멘트가 있었다. 손님이 들어오시면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환영합니다~ 이곳은 땡땡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내성적이었던 터라 처음 그렇게 큰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참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두 번 손님들을 큰 소리로 맞이하다 보니, 아르바이트하는 그 순간만은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손님들에게 기쁨도 줄 수 있었는데, 정량보다 더 많이 드렸다는 멘트 하나로 손님에게 특혜를 받은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정량 보다 1g 많이 드렸던 것이긴 했다. 그래도 손님들의 기뻐하는 모습과, 아이스크림을 고르며 설레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기분 좋았다. 케이크를 빠르게 리본으로 묶는 것도 익히고,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말아 푸는 법도 익히면서 잔재주도 꽤나 잘 익힐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아이스크림 알바는 채 몇 달을 못 가고 그만두었다.

여러 재밌는 일들과, 장점들이 많았음에도 나를 괴롭히던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시간이 되면 참 일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시급도 높지 않았던 때라 액수도 영 마음에 안 들었고, 그렇게 알바 시간 하는 내내 긴장하면서 서 있고 싶지도 않았다. 한 명은 손님이 없을 때면 따로 불러서 계속 꾸지람을 주었고, 다른 한 명은 손님들 앞에서  고함 소리와 욕을 하였다. 그럴 때면 손님들이 오히려 내게 괜찮냐고 위로를 해주셨다. 군대를 제대해서 웬만한 갈굼에도 특화되어 있었음에도 참 여러모로 마음이 상했던 것 같다. 힘들수록 서로 돕고 따뜻함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순진한 생각은 이때부터 많이 깨지긴 하였다. 힘들수록 서로에게 모질 수도 있는 것이 사회라는 것을 이때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아이스크림의 단 내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렸고, 한 몇 년간은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그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이상하게도 아이스크림의 그 울렁거리는 단 내도 이제는 달콤하게 느껴지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면 양손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마구 뛰며 긴장했던 것도 이제는 사라졌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만두고 마주친 사회는 더 내게 모질기도 했고, 물질적인 것이 부족해서 느꼈던 수치심은 이제는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다 보니 수치심도 더 느끼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아이스크림 가게의 두 사람은 사회에서 겪을 그 지독함의 예방 접종을 해주려 했던 것 같다. 좋은 점도 많은 세상이지만, 때로는 너무도 불합리해 억울한 것들에 대해서도, 내 마음을 억누르며 참 많이 참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려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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