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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무엇이 나로 하여금 달리게 하는가

by 조아

마라톤 풀 코스 대회에 참가하기 전, 원주에 잠시 다녀왔다. 부모님을 누님댁에 모셔다 드릴 겸, 사촌 결혼식 참석을 위해 방문했던 지난 원주 여행 때 못다 한 원주천 달리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대회 전이라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어떤 형태의 달리기를 해야만 한다면 비슷한 날씨 속에서 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따뜻한 남쪽 나라의 기후에 적응된 내 몸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사전 준비를 통해 날씨에 대한 적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회 당일 날씨가 너무 좋아 보온을 위해 준비했던 우의가 필요 없음을 느낄 정도였다. 만약 비가 오거나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갔다면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 말, 영상 3도의 아침 공기가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열이 많은 내 체질 때문이라. 여름에는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진정한 러너가 태어나는 혹한의 시절에는 이런 체질의 도움을 많이 받기에 좋은 신체를 물려주신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런 체질도 꾸준한 노력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신체 조건이 뛰어나도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노력의 중요성은 우수한 신체 조건을 뛰어넘을 정도로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노력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마저도 희미하나마 가능해지는 모습을 반드시 볼 수 있다.


노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겠지만 특히 달리기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노력이 없다면 화룡점정의 단계가 사라지는 것처럼 결코 완성의 열매를 수확할 수 없으며 시련과 난관에 봉착했을 때 무너지거나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노력의 시간이 아까워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느껴본 사람은 충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도 즐기는 태도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진다. 공자님의 말씀을 빌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음을 달리기를 태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무엇 때문에 나는 달리는가”라는 질문으로 달리기의 정당성을 찾을 수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의 이유는 이제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달리기는 이제 특별한 목적이 아닌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지금 나에게 달리기는 낭만이다. 목적을 위해 강제적으로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달리기는 말 그대로 낭만의 유희이다. 낭만의 사전적 정의처럼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품어 나오는 에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낭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원주천을 달렸을 때 한 중년 러너가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넬라 판타지아>의 멜로디는 차가움을 밀어내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내 옆을 지나가는 러너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달리기의 낭만이라 생각했다.


그토록 갈망했던 마라톤 풀 코스 완주라는 낭만을 실현한 후, 아쉬움과 허탈감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충분한 회복의 시간을 가졌고 복기를 통해 보완할 점을 찾아 집중적으로 개선하는 훈련을 할 것이다. 이 훈련의 시간이 다음 대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 모르지만, 나를 성장의 길로 인도할 것은 분명하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즐기는 것이 낭만이며, 즐기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낭만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요즘 내가 꿈꾸는 달리기 낭만은 내년 봄이 찾아왔을 때 벚꽃이 만발한 교로가쿠 공원에서 휘날리는 벚꽃잎을 맞으며 달리고 싶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라 기분이 좋다.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나의 낭만이 풍성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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