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복과 복기의 시간

보고 느꼈다면 행동할 때

by 조아

요즘 날씨가 정말 미쳤다는 표현을 쓰기 부족할 정도로 달리기 너무 좋은 날씨이다. 이런 날씨에도 달리지 못하는 심정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첫 마라톤 풀 코스로 지친 내 몸에서 강제적인 휴식을 부여하는 중이라 신나게 달리는 러너의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달리고 싶은 욕망에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더욱이 며칠 전부터는 한낮 최고 온도가 25도를 육박하고 있어 싱글렛과 숏츠 차림으로 달려도 열기로 인해 다 벗고 싶은 심정일 정도로 따뜻한 가을 날씨의 충만함을 느낀다. 이렇게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사계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자 혜택이라고 믿는다. 예전에 비해 금방 스쳐 지나가는 가을의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들판의 노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더위, 습도와 싸우며 달리기 마일리지를 적립했던 시간 덕분에 첫 마라톤 풀 코스를 부상 없이 완주했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며 회복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 대신 글을 쓰며 예전의 루틴을 느끼면서 추억에 빠지기도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를 생각하며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다시 불태운다.



프로 바둑 기사는 대국이 끝난 후 “복기”의 시간을 반드시 가진다. 한 수, 한 수 떠올리며 그 순간의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더 좋은 수는 없었는지를 반성한다. 복기를 잘하는 기사일수록 다음 대국에서는 실수를 줄이고 상대를 압박하는 수를 놓을 확률이 높다. 대국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150수가 넘는 대국을 복기하는 기사를 보면 놀라움보다는 경외심이 들 정도로 그들의 기억력은 정확하다 못해 날카롭다.


Check out this Flyover of my run on Strava. https://strava.app.link/ZCsqQXt2YXb



마라톤 풀 코스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지만 “스트라바”라는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으로 달린 경로를 남길 수 있었다. 대회 후 이 경로를 매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지만 앞으로 참가할 대회에서 어떤 전략으로, 어떤 페이스로 달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 630 페이스 전략은 딱 22K까지만 적중했고 그 이후부터는 처절하게 무너져 900 페이스까지 내려간 원인을 찾고 싶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35km 지점이 넘은 순간, 아무리 힘을 줘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 아무리 페이스를 높이려고 노력해도 페이스가 올라가기는커녕 떨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멈추거나 걷지 않고 그냥 달리는 것뿐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이미 이 정도의 거리까지 왔기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즐겁기 위해 참가한 마라톤 대회가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다.



며칠의 복기 끝내 내린 결론은 경험부족이다. 만약 30K 거리주 훈련을 2번이 아닌 10번 했다면 사점은 훨씬 뒤에 오지 않았나 싶다. 더 많은 훈련을 했더라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었겠지만 그 2번의 거리주 훈련이라도 했기에 완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정기적으로 거리주 훈련을 하면서 마라톤 풀 코스 준비를 한다면 반드시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대회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업힐에 대한 대응이다. 특히 38km부터 펼쳐진 오르막길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악마의 코스였기에 주 2회 업힐 훈련을 통해 업힐을 평지처럼 달리는 러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마라톤 대회 중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안동 마라톤> 풀 코스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대회의 업힐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악랄했다.



러닝화에 대한 복기도 했는데 내가 착용한 러닝화는 <아식스 노바블라스트 5>라는 올라운드 러닝화이다. 하프 마라톤과 2번의 거리주 훈련을 함께한 친분으로 이번 대회에도 함께 했는데 30km가 넘은 지점부터는 볼목을 잘 잡아주지 못한다는 느낌과 함께 발목의 통증이 올라오며 안정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체중 러너인 나에게 아직 카본화는 무릎과 발목, 발바닥 통증을 유발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휴식하면서 회복의 시간을, 달린 경로를 보면서 복기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 다음 달 참가할 예정인 <진주 마라톤>에서 어떤 전략과 페이스를 펼칠지 결정될 것이다. 물론 추위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야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나름 추위에 강해 자신 있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추위는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주 내내 다음 대회만을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경험부족은 경험으로 채우고 훈련부족은 훈련으로 채우면 된다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면서 경험의 지혜를 배우고 게으름이 찾아오는 순간에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기 위해 순간의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해야 한다.


프로 바둑 기사처럼 완벽한 복기는 아니었지만 나의 부족함을 통해 필요함을 채우는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내가 알지 못함을 느꼈다면, 내가 모르는 것을 배웠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아무리 큰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삶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저 그런 생각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달리기

#마라톤

#바둑

#복기

#부단히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