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침묵, 밤하늘의 별은 어디에 있는가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마지막 리뷰!
마지막 3장은, 책 앞부분의 내용들보다 좀 더 낯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땅의 흙을 만져본 적은 언제인가?
높은 산에 올라가 산의 침묵에 귀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와 연결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흙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을까?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생활반경 안에 있는 시멘트 건물과 도로, 탄성포장 놀이터를 생각해보면 하루 중 흙을 만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책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야외로 나가 놀면서 흙과 모래를 손으로 만지고 나무에 기어올라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자'라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아이들이 자연 속 미생물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장내 미생물이 잘 발달하지 않아, 알레르기, 정서장애 등 소위 '문명화 질병'에 취약해진다고 말한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박테리아의 혜택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제2의 뇌'라 불리는 '장'과 연관이 있다. 장을 둘러싼 얇은 점막을 통해 장의 외부와 접촉하고 물질을 주고받는데, 여기에는 인간과 공생하게 된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를 '장내 미생물'이라 하는데, 이들의 무게를 합치면 무려 2kg그램 정도라고 한다. 이 미생물들은 인간의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태계인데, 장의 점막을 뒤덮으며 외부 병원균들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 심지어는 두뇌의 고유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기억력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있다.
이 미생물들이 장 속에서 건강히 살 수 있게 하려면 '먹이'를 공급해줘야 한다. 음식물 속 식이섬유는 미생물이 좋아하는 먹이이며,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미생물을 풍부하게 늘릴 수 있다. 자연 속에서 피부 혹은 호흡을 통해서 인간이 흡수하는 이로운 미생물들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보고 싶지 않으면 눈꺼풀을 닫으면 되지만, 듣고 싶지 않다고 귀를 자동으로 닫을 수는 없다. 청각은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항상 활동하고 았는 감각이다. 뇌는 소리를 들으면 경계태세를 위해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소음을 듣게 된다면 뇌는 스트레스에 과민반응을 하게 된다. 실제로 거주지 주면의 소음이 60데시벨을 넘을 경우 심혈관질환과 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산의 배경을 만드는 자연의 소리를 '지오포니(지질학geo + 소리phony)'라고 한다. 이는 주로 바람이 바위 등을 가볍게 스치면서 내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산의 고요함 속에 들어오는 것은 뇌가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독일의 연구에서는 침묵이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인 '해마'의 뉴런을 새로 만든다고 말한다. 즉 침묵에 잠기는 것은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침묵 속에 잠기는 것은 내면을 바라 볼 기회를 준다. 프랑스의 시인 외젠 기유빅은 침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인간을 자신에게 데려다주고,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유일한 '소리'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별을 관찰해왔고, 그 별이 얼마나 멀리까지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인류의 기술로는 우주의 정확한 크기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미지에 세계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 지구 전체를 보고 전율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였던 브루노는 저서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에서 우주의 무한함과 자연의 창조력을 말한다. "사물의 무한함을 방해하고 멈추게 하는 장애와 한계, 기한, 끝은 없다. (...) 새로운 물질의 풍부함이 무한대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우주만큼이나 무한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뇌와 우주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물론 뇌와 우주 뿐 아니라 자연에서 복잡한 조직망을 갖춘 것들에서 이러한 구조가 나타나는데, 복잡한 시스템들에 동일한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탄소, 질소, 인 등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 대부분은 별이 죽으면서 우주에 흩뿌려진 것들이다. 인간의 존재 이전에도 존재했고,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내 안에는 영원한 우주가 있다. 별이 빛나는 무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존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보자.
인간과 자연은 내부와 외부, 자아와 비자아처럼 이원론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체내와 체외에 모두 존재하는 수십억의 미생물과 공생하는 것은 좋은 예시이다. 또한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된 생체시계는 햇빛에 따라 작동하며, 무한한 바다를 바라보면 '자아'와 관련된 뇌의 영역이 비활성화 되며 마치 물과 하나가 된 듯한 대양감을 느낀다. 반려견의 눈을 바라보면, 인간과 반려견 모두에게 사회적 활동을 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생물학자 프란치스코 바레라는, 뇌는 인체라는 생리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무한으로 사고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주변환경과 뚝 떨어진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자연은 인간 내부에도 존재하며, 인간은 뇌와 몸, 환경의 상호작용으로서 구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이 그저 인식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완전히 내맡기는 육체적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나무를 끌어안을 필요는 없다. 마치 향수나 음악처럼 자연이 우리를 그대로 감싸게 놔두며 감각으로 느끼고 맛봐야 한다. 현대인들은 '자연의 미세한 흔적'만 갖고 살아가며 자연 경험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이다.
자연 속 경험은 특별한 날의 사건이 아닌, 누구나 일상 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는 지금, 도시 속에는 언제나 접촉가능한 자연이 필요하다. 잠시 걷고 바라볼 수 있는 녹지, 유리창을 통과하는 햇빛, 사무실 내 식물, 심지어 자연이 그려진 이미지도 좋다. 이러한 잠깐의 접촉만으로도 자연은 인간에게 긍정적 효과를 제공하며, 인간은 자연과 일체가 될 기회를 가진다.
이 책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못지않게 작가, 화가,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필요할 때면 저자의 상상력도 들어간다. 과학책이지만 상상과 감각을 동원하며 읽게 되었던 이유다. 책을 읽는 동안 실제로 공원에 나가서 산책을 하며 바람을 느끼고 피톤치드를 마셨고, 파란 새벽하늘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으며, 자연의 다채로운 색깔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느꼈다.
인간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건 200여년 전으로, 다른 자연 속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친화적으로 진화하였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연이 필요하고,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단순히 지각하는 걸 넘어서, 자연 속에서 모든 감각을 내맡기는 물리적인 경험을 하라고 권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험을 한다면, 지금처럼 자연이 파괴되지는 못할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도시에서 자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은 노력할 것이며, 사회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으며, 자연에 있을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