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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r 15. 2021

나를 돌보는 시간

나는 밤새 안녕한 걸까?

나를 돌보는 시간은 언제일까?

하루 중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언제일까?


금요일 날,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봄이라고 얇은 겉옷에 대수롭지 않은 비를 맞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녔던 하루가

밤새 안녕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내 몸에 빗방울과 함께 한기가 스며들어  몇 겹의 이불을 꽁꽁 싸매여도, 최고로 높이 온수매트를 틀어도, 뜨거운 물을 먹고, 뒷목에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을 불어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너무 늦어서 병원에 갈 수도, 그렇다고 애매하게 약을 먹을 수도 없어 그냥 버티기로 했다. 가족들은 내심 코로나가 아니냐며 내일 해가 밝으면 바로 병원부터 찾아가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 아우성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내 정신은 온전히 열과 한기로 가득했고 이들과 싸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것보다 나를 옥죄었던 건 열과 한기뿐 아니라 너무 많은 일들로 쓰러져 있는 나의 악몽과의 같은 현실과의 사투였다. 열에 들뜨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면 감당하지 못한 일들과 이제서 그만둘 수 도 없이 사면초가 앞에 맞닥뜨리게 된 나를 만났다. 밤새 앓다가 깨어나 보니 아픔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이 나를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말을 보냈다. 일도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아프다는 건 비로소 나를 돌보게 된다.


하루 종일 얇은 옷을 걸치고 빗속을 아무렇지 않게 다닌 것도 큰 원인이었지만 이건 아마 아픔으로 가기 위한 전초에 불과했던 것이다. 촉매제가 되었다. 평소에 나를 돌아보지 않은 대가를 처절히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의 삶의 균형이 무너져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스트레스와 회피하고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억압의 많은 것들이 현재의 나를 밤새 아픔으로 초대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과신하였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더 많이 갖겠다고 욕심을 부렸다. 양손에 떡을 갖고도 모자라 다른 손을 빌려서라도 받으려는 심산이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아픔을 선택한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에서는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했듯이 모든 것은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나는 오늘도 안녕할까? 나는 오늘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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