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Apr 14. 2021

 사춘기 of 사춘기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있다.

오늘 미용실에 방문했다.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려울 것 없는 중 2학년 사춘기 아들의 파마를 위해서이다.

친구들이 파마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에 고민하지 않았고

몇 주 전부터 함께 가달라고 보챘다. '엄마 나 파마머리 잘 어울릴까?'라고 물으며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다.우리가 바람이라도 쐬러가자 할때 고민하는 얼굴이라도 보이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텐데. 분명 잘 자라고 있다는 증명임을 알기에 서운하지만 내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어디든 가기 싫고, 특히 가족들이랑 함께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춘기 아들의 조바심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헤매기도 하고, 상처받아 며칠을 앓을 때도 있는 지금은 빛바랬지만 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무엇이 그리 예민했던지 학교에서보다 특히 집에서 더 까칠했는데 두살 터울 언니랑 많이 싸웠고 육탄전도 불사할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언니와 나는 집이라는 링위에 성난파이터들이었다. 파이터들에게 기름을 부은 건 바로 감정조절이 어려운 아버지었다. 아버지는 우리 자매들만 보면 욕을 하시고 분노하고 화를 내셨다. 질책하고, 비판하고 나무랐다. 항상 무엇을 해도 부족한 여자들이었다. 엄마와 함께 여자라는 이유가 바로 아버지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정말로 아버지는 여자라는 이유가 있었을까?

어버지에게 최초의 여자는 바로 어머니. 나에겐 친할머니. 하지만 나는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는 건 아버지가 까까머리 중학생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고 엄마도 시집왔을 때에는 이미 시어머니가 안 계셨다.


아버지에게 할머니의 기억은 무엇일까? 막내 아들이었던 아버지를 많이 예뻐해주셨으며 집안 일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시고 능숙하고 완벽하게 해 낸 여성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음은 아버지로 하여금 원망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 수도 없는 방황과 자살기도, 친할아버지의 여자문제 등 할머니가 계시지 않음으로 위태로웠던 삶이 아버지의 무의식의 여성성, 어머니는 바로 애증이었던 것이다. 또한 머릿속에 이상화된 여성상이 바로 완벽하게 모든 일을 했던 할머니의 이미지이다. 우리와 엄마는 할머니처럼 완벽할 수 없는대도 아버지에게 완벽이라는 그림자를 벗겨지기가 힘들었다.


우리를 사랑하면서 미워한 감정은 바로 친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투사된 상태일 것이다. 사랑과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섞였다. 한번도 효도해보지도 못하고, 마음껏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 그로인해 아버지는 현실에서의 한계를 알았고 이른 나이에 끝이라는 죽음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죽음은 아버지에게 큰 두려움이지 않을까? 그로 인해 이제까지 불안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다.


세 자매 중 특히 사춘기 때 언니는 아버지와 갈등이 최고조였다. 아버지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언니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

아버지에겐 사춘기. 죽음. 여성이 가장 두려운 문제가 아니였을까? 원망과 사랑과 분노의 감정들이 엄한 할아버지 때문에 억압되었고 무의식에 그대로 눌러져 있다가 사춘기라는 명제 아래 다시 한번 휘몰아치게 되었을 것이다. 언니의 사춘기 때 감정과 바로 아버지의 사춘기 아이의 감정이 맞닦뜨리게 된 것이다. 아주 많이 불안하고 힘드셨을것이다. 이제야 오래 시간이 지나니 많은 것들이 이해되었다.


사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버지로, 나로, 아들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언제나 진행형이다. 아버지의 사춘기는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했지만 꾹꾹 눌러 담아야 했으며, 우리 자매들의 사춘기는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표출되었다. 아들의 사춘기는 자기 안에 머물러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겪고 있다.


사춘기라는 이름은 같지만 다 다르며 발현되고 표현되는 시기도 다 다르다. 이게 모두 성장의 과정인 것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언제 나의 빌어먹을 사춘기 소녀와 또 맞딱뜨리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넷플렉스 '빌어먹을 세상따위' 영화 캡쳐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