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육 그리고 빌런
지긋지긋한 악감정에 대한 굴레를 벗어났기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새로운 곳에 대한 의욕감이 상승하였었다. 근데 막상 텀이 없이 다시 새로이 출근하려 하니 조금은 아쉬움이 들었다. 약간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고 바닥이 난 게이지를 채우고 완벽히 리셋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게 바로 이동을 하여야 했다.
오픈 공사로 인해 한 달 반간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교육일정을 잡혔었다. 지방에 처음 출점이었기에 피치 못하게도 서울로 가야 했다. 다행히도 숙소는 잡아주었었다. 물론 열악한 고시원이었지만 그래도 전액 지원을 해준 게 어디냐라며 만족하였다. 이전까지 서울을 간 기억도 드물고 이리 장시간 머물른다는 게 낯설면서 불안하기도 설레기도 하였다.
첫 출근은 1월 1일이었다.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시원에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다음날 함께 교육을 받는 동료들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였다. 다들 뭔가 어색함에 쭈뼛쭈뼛거렸다. 일단 먼저 교육받을 매장이 두 곳이 있었다. 숙소 근처에 강남점과 또 다른 곳으로 목동점이 있었다. 인원들을 나눠서 분배해야 했는데 목동 같은 경우는 거리가 꽤나 있어 도보로 출근 가능한 강남을 선호하였다.
다들 눈치작전이 시작이 되었다. 나만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면접당시 담당자로 있던 점장님이 정리를 하여주었다. 본인 나름의 기준에 배분되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납득과 만족을 주지 못하였다. 목동으로 선택된 이들에게는 불만과 아쉬움이었고 강남에 출근하게 된 인원들은 안도와 만족감을 가졌다. 그래서 묘하게 초반부터 뭔가 파벌이 나뉜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내심 불편했다.
다행히 나는 중고매장의 경험자이기에 강남에 선택을 받았다. 출근을 하게 된 날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기다렸다. 강남에 배정된 인원은 나를 포함한 5명이었다. 성별로는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었다. 다들 첫인상은 뭔가 차분하고 인상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매장으로 가서 교육을 받고 차근차근 적응을 하였다. 같은 업종임에도 유사점보다 차이가 있었기에 혼란이 들었다.
이전 회사는 중고매장을 영업을 시작한 지가 현재 업체보다는 상당히 앞서서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스템적이나 매뉴얼적으로 명확하게 정리가 되고 안정적인 느낌이 떨어져 있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다운그레이드된 버전에서 다시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묻고 체험하며 노력하였다. 척박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땅의 씨앗을 심는 역할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였다.
하루하루 지나고 적응을 빠르게 하였다. 나름 경험이 있다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고 그로 인한 이해력이 높아 습득이 높았다. 그리고 매장직원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여서 모르는 것들이 시스템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자유롭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 시절 상당히 일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재미났다. 고시원의 열악한 상황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침대 외에는 거의 공간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좁았지만 마음은 편안하였다.
퇴근 후에는 가끔 강남점에 배분된 인원들과 맥주 한잔을 하기도 하였다. 서로의 고충도 나누고 차후에 있을 오픈에 의욕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동질감과 같은 목표가 있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지고 공감이 잘되었다. 당시 퇴근 후 주로 음주를 같이 즐겼던 멤버는 나를 포함해 세명이 있었다. 셋다 적당한 주량과 술을 마시면 텐션이 올라가는 스타일이었다.
한 명은 당시 부점장으로 내정되어 본 나보다 2살이 많은 남자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1살이 많은 여자였다. 나이 터울이 크지 않다 보니 거의 반말반 존대반으로 대화를 하였다. 거의 일주일에 3번 이상은 같이 술을 마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이 멤버들이 꽤나 합이 좋아 앞으로 오픈하고 나서도 이 관계가 유지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항상 내 인생은 기대와 달리 역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빈번했기에 그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끝 마무리 시점에서는 상당히 지저분하게 되었다.
초반에도 뭔가 묘하게 불길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그리 대수롭게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다들 생각보다 쿨한 성격이다라고 생각했기에 큰 사고 아니면 그냥 넘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물음표가 되고 흔들리기 시작한 사건은 곧 터졌다. 서울에 오고 보름 정도가 되었고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기에 다시 내려갈 날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공사 일정상 문제로 오픈이 2주나 딜레이 되면서 자연스레 서울에 있을 시간이 늘어났다.
그 소식에 우울한 마음에 겸사겸사 음주 멤버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둘의 음주 스타일은 노 안주 원샷이었다. 상당히 빠른 템포에 따라가기가 힘들어 이미 나는 1차로 가진 감자탕집에서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2차로 슬도 깨울 겸 노래주점에 가서 맥주와 노래를 불렀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이 되기 시작하였다. 부점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사람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같이 동해했던 여자 동료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퍼부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다. 내 딴에는 나름 저지를 하였고 듣는 여성도 몇 번은 장난으로 넘겼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고 이어졌다. 심지어 그 남성은 유부남에 딸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분위기를 수습하고 다시 숙소로 가자고 하였지만 기어코 술을 더 먹자하면서 고시원 아래에 있는 이자카야를 가게 되었다.
둘도 엄청난 속도로 술을 마시고 마신양이 어마 어마하였고 눈빛의 초점이 흔들렸다. 이때 나는 거의 테이블에 쓰러져있었다. 나의 주사는 취하면 잠을 자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이때쯤에 더 이상 내가 말릴 수 없는 수준이었고 여성분도 불쾌한 감정이 표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필사의 정신으로 억지 억지 말리면서 정리를 하였는데 운이 나쁘게도 휴대폰이 떨어지면서 액정이 깨졌다. 약정이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하며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며 정신이 뚜렷해졌다.
그렇게 겨우 숙소로 돌아가 사고는 일단락되었다. 씻고 작은 방 안에서 누워서 생각하였다. 역시 어디든 빌런들은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잊고 있었다. 너무나 좋게만 생각했던 것이 없다. 항상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 나쁜 흐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면서 밤이 지나갔고 다음날이 왔다. 역시 빌런들의 대응방식은 한결같은지를 마주하였다. 너무나 태연하게 술을 먹고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이곳에서도 악연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