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테일의 세계관 실험, 풍자와 SF
거목의 그늘 아래 피어난 과실은 짙은 농도의 과육처럼 풍요롭고도 충만하다.
영화는 그 과실을 풍자와 위트로 다듬는다. 그 시선은 시니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위선자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웃는 동안, 문득 우리 삶의 단면이 겹쳐지고,
그 웃음 끝에 미세한 씁쓸함이 스며든다.
인간은 본디 결여된 존재다. 그래서 채움을 갈망하고, 때로는 집착한다.
그러나 그 여정은 예측 불가능하다. 길은 뚜렷하지 않고, 때로는 나의 의지가 스스로 샛길을 탐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방향을 잃는다. 영화는 이 표류의 시간 속에서 몸 곳곳에 모래주머니를 채워준다.
날려가지 않도록, 가벼워지지 않도록.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좌시해선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그 안내는 네비게이션이자 우화이고, 그 끝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우아한 종착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자신만의 풍자적 미학을 다시 한 번 빛내는 작품이다.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유머와 부조리의 교차점을 잡아내며, 과장되거나 고조된 풍자가 아니라,
“우스움 속에 낯설고 불편한 진실을 숨겨 놓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웃고 있는 순간, 사실은 무언가에 찔리고 있다는 감각. 그 감정이 영화를 지배한다.
특히 노동과 착취라는 주제를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에 빗대어 보여주는 방식은
설국열차와 기생충의 맥을 잇는 ‘봉준호 유니버스의 사회학’이라 부를 만하다.
이 영화의 ‘미키’는 마치 현대판 찰리 채플린처럼, 시스템에 편입된 몸짓을 반복하며 관객에게
“기계화된 인간”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는 듯하다.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 그는 더 이상 ‘하이틴 스타’의 전형이 아니다.
『더 배트맨』을 거치며 이미 ‘감정의 질감’이라는 연기적 스펙트럼을 증명해냈고,
이번 『미키17』에서 그는 미키 17과 18, 두 존재의 미세한 결 차이와 심리적 단층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단일 배우가 분열된 자아를 연기하는 방식에 있어, 이보다 정제된 균열은 드물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르적 혼종성도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이다. 표면적으로는 SF지만, 그 내면에는 블랙코미디, 멜로,
그리고 괴수물까지 녹아들어 있다. 특히 크리퍼라는 존재는 『옥자』의 연장선에서 봉 감독이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일종의 ‘귀환’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장르적 전환이 “장르 간 충돌이 아니라 유기적 재배열”로 작동한다는 점이,
이 영화를 단순한 SF가 아니라, 복합장르 서사의 한 진화로 만들어 준다.
『미키17』은 블랙코미디로서 분명한 미덕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많은 주제를 한 프레임 안에 담으려는 욕심이 엿보인다.
인간의 존엄, 권력자의 위선, 자연과의 공존까지—그 각각은 독립적인 영화 한 편으로도 충분한 테마들이다.
이들이 한 작품 속에서 얽히며 제시될 때, 관객은 이야기의 관찰자로서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게 된다.
“전하려는 바는 많지만, 도달하는 감정의 무게는 그만큼 희석된다”는 말이 여기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는 이 영화의 독창성이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처럼 작용된다.
SF라는 대분류 아래 기대를 품고 관람을 시작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마치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계속해서 낯선 장르적 얼굴을 꺼내 보인다. 로맨스, 블랙코미디, 철학극, 생명윤리 드라마까지…
그 경계의 유려함이 때로는 “이 영화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감각적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며,
특정 관객층에게는 낯섦을 넘은 소외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초중반의 서사는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납득될 만큼,
미키 17과 18의 관계, 그들의 갈등은 흥미롭고 세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정점에서 영화는 정리 없이 곧장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고, 서사의 리듬은 갑자기 가속 페달을 밟는다.
이 속도 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내러티브의 반동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고, “몰입의 이탈”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속도가 빠르다고 모든 것이 다 스릴 있는 건 아니다. 가속보다는 방향, 질주보다는 정리를 선택했더라면
완주감 있는 체험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풍자의 미학
자본주의와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을 위트 있게 해석.
찰리 채플린식 노동의 반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
� 로버트 패틴슨의 섬세한 이중 연기
미키17과 18 사이의 감정과 정체성 차이를 밀도 높게 표현.
커리어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한 열연.
� 장르의 유기적 혼합
SF 위에 블랙코미디, 로맨스, 생명윤리까지 유려하게 덧입힘.
크리퍼라는 생명체를 통해 ‘옥자’와 연결되는 생명감의 확장.
� 비주얼과 세계관 설계
얼음 행성 니플하임의 설계는 서사 이상의 존재감.
미장센과 공간 연출로 장르적 몰입감 강화.
�️ 주제의 과밀도
인간, 권력, 자연 등 너무 많은 주제를 짧은 런닝타임에 담으며 핵심이 흐려짐.
� 장르적 변주가 일부 관객에겐 이질적
SF라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 예측불가한 전개가 몰입을 방해할 가능성.
⏱️ 후반부 서사의 과속
중반까지 세밀했던 서사가 갈등의 절정에서 정리 없이 급전개.
관객은 이야기의 반동에 밀려나 몰입에서 이탈할 우려 있음.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펼치는 장르적 실험이자 윤리적 시선의 집약체입니다. 그 서사에는 미완성의 흔적이 있지만, 바로 그 미완성 때문에 가능한 해석의 여백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이 됩니다.
✒️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가 아니라, 과잉된 의미 속에서 걸러지는 사유”
그것이 이 영화를 기억에 남게 만듭니다.
“결점이 있었기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지는 영화.”
완벽하지 않지만, 완성 이상의 고민을 남기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