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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별 Nov 30. 2024

회사에서 쓰러진 그날, 나의 인생 2막이 열렸다.

무너진 일상, 그 자리에 띄운 작은 꿈의 배

29살, 회사에서 팩스를 보내던 중 눈앞이 점점 흐려지더니, 곧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과 함께 바닥이 급격히 가까워졌다. 인생 3번째 쓰러짐이었다.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익숙한 날들이었다. 금세 일어나긴 했지만, 온몸에 붙어있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급히 원인을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고, 그날 오후 회사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달팽이관 문제인가 싶어 귀와 청력 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도 불안함이 남아있자, 의사 선생님께서 말을 이어가셨다.


“요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과 어지럼증을 겪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최우선이에요”




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은 유난히 차 안도 답답하게 느껴졌고, 창밖으로 스쳐가는 거리가 낯설게 보였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강하게 들었다. 상사는 아침에 한 말과 오후에 한 말이 달랐다. 오전에 지시한 대로 일을 해두면 어김없이 전화가 와 이렇게 말했다.


“왜 일을 이렇게 했어?!” 

“대표님이 아까 오전에 이렇게 처리하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다시 처리해!”


다시 처리하라는 상사의 말에 입술이 떨렸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억울함이 들었지만, 결국 말없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전화 벨 소리가 귀를 찌르는 소음으로 느껴졌다. 한 번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명절 선물로 녹음기를 사달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웃음 대신 씁쓸함만 남았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쌓여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었다. 어느 날은 속이 답답해서 차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또 어느 날은 억울함과 분노가 차올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쌓여 결국 내 몸을 무너뜨린 건 아닐까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며칠 쉬었으면 좋겠다.’라는 끔찍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른 순간, 문득 취미로 하고 있던 온라인 액세서리 판매가 떠올랐다.




동대문에 데이트를 갔다가 재료를 사서 커플 팔찌를 만들던 일이 시작이었다.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판매로 이어지고, 핸드메이드 제품 플랫폼에서 입점 제안이 와서 제품 판매를 이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재료를 찾아볼 때의 설렘, 완성된 작품을 올리고 첫 리뷰를 받았을 때의 기쁨, 그 일이 회사 일로 지친 나를 숨 쉬게 해준다는 느낌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작품을 보며 폭발할 것 같았던 감정들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재료를 만지고 새로운 디자인을 떠올릴 때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다시 내 삶을 움직이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취미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이 조금은 안정되었다. 회사를 떠나 그 일이 내 전부가 되는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결심한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퇴근 후에는 작품을 만들어 업로드하고, 주말마다 플리마켓에 나가 직접 사람들을 만났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것이 피곤할 법도 한데, 일단 회사를 떠나면 모든 피로를 잊을 만큼 에너지가 차올랐다. 원석 팔찌, 핸드폰 케이스와 함께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레진’을 이용한 액세사리를 판매했다. 작은 성공들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고객 리뷰가 쌓이면서 고객들이 점점 늘어났고, 공예를 배우고 싶다는 문의도 생겨났다. 처음에는 카페를 빌려 수업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말에만 정기적으로 사용할 공간을 빌려 독립을 준비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목표를 정하고 나니 모든 게 신이 났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칼라믹스 공방에서의 첫 공예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시작 아니었을까. 그렇게 어렴풋했던 기억들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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