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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Aug 03. 2024

숯댕이


더워서 이틀째 잠을 못 잤다. 아이스팩을 수건에 감싸 안고 자다가 깨고, 선풍기 타이머가 끝나서 깨고, 다시 잠에 못 들고. 날은 덥고, 머리는 멍하고, 할 일은 많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결국 가기로 했다.


약 한 달 만에 다시 숯댕이를 만나러 갔다. 숯댕이는 멀리서 기척을 느끼자마자 온몸을 던지며 나를 반겼다.




미적거린 탓에 산책을 7시에야 시작했다.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에서 길치인 내가 무사히 집에 가려면, 8시엔 산책을 끝내야 한다. 왕복 5시간 거리이면서 꼴랑 1시간 산책이라니. 더 빨리 왔어야지, 후회하며 산책을 시작했다. 오늘도 시작부터 숯댕이는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래도 이젠 익숙해졌다.




평소엔 동료들과 함께 왔지만 오늘은 나 혼자 숯댕이 산책을 맡아서,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간식을 챙겼다. 숯댕이를 보면 화를 내는 온 동네 ‘마당개’들을 달래줄 소정의 뇌물.


이쯤일 텐데. 숯댕이를 보면 무섭도록 화를 내는 개. 역시나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온몸으로 화를 냈다. 급하게 준비한 뇌물을 그에게 던졌다. 그래도 화를 내서 하나를 더 던졌다. 그는 간식을 먹지 않았다.


아니, 다시 보니 그는 간식을 먹을 수 없었다. 줄이 짧아 떨어진 간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눈앞에 간식을 보고 애태울 걸 상상하니 마음이 또 찝찝했다. 기둥에 숯댕이를 잠시 묶어두고 그 개에게 다가갔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이곳에 수많은 ’마당개‘ 중 한 명. 그 앞에 떨어진 간식을 들어 가까이에 놓아주었다.






다시 숯댕이와 걸었다. 땀이 줄줄 나서 옷이 다 젖었다. 숯댕이도 심하게 헥헥거렸다. 목이 마른 모양이었다. 산책 후에 마셔도 될 거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비라도 왔으면 빗물을 마실텐데.


물이 있는 숯댕이 집으로 가려면 다시 한참을 되돌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는 숯댕이에게 화내는 개들이 또 있다. (정신이 혼미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물 한잔 줍쇼 할 뻔했다. 결국 숯댕이와 길을 되돌아갔다.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산책을 하면 되지!


길을 되돌아가면서, 정말 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에 울컥 화가 났다. 새들은, 고양이는, 고라니는 뭐 어디서 물을 마시란 말인가? 흐르는 물이라곤, 농약으로 오염된 것 같은 배수로의 물뿐이었다.


공공음수대의 중요성이 이야기되는 때다. 하지만 공공음수대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다. 그 물을 비둘기가 마시게 사람들이 두지는 않을 것이니. 원래 있었던, 오염되지 않았던 개울물 같은 건 다 어디로 갔을까.


거의 다 되돌아갔을 즈음, 산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물을 발견하고 숯댕이가 할짝할짝 핥았다. 조금 더 걸어가서 마시고 또 걷고를 반복하며 갈증을 해결했다.



산책 후엔 숯댕이가 물고 뜯을 껌 간식을 준다. 내가 간 다음에 덜 심심하길 바라면서. (몇 분짜리도 안 되지만) 그렇게 숯댕이를 다시 묶어두고 집으로 돌아갈 때, 숯댕이는 늘 떠나는 우리를 향해 울부짖곤 했다. 몸이 천근만근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산책을 마음껏 하고 나면, 지쳐서인지 후련해서인지, 헤어질 때 울부짖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숯댕이를 묶어두고 떠날 때, 숯댕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푹 잤으면 좋겠다. 불면의 밤은 인간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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