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나를 챙길 시간이 없다. 나의 스케줄은 어느새 동물 돌봄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동네 고양이들, 왕복 다섯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숯댕이와 앵두의 산책, 그리고 그 근처에 살고 있는 고양이, 피터.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철과 길 위에서 보낸다.
피터는 2년 전 처음 만났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그는 입이 아팠다. 길고양이에게 고질적인 문제인 구내염. 한 달에 한 번 그를 만날 때마다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러다 더는 외면하기 힘들어졌을 때, 약과 사료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약으로 안 될 것을 알았지만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입에서 농이 줄줄 흘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매 겨울, 그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 예상과 달리 언제나 그 추운 겨울을 버텨냈다. 입에 농이 흐르면서도, 아픈 치아로 사냥을 한 흔적도 보였다. 내가 챙겨준 겨울집은 그의 침과 농으로 언제나 더럽고 냄새가 났다.
한 번씩 그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정말로 이젠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안심했다. 그가 더는 입으로 힘들게 숨 쉬지 않아도 되고, 아프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다시 나타났다. 어두운 밤, 트럭 아래서 힘겨운 숨소리가 들리면 피터다.
습식을 주면 경계를 하다가 이내 다가와 먹는 피터.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까? 사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를 보는 것은 비질(Vigil)이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꽤 큰 비용을 변호사 선임을 위해 쓰게 되었다. 그 돈은 나의 죄명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 나의 사회적 가치를 위해 들어가는 돈. 그리고 그 돈은, 내가 맨 처음 피터를 보았을 때 선뜻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것이 찜찜함과 불편함으로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 돈을 쓸 이유가 충분한가.
갑작스럽게 피터를 치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은 그 찜찜함의 결과였다. 애초에 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동물 돌봄이 개인의 몫으로 전가되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결단을 내리니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2년 간 돌봄을 도왔던 재개발구역의 돌보미가 구조를 도왔다.
구조 날, 피터는 훨씬 더 심각했다. 농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습식을 주는 나에게 여느 때처럼 다가오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피터는 틀에 들어가지 않았고, 들어갔다가도 금세 나와버렸다. 오늘 피터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피터는 지쳐있었고, 습식을 먹는 대신 꾸벅꾸벅 졸았다.
결국 나는 졸고 있는 그를 박스로 가둬 틀로 옮겼다. 그를 태우고 병원에 가는 길, 익숙한 트럭을 보았다.
약 70명의 돼지를 도살장에 보내고 난 빈 차였다.
숯댕이와 앵두 산책을 하는 동안, 피터의 수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목까지 궤양이 있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발치를 하면 통증을 줄이기는 하나 어쨌든 이미 퍼진 궤양은 약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순간 당연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이 ‘안락사’라는 것이,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나는 여전히 별이를 안락사했던 그 사람이구나. 생추어리 선언을 하고 온 날, 참 아이러니했다.
수의사가 보여준 피터의 입은 엉망진창이었다.
피터는 시골의 한 빌라 주차장에 살았다. 개는 묶여 지내는 게 당연한 동네였다. 아픈 고양이를 치료할 이는 없었다. 피터는 아픈 와중에도 사냥을 했고, 2년 동안 본 나에게 여전히 매번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다. 난 아직 피터의 나이도 성별도 모른다.
퇴원 후 피터가 어떻게 돌봄을 받아야 할지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고 고민했다. 갑갑하고 낯선 실내 대신 그가 가장 편한 공간으로 내가 가는 것이 결론이었다. 진통제와 그나마 먹기가 수월한 음식을 들고, 나는 더 자주, 더 오래, 지하철과 길 위에서 시간을 한동안 보내게 될 것 같다.
다가오는 겨울, 정말로 피터는 떠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