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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Oct 21. 2024

우리의 자유


숯댕이에겐 자유 구간이 있다.

사회에서 그것은 ‘오프리쉬’다.



산에 TV가 있다


사람들이 가전제품부터 정체불명의 약품병까지 갖다 버리는 산길이 있다. 온갖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펼쳐진 그곳엔 깨진 유리가 너무 많아 처음 그 길을 갔을 땐 숯댕이 발이 베일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숯댕이를 보며(막을 수도 없었고) 그 구간을 주 산책 경로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 구간은 제초제 경고 현수막과 쓰레기 때문인지 등산객도, 주민도 거의 찾지 않는 버려진 쓰레기산 같았다.



과거 산으로부터 물이 내려와 흘렀을 것 같은, 동그란 돌멩이와 바위가 가득한 물길 비슷한 게 남아 있는 그 산은 우리의 자유 공간이 되었다. 숯댕이는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자유롭게 보낸다. 내가 쥔 줄을 내려놓으면 숯댕이는 산길을 뛰어다닌다. 구간반복한다.


언덕을 올랐다 내리막길을 갔다, 그렇게 산을 누비다 내가 신경 쓰이면, 사라졌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후다닥 질주하며 나에게 달려온다. 억압된 자유는 터져 나오듯 그렇게 표현된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 숯댕이는 결박된 채 살면 안 되는 존재다.



일몰 후엔 모든 게 어둡고 그때 들리는 것은 숯댕이가 낙엽을 밟는 바스락 소리, 폭주하듯 달리는 소리, 뒷발로 흙과 나뭇잎을 파헤치는 소리, 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전부다. 개발의 매력을 잃어버린 땅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언젠가 숯댕이의 줄을 놓친 적이 있었다. 그는 신나서 폭주하듯 달려갔다. 너무 당황한 나는 그를 잡으러 따라가다 주르륵 미끄러졌다. 머리에는 최악의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넘어진 나를 발견한 숯댕이는 그 특유의 명랑한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프리쉬 중에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조금 미적거리지만 결국 나에게 달려온다. 내가 땅에 주저앉아 있으면 달려온다. 나는 달려와주는 그가 고맙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그대로 영영 달아나 인간의 줄에 묶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

 

그렇게 그 산에서 분풀이하듯 달리고 나면 나는 그를 결박한 줄을 쥐고 다시 민가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나마 깨끗하게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신다. 숯댕이가 발로 첨벙해 버리면 흙탕물이 된다. 덥고 숨이 차면 나는 길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드러누운 내 얼굴에 부담스럽게 침을 바르고, 또 놀러 가자고 팔이 끊어지게 잡아당기는 숯댕이로 오래 쉬진 못하지만.



정수된 깨끗한 물만 마시고, 진흙이 묻지 않은 신발과 옷으로 생활하고, 인간 종만 앉으라고 해둔 의자에만 앉는 삶을 숯댕이를 통해 조금씩 빠져나온다. 쓰레기 옆에도 눕고, 길 아닌 곳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다닌다. 수도관을 흐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인프라에서 조금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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