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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Nov 16. 2024

종차별이라는 보


태어나 처음 오체투지를 했다. 오래전 운동을 하다 염증이 생긴 뒤로 무릎은 늘 골골거렸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코르셋을 단단히 조이던 대학생 때, 거대한 대학교 언덕을 싸구려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닌 과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가 오면 쑤신다.


그래서 긴장됐다. 나눠주는 무릎 보호대가 무겁게 느껴졌다. 전 날 밤 자정 넘어서까지 환경 운동가들 틈에서 술을 마신 덕에, 숙소 화장실에 귀신이 있다고 확신한 덕에 잠도 설쳤다. 퀭하고 멍하고 쑤시는 무릎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징 소리에 맞춰 세 걸음 걷고, 손을 모으고, 엎드리고, 다시 일어나고.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오체투지는 그 속도 덕분에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무릎도 잘 따라줬다. 그런데, 힘든 건 속도였다.


나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다. 생각이 언제나 가동되는 탓에 그렇다. 한 시간이 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별별 생각을 했다. 행사장에 당연하게 있던 육식 음식들, 동료에 대한 걱정, 누군가에 대한 원망,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나 하는 생각들. 번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국가에 의해 갯벌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자리였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오체투지를 해봤습니다. 징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숲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흐르는 물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 번씩 절을 하러 갑니다. 제가 절을 하러 가는 곳은 도살장 앞입니다.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소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줄지어 문을 통과합니다. 저는 그 문 너머의 이어지는 죽음을 막을 수 없어서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절을 하는 시간 동안 엎드린 제 앞을 스쳐 지나는 트럭을, 트럭에서 나오는 동물들의 비명을 듣습니다. 평생 오물 속에 산 몸이 내뿜는 냄새를 맡습니다. 오늘 오체투지를 하며, 우리가 하나로 모은 그 마음이, 자신의 알, 모유, 자유, 몸을 빼앗기고 있는 동물들에게도 연결되기를 바라며 몸을 굽혔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강을 흐르게 하기 위해, 생태계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 마음들이 ‘보’처럼, ‘댐’처럼 막혀 어떤 종에게 닿지 않는 것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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