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주 운동을 하는 편이다. 집을 나서기 전 조깅화 끈을 고쳐 매 자면 심장이 먼저 반응을 한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이런 작은 흥분은 보통 과한 수준의 운동량으로 연결되곤 하는데, 다음날 알이 배여야 만족스럽다. 근육통이 없으면 시시하고 운동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운동 후의 뻐근하고 아릿한 그 느낌을 즐길 정도로 자기 가학적 성향이 있으니 누가 봐도 운동 중독의 증상이 농후하다.
필자는 조깅을 할 때 시간을 재는 버릇이 있다. 집 앞 고등학교 운동장 한 바퀴를 2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운동 초기에는 2분 20초 대에 들어오기도 버거웠지만 허벅지에 알이 배일 정도의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어 기록을 당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기록은 정체되었고 신체는 고통스러웠으며 재미까지 반감되었다. ‘즐겁고 건강하자고 운동을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느긋하게 즐기자는 마음으로 속도를 줄여보았다. 기록은 포기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한참 아래에서 ‘설설’ 뛰어본 것이다. 그날 필자는 새로운 것을 보았다. 일종의 개안이라고 할까. 기록 욕심으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주위 아파트에서 뿜어내는 형광 불빛과 산너머 은은하게 퍼지는 달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초저녁의 운동장을 아늑하게 품어주고 있었고, 하늘의 구름과 청량한 산들바람의 존재가 새삼스레 다가왔다. 지금의 동네에 이사 온 것이 5년째이고 이 운동장에서 누적된 달리기가 그 세월에 비례할 진 데 이제야 ‘별이 빛나는 밤’의 정경에 눈뜬 것이다. 그날은 그저 즐기며 달렸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을 느꼈고 부드러운 별빛을 보았으며 운동화 밑창이 흙을 밀어내는 소리를 귀에 담았다. 분명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롭고 멋진 조깅이었다.
노력을 짜내고 스스로를 한계치로 몰아붙이며 사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력을 다해 최선을 쏟아붓는 사람일수록 삶의 템포를 늦추고 유유자적하는 시기도 있어야 한다. 자기 계발서가 각광받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분초를 다투며 사는 ‘열심히 뛰는 삶’에 열광하는 시대이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대로 열심히 살면 될 것이고 지치고 버거운 이들은 삶의 쉼표를 살며시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벽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출에 희열을 느끼는 이가 있을 것이고 고적한 밤의 달빛을 사모하는 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이은 시험과 스펙 쌓기에 매몰되어 있는 청년들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저녁밥도 챙기지 못하고 학교며 아르바이트 장소, 도서관으로 이리저리 부유하는 그들의 처연한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늘 전력질주 만을 강요받는 그들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은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 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시기를 거쳐온 선배이자 현 학부모의 입장에서 잠시 템포를 늦추어 심호흡이라도 해보라 권하고 싶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아름다운 삶의 단편들이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팍팍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상현을 지나 보름으로 흘러가는 늦여름이다. 조깅이든 걷기든 잠시 밤하늘을 올려보시길. 고고한 달빛에 물든 밤의 정경은 한껏 아름다울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9월 5일 자 단국대 신문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바탕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