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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18. 2020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자기야, 나 있잖아. 라스베이거스에 올 때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라는 영화가 생각나거든. 알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으로 나왔고. 그리고 그는 이 영화로 그는 스타덤에 올랐지. 아마? 그런데 말이야. 10대 후반이었던가 3~4번도 넘게 봤고 20대 때도 생각나서 한 두 번 본 것 같은 이 영화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지. 하지만 노래는 또렷하게 생각나. Sting의 Angel eyes. 왜 그럴까? 그런데 웃긴 건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막 보고 싶거나 하진 않아. 그냥 막연하게 '내용이 뭐였더라? 누군가 자살을 했던가? 총격씬이 있었던가? 배드씬이 있었던가' 정도의 생각들이 라스 베거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간간히 떠올랐다 사라지는 정도야. 참 이상하지?"

 그는 내 말을 듣고 담배를 길게 빨았다. 그리고 우리가 빌린 97년식 구형 콜벳의 운전대를 틀어 코스모폴리탄 호텔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그는 담배를 모두 내뿜고 나서 잠깐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했다.

"사람의 뇌는 영상을 기억하는 것보다 음악을 더 쉽게 기억한다더라. 그래서 어릴 때 눈을 통해 뇌에 저장된 것들이 기억이 잘 안 난다 해도 당시에 주로 들었던 음악 같은 걸 들으면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영화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당시 영화를 볼 때 흘렀던 음악을 들으면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데 이상하네. Sting의 Angel eyes도 기억하고 있고, 물론 당신이 그 음악도 몇 번은 들었을 테고 말이야... 게다가 당시 이제 30대 초반이라구. 그런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영화 내용이 기억 안 난다는 건."

 그는 구형 오디오에 시가잭으로 연결한 그의 스마트폰을 한 손으로 능숙하게 조작해 Sting의 Angel eyes를 검색했다. 잠시 후 Sting의 음악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는 내 반응이 궁금했던 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 않고 주차구역 내에서 천천히 차를 돌렸다. 

"모르겠어.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

그는 다시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고 뱉은 뒤,

"그럼 오늘 호텔에 좀 일찍 들어가서 함께 영화를 볼까?"

"아니야,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 자기야, 미안한데 우리 아리아 호텔로 가면 안 될까? 오늘 갑자기 카본의 파르메르산 치즈가 먹고 싶어 졌어. 그리고 치즈에 착 달라붙는 찐득찐득한 버번도 한 잔 생각나고. 괜찮겠어?"

그는 말없이 주차장의 출구로 차를 돌렸다. 오디오에서는 그가 리와인드를 해놓은 Sting의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고 나는 카본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치즈와 함께 버번을 마시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생각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carb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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