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늘 Dec 15. 2020

가락국수 한 그릇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내가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시기는 주로 겨울이 많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차가워 보이는 건물과 쌓인 눈들, 거기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와 거기에 인적이 드문 거리. 그 쓸쓸해 보이는 것과 고독함이 좋아서 정도랄까. 그래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겨울에는 이 곳 부다페스트의 적당한 호텔을 잡아 홀로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를 보내고 있다. 부다페스트에 머물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대로나 인도가 큼지막해서 여기 저거 걸어 다니기에 좋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의외로 런던이나 파리, 스페인 등 도시의 가난하고 젊은 힙스터들이 주말에는 이곳저곳의 바나 클럽에 꽉 차있어서 외롭거나 심심할 때는 종종 그런 곳에 들려 친구들도 만들 수 있고. 몇 해간 이 곳에 종종 방문하고 머물면서 몇 명의 친구와 그리고 몇 개의 좋아하는 레스토랑들이 생겼다. 내가 이 곳에서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경우는 저렴한 가격에 굴라시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작은 식당부터 초호화스러운 군델같은 레스토랑까지 다양했는데 오늘은 그중 군델에서 생긴 일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내가 군델을 처음 찾은 것은 부다페스트에 몇 번 안 와봐서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 아직 환상이 있을 때였다. 그런 시기에는 대부분 도시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미지의 세계에 관한 탐험을 하기도 하고 그 도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음식들을 찾아 맛보기도 한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가장 고급스럽다는 음식점인 군델은 당시 내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고 난 다음 날 점심을 먹은 식당이었고 생각보다 저렴한 런치 가격과 만족스러운 서비스 덕에 이후로 자주 찾게 되었다. 처음 이 곳을 찾은 이후 나는 12월 동안 4~5번 정도의 런치 식사를 했으며 한 번의 디너를 즐겼다. 비수기인 겨울 한 달간 이렇게 자주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은 드물었고 팁도 두둑하게 주는 편이어서 나는 금세 그곳의 매니저와 웨이터, 웨이트리스와 친해졌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는 런던에서 친구들과 보내기로 했으나 갑작스러운 폭설과 강풍으로 돌연 비행기가 취소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2~3일을 홀로 부다페스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홀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기 외로웠던 나는 점심 즈음 군델에 전화를 걸어 디너 예약을 부탁했고 나를 잘 알고 있던 매니저는 방금 취소가 된 자리를 바로 내 자리로 돌려주었다. 나는 저녁시간에 맞춰 군델에 갔고 혼자만의 성대한 디너 스페셜 코스를 즐기기 시작한다. 식사를 하면서 홀의 창가 자리에 단이 약간 높은, 누가 봐도 예약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 보이는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를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간 이 곳에서 식사할 때도 늘 그 자리는 비어있던 것 같았다. 나는 안면이 있는 웨이트리스가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불렀다.

"수지 씨,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홀이 꽉 차 있는데 저 자리는 비었네요?"

나는 그 자리를 가리키며 웨이트리스에게 물었다.

"아, 픽터 씨. 맞아요. 저 자리는 오늘 예약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답변을 얻었고 더 이상 내 식사를 저 자리로 인해 방해받고 싶지 않아 식사에 집중했다. 나의 크리스마스 디너 시간은 이윽고 끝이 났다. 언제나 그렇듯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나는 계산을 하며 다시 그 자리를 보았는데 그 자리가 여전히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폭설과 강풍으로 누군가 노쇼를 했겠거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군델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해, 나는 다시 부다페스트의 겨울 안에 있었다. 숙소에서 온천을 즐기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적당히 시간을 가지고, 전보다는 익숙해진 몇 곳의 음식점들에서 식사를 하며 겨울을 즐겼다. 물론 군델에도 서너 번 갔고. 군델에 갈 때마다 앉고 싶었던 그 자리는 늘 비어있었고, 그래서 웨이트리스 수지 씨에게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죄송해요. 픽터 씨. 그 자리는 예약이 있답니다."

작년에도, 그리고 갈 때마다 비어있는 그 자리였기에 나는 궁금증이 폭발했다.

"아니, 수지 씨. 제가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이 군델에 몇 번이나 왔는데... 저 자리 말이오. 늘 비어있었다오. 그런데 늘 예약이 있다고? 저 자리는 누구를 위한 자리인 거요? 왜 앉을 수가 없는 거요?"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수지 씨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아, 픽터 씨. 미안합니다. 잠시만요."

라고 말하고 수지 씨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구리 료헤이의 가락국수 한 그릇을 추억하며 3p.







이전 12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