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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05. 2020

다찌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초밥은 다찌에서 먹어야 제 맛이죠."

그는 오늘의 이 자리가 무척 유쾌한 지 눈가에 주름을 진하게 만들어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성게알 초밥을 손으로 집으며,

"여기 말이지요. 무척 예약하기 힘들었어요. 연말인 데다 워낙 인기 있는 식당이고... 그래서 한 달 전부터 거의 예약이 풀로 차있는 곳이거든요. 그래도 오늘 나기사 상 만난다고 해서 몇 번 안면이 있는 오너 셰프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서 없는 자리 만든 거랍니다."

그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결혼을 한다거나 연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연찮게 친구의 소셜 사진 속에 있는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그가 내 친구를 졸라서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술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등 몇 가지 취미가 비슷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술자리나 밥자리에서의 비용을 대부분 그가 지출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큰 부담 없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몇 해 전 시작하던 애플리케이션 관련 사업이 추가 투자도 받고 매스컴에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에서나 해외를 오가며 비즈니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명문대를 다니며 공부에만 몰두해 온던 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도 자신의 비즈니스에만 매달려오던 턱에 최근에 나름의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그간 즐겨오지 못하던 문화적인 부분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푸드 칼럼니스트로 몇 곳의 잡지에 꾸준하게 글을 써왔고 방송에도 종종 노출이 되곤 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기사 상이 좋아하는 음식점을 소개해주세요. 비용이라면 얼마든 상관이 없습니다. 음식이건 술이건 모두 제가 대접하지요. 물론 집에서 모셔오고, 데려다도 드릴게요. 하핫."

이라고 처음 만났을 때 제안을 해왔고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정말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게 되었다. 나 역시 일주일에 한 두 개의 원고와 아주 가끔 있는 방송일을 제외하면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부담 없이 괜찮은 식당과 바 등에서 술과 음식을 사준다는 친구가 있어서 나쁠 껀 없기에 벌써 3개월째 이런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 중이다. 

"진로쿠 초밥도 예전 나기사상 칼럼에서 봤어요. 가성비 좋은 초밥집이라고. 그래서 혼자서 종종 와서 런치에 가볍게 먹곤 한다고. 후쿠오카 본 시내에서 멀지도 않은 쿠루메 시에 있고 그리고 오너 셰프가 나름 영어도 잘해서 다찌에 앉으면 셰프와 대화도 나누며 즐길 수 있다고 말이지요. 허허허."

나는 갑자기 다찌라는 말에 무척 불쾌해졌다. 지금까지 수많은 초밥집을 다니면서 혹은, 이자카야나 일본식 선술집에 다니면서 써왔던 말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뭔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다카다상 , 다찌란 말이 어떤 말인지 아시나요?"

조용히 있던 내가 뜬금없이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서 인지 그는 적잖이 당황하며 답했다.

"아. 아니... 다찌는 이렇게 오픈된 주방 같은 곳에서 앉는 1인석 자리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

"물론 저 때문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 다찌라는 말에 저만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네?? 무슨...?"

"20여 년 전이었던가요... 저도 그때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들은 말이에요. 당시에도 푸드 칼럼니스트 일을 하고 있었고요. 한국의 나름 유명한 요리잡지 편집장이 당시 유명하던 스시조라는 초밥집에서 오마카세를 사주었는데 그때 저에게 지금 다카다상 처럼 이렇게 앉아있는 자리를 다찌라는 말을 쓰더라고요. 전 그 다찌라는 말이 한국말인 줄 알았어요. 일본에서는 다찌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그냥 보통 カウンター 카운터석이라고 해요. 전 그 말이 당연히 한국말인 줄 알고 당시 제가 즐겨 쓰던 일본 블로그와 일본 트위터, 그리고 잡지 등에 이 다찌라는 말을 썼어요. 사실은 카운터 석이 맞는데, 왠지 <일본 여자가 한국에 가서 한국의 하이앤드 초밥 맛집에서 한국어로 불리는 다찌라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라는 느낌이 좋았거든요. 당시 제 블로그는 하루 뷰가 2~30만 명이 넘었고 잡지도 일본 내에서는 꽤 잘 나가는 잡지였어요. 트위터도 팔로워가 40만 명 가까이 되었고. 마침 <한국의 초밥 맛집>이라는 특집이어서 반년 가까이 아무 생각 없이 다찌라는 말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초밥 맛집 특집이 마무리되고 뭔가 찝찝한 거예요. 다찌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 좀 찾아보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실 그런 다찌란 말이 없는 거죠. 기껏해야 동사로 쓰이면 서서, 서다 정도의 의미예요. 다찌노미라고 일본에서 서서 먹는 오뎅집? 같은 것 외에는 일본에서도 다찌라는 말을 안 쓴다는 거죠. 그래서 주변 어학자들이나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찌라는 말을 아세요? 이렇게 초밥 집에서 먹는 카운터석을 뭐라고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99% 사람들에서 나온 답변은,

'카운터석이 카운터석이죠. 무슨 다른 말이 있나요?'

라는 말이었다고요. 심지어 한국에서 쓰는 다찌는 무엇인가 해서 한국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대부분 한국친구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일본 말일지도?' 

정도였어요. 예전 나에게 초밥을 사준 그 편집장에게도 물었지만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구요. 한국 단어 사전에서도 찾아봤지만 그 단어의 어원이 없는 거죠. 정확히 이야기하면 없는 단어예요. 그런데 오늘 다카다상이 다찌라는 말을 쓰니... 그 의미가 무언지 알고 싶어서요."

"아... 아, 그런가요? 그... 그러게요. 저도 그냥 어쩌다 보니 초밥집에서는 카운터석이라는 말을 안 쓰고 다찌라는 말을 쓰게 되네요. 아마 그때 나기사 상이 쓴 새 단어 (어찌 보면 한국의 잡지 편집장이 먼저 쓴 말이긴 하지만)가 당시 많이 공개되었고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쓰고 있는 것 아닐까요?"

뭔가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묘해졌다. 갑자기 독주가 마시고 싶어 졌다. 

"다카다상, 저 독한 독주 한 잔 사주실래요?"

다카다상은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침을 꿀꺽 삼켰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이 좀 놀란 듯 우리 쪽을 쳐다봤다.

"아, 그럼요. 그럼요. 히사시 상, 주류 메뉴판 좀 부탁해요."






Jinrokuzushi 甚六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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