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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02. 2020

와인 페어링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집에 와서 영수증을 체크하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보통 3-40만 원 대면 와인 테이스팅까지 해서 적당히 즐길 수 있었던 콘스탄틴 필라포에서의 식사 가격이 무려 팁 포함 500유로 (약 60만 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딱히 돈 생각 안 하고 먹긴 하지만 몇 번이나 갔던 음식점이고 늘 팁도 두둑이 주곤 했는데 왜 이리 많은 금액이 나온 건지 궁금해져서 나는 영수증을 꼼꼼히 살폈다. 그랬더니 와인 테이스팅 비용에 1인이 더 추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을 씻고 안약도 넣고 다시 영수증을 봤지만 여전히 깨끗한 종이에 인쇄되어 있는 글자는 분명 와인 페어링 2. (한 명은 나) 나는 좀 화가 났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그간 PT를 받아왔던 힘으로 호텔 문을 박차고 나와 프런트에 택시를 요청해 타고 바로 콘스탄틴 필라 포로 향했다. 도착하니 5시 정도.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려 하고 있었고 평상시 기분 나쁜 표정을 잘 못 짓는 나이지만 최대한 화가 나고 짜증이 난 표정으로 (이런 때 난 보통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연기한다.)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는 평상시 이 곳에서 늘 내게 싹싹하게 잘해주던 매니저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점심을 먹을 때도 그녀가 내 테이블의 메인 서빙을 맡았었고 계산도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음식점 내에서 늘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맑고 투명한 그녀의 큰 눈은 늘 반짝반짝 빛나는 은테 안경으로 가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근력과 유산소, 그리고 필라테스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해서 가꾼듯한 균형 잡힌 몸매는 유니폼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가끔 그녀가 사복을 입고 퇴근할 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그녀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절제된 느낌의 레스토랑 안이 아니었다면 많은 남자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을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 내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충분히 발현되긴 했지만 손님들이 식사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매우 멋진 금발머리를 예쁜 젓가락으로 묶어 올렸고, 평상시 쓰던 안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내 영혼은 잠깐 뉴욕의 앤디 워홀을 만나고 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오늘 점심에 봤었죠?"

"어머, 또 오셨네요. 하지만 오늘 저녁 예약이라면 다 찼어요. 어쩌죠?"

나는 그녀에게 영수증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오. 아까 당신이 한 계산이 좀 잘 못된 것 같아서. 여기 보시오. 나는 점심에 분명 혼자 와서 식사를 하고 와인 페어링을 했는데... 와인 페어링에 한 명이 더 추가되어있소.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녀는 내가 건네 준 영수증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영수증을 보는 그녀는 무척 귀여웠고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던 나는 잠시 내가 여기에 와있는 이유를 잊어버렸다. 한참을 영수증을 보며 볼펜으로 무언가 적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한 그녀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카리오 씨. 제가 좀 실수한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이건 제 실수가 맞는 것 같다고요. 어쩌죠?"

그녀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속으로,

'아니, 그 금액을 환불해 주면 되는 것 아니오.' 

라고 바로 답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을 보니 바로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제가 셈에 약해요. 이런 일이 몇 번 있었고 이번에 또 전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는 이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오너 셰프가 이야기했어요. 저 어쩌죠?"

기어이 그녀의 눈에서는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블래이져 재킷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안돼 보였지만 한 편으로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기도 했다. 잠시 그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달리 할 말이 생각 안 났다. 눈물을 다 닦은 그녀가 내게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으며,

"오늘 밤에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어떡하면 좋을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지금 약속된 장소에 10분 전에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분침은 점점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초침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소리보다 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Konstantin Filipp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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