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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01. 2020

화장실이 집인 사람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은 웨이트리스가 안경을 살짝 올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네? 화장실에서 살고 싶다고요?"

나는 꽤 오래전부터 고급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니는 게 취미였고 그 대부분은 홀로 다녔다. 보통 처음 간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를 천천히 즐기며 웨이트 리스트나 웨이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기 시작했고 단골이 되고 나면 셰프들, 그리고 오너들까지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 쪽 업계에서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나란 사람에 대해 이미 소문이 나버려서 (종종 홀로 레스토랑에 와서 7코스 이상을 혼자 먹고 와인 페어링까지 하고 마음에 드는 와인은 한 병째 마시며, 늘 두둑이 팁을 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정도랄까) 제법 괴팍할 수도 있는 나의 질문에 몇 번 봐서 안면이 있는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 맞아요. 당신이 일하고 있는, 이 lasarte의 화장실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아, 저, 저기 잠시요. 잠시만요. 메니져와 셰프를 불러올게요."

그녀는 비틀대며 프런트로 향했다. 마침 런치 브레이크 타임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 느슨해지고 있는 레스토랑의 공기를 뚫고 매니저와 셰프가 내 테이블 앞에 섰다.

"미스터. 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에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입가에 살짝 묻어 있는 초콜릿을 닦아내며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아, 친애하는 파울로 셰프, 그리고 매니저. 제가 최근 일 년간 다녀본 레스토랑의 화장실 중에 lasarte의 화장실이 가장 깨끗하고 좋았소. 이런 화장실이 비어 있게 둔다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오. 나는 최근 미국과 프랑스의 몇 개 잡지에 칼럼과 에세이등을 쓰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화장실에서 글이 그렇게 잘 써지는 것이오. 그래서 집의 화장실에서도 써보고, 호텔의 화장실, 또한 이렇게 레스토랑에 왔을 때 꼭 화장실에 들려서 짧은 글이라도 써보곤 했는데 여기, lasarte의 화장실에서 내가 꼭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니겠소. 보시오. 이게 방금 전에 내가 쓴 글이라오. 너무 만족스러워서 방금 전 먹은 초콜릿을 또 먹고 싶을 정도 라오. 게다가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 아마도 이 화장실에서 하루 종일 있는다고 하면 너무 좋은 글이 써질 것 같단 말이지. 노벨문학상을 노려볼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에게 방금 전 라사르 떼의 화장실에서 쓴 글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짧은 문장이었지만 음식뿐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그들은 단숨에 그 글을 좋아했고 매니저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진주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 너무 훌륭한 글입니다. 이런 글을 우리 화장실에서 쓰셨다니. 너무나 감동스러워요. 하지만 저희도 입장이 있고, 게다가 런치나 디너에 모두 예약이 차기 때문에...."

나는 셰프의 말을 단번에 끊었다.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소. 점심에 3~4시간 정도. 그리고 저녁에 3~4시간 정도가 화장실을 주로 쓰는 시간 아니오. 그리고 테이블이 많지 않은 레스토랑이기에 기껏해야 한 타임에 화장실을 쓰면 20명 정도가 많이 쓰는 걸 거요. 그 시간에는 내가 산책을 나가도 되고 혹은 화장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수건도 건네주고 면도도 도와준다거나 하는 서비스를 하면 되지 않겠소? 한 달, 길어야 세 달 정도만 화장실에 머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소이다. 물론 잠도 자고. 그 정도면 지금 쓰고 있는 짧은 원고들과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할만한 장편 하나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아니, 화장실에서 어떻게 주무시려고 하는 건가요. 침대를 놓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옷도 한 벌만 계속 입으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화장실 바닥이 대리석이더구먼. 작은 캠핑용 매트와 백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옷은 제가 매일 가방에서 꺼내 입도록 하지요. 어차피 옷이 많지 않기에 한 벌을 입는 동안 다른 한 벌은 세탁을 하면 될 것 같소."

그들은 썩 마음이 내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미 나름 이 업계에서는 알려진 나였고, 그간 이 레스토랑에서 쓴 금액도 상당했기에 다른 손님들에게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는 화장실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밤이건 낮이건 내가 화장실에서 산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지냈고 그리고 늦은 밤과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늘 화장실에서 글을 썼다. 두 달이 조금 넘었을까 내가 쓴 장편소설은 탈고가 되어 책이 되었고 그 책은 나의 예상대로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었다. 나야 당연히 그 사실에 무척 기뻤지만 나보다 라사르떼의 셰프와 매니저, 그리고 스태프들이 더 기뻐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고 라사르 떼에서 스페셜한 파티도 많이 열어주었다. 나의 이 책과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다른 셰프들과 호텔의 오너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좋은 화장실을 만들어 나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내가 그곳들을 순회하며 흡족해하고 좋을 글을 짧게라도 쓴 화장실에는 화장실 별점이 매겨지게 되었고 여러 잡지나 평론가들에 의해서도 많이 거론되게 되었다. 어느새 경쟁을 하듯 많은 곳에 화려하고 좋은 화장실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런 화장실을 가진 레스토랑과 호텔 쪽에서 날아오는 초대장이 하루에만 몇 백장이 넘었다. 그리고 내가 좋은 평점을 준 화장실은 다양한 인플루언서와 블로거 등에게도 성지 같은 곳이 되어버려 점점 내가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줄어 들어갔다. 어느새인가 나는 언론 등에서 화장실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화장실에서 조금도 글을 쓰지 않아도 그냥 내가 화장실에 잠깐 왔다 갔다 한 것만으로도 내가 노벨문학상을 타서 벌어들인 모든 수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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