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늘 May 05. 2021

가랑비

마늘단편- 맛없는 맛집 소설






 나는 비엔나의 작은 스타디움에서 김연아와 김연아의 어머니를 만났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가랑비 정도는 살살 맞아가며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은 비엔나 유소년 축구단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스타디움에서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축구경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 경기장을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아가며 경기를 보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엔나 시내의 슈테판 성당 근처를 지나면서 딱히 할 일도 없고 어딘가 목적지를 정해놓고 막연하게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바로 이 비엔나 스타디움이었다. 막상 스타디움에 도착하니 유소년 축구경기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있었고 문득 그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듯 경기장 티켓을 끊어 안으로 들어갔고 자리를 잡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10여분 정도 전 즈음 갑자기 옆 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긴 했지만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세상에나, 김연아가, 바로 그 김연아가 한 여성을 나와 사이에 두고 옆 자리에 앉았다. 한 여성의 외모로 짐작해 보건대 아마 그녀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들은 내가 그녀들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척 익숙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김연아와 김연아의 어머니니까. 나도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녀들도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지 바로 답을 했다.

"어머, 한국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비엔나 스타디움에서, 그것도 이렇게 옆자리에서 한국분을 만나다니요.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축구경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이렇게 비 오는 날 축구경기를 보러 오시다니요. 그것도 타향에서."

나의 질문에 그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잠깐 보고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아, 엄마와 제가 둘이서 스페인을 가는 중이었어요. 바르셀로나죠. 그러던 중 비행기를 잘못 탄 거예요. 희한하죠? 비행기를 잘 못 탔는데 스페인의 다른 도시나 비슷한 이름의 어떤 도시가 아닌 이 곳 비엔나로 온 게. 엄마와 함께 비엔나에 온 지도 오래되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비엔나에 며칠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내보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엄마도 저도 걷는 걸 좋아하는데 비 오는 날 도나우 강변이 예뻐서 아침부터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아이들이 경쟁하는 경기 같은 걸 볼일이 크게 없었던 우리였는데 마침 이런 유소년 축구경기가 있다고 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 분이 옆에 계실 줄이야. 의외네요. 호호."

그렇게 그녀는 이야기하며 가방에서 흰색에 검은색 선으로 무언가 그려진 작은 우산을 꺼내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썼다.

"우산 없으세요? 저희 작은 우산 하나 더 있긴 한데.."

그녀의 물음에,

"네. 괜찮습니다. 이 정도 가랑비라면 맞는 걸 좋아해요. 시원한 느낌도 좋고. 아참, 스페인에 간다고 하셨지요?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스페인도 여행으로 가시는 건가요?"

나의 질문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답했다.

"딸아이가 스페인에서 한동안 코치로 일을 해요. 계약은 3년인데 더 연장이 될 수도 있겠죠? 초반의 시기는 저와 함께 있을 예정이지만 이후에 동료나 친구들이 생기면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딸아이나 저나 아직 스페인 말도 거의 못 하고, 스페인은 늘 덥기때문에 스페인에 간 적도 많지 않아서 좀 걱정이긴 해요. 스페인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저도 스페인에 자주 가기는 했지만 늘 여행자의 신분으로 가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두세 달 이상을 머물거나 일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비엔나에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저 역시 바르셀로나로 넘어갈 예정이었고요. 바르셀로나에서는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에요. 바르셀로나는 북부 산세바스티안만큼은 아니지만 꽤 미식이 발달한 도시이기도 하고 여유 있게 해변을 뛰거나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제가 좋아하는 작은 산들도 있고 해서 몸 관리하며 쉬기에 제법 좋거든요."

나의 말에 그녀의 어머니는 이빨 14개가 보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어머, 잘 되었네요. 저희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즐기고,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시간 괜찮으시다면 소개도 해주시고 함께 식사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무리한 부탁일까요?"

그녀의 말에 김연아가 어머니의 옆구리를 툭 치는 것이 보였다. 표정도 뾰로통했고.

"연아야. 이런 것도 인연이잖니? 이런 곳에서 이렇게 단정하고 멋진 한국 신사분을 만난 것도 대단한 인연인데 미식이나 관광 등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고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바르셀로나도 간다고 하지 않니. 너야 초반에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겠지만 그때 나는 혼자일 거라고. 이 신사분 시간이 허락한다면야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좀 즐길 수 있지 않겠니. 아참, 성함이 뭐라고 하셨지요?"

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에 정신이 없어서 대답은 좀 천천히 했다.

"동주입니다. 나 동주. 연안군 파 17대 손이죠."

"안녕하세요. 제 딸은 김연아라고 하고, 저는 그냥 연아 엄마라고 불러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는 눈짓으로 상황에 대해 신호를 한 뒤,

"일단 안쪽으로 피하시죠."

라는 나의 말에 따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스타디움 안 쪽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맞은 모녀는 좀 추워 보였다.

"비가 계속 올 것 같은데, 멀지 않은 곳에 제가 좋아하는 식당이 있어요. 따뜻한 양파수프도 먹고, 타펠슈피츠 같은 것도 나누어 먹고 티도 한 잔 하면 어떨까요?"

불편해 보이는 김연아, 아니 김연아 씨와는 다르게 그녀의 어머니는 호탕하게 답했다.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나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우버 어플을 작동시켜 우버를 부른다.

"잠시만요. 10분 뒤에 우버가 도착한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가려는 곳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오스트리안 식당인데 두 분 다 마음에 들어하실 거예요."


  







이전 17화 요시노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