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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29. 2020

콜롬보

마늘 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당신, 모의실험 가설이라고 들어봤어?"


그녀는 시큼한 맛의 프레세코를 한 모금 마시고 입 맛을 다시며 내게 물었다.


"아, Simulation hypothesis 말하는 거야? 인류가 생활하고 있는 이 세계가 모두 모의 현실이라는 가설 말이지."


그는 앞에 있는 땅콩을 손으로 집으며 대답했다.


"역시나 당신은 알 줄 알았어. 요즘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난리잖아. 물론 우리 시대에는 매트릭스라던가 그런 영화로 이 이론을 처음 접했지만."


"맞아. 매트릭스. 참 재미있었지. 최근 4편도 제작 중이라던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려나."


그녀는 말을 이었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말한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는 가능성은, 어떠한 문명에 의해, 인공 의식을 갖춘 고체군을 포함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구축될 가능석이 있고, 그러한 시뮬레이션을 다수, 혹은 수식 업개 실행하기도 했을 거래. 그렇게 모의된 개체는, 그들의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고 눈치채지 못할 것이고 그들은 단지 그들의 '실세계'라고 생각하는 세계에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을꺼란거지. 여기서 이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러한 AI 시뮬레이션을 개발하는 능력을 손에 넣는 실제 우주 거주자이고, 또한 그러한 수십억의 시뮬레이션 안의 하나의 거주자라는 거지. 물론, 우리는 그 안에 있지만 그것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는 그녀의 말이 길어지는 게 싫었다.


"아, 알아. 나도 안다고.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게임 안이고 우리는 그냥 게임의 주인공, 아니 그냥 NPC 일 수도 있다는 것 아니야?"


그녀는 내 대답에 지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맞아. 그래서 말이야. 꿈. 꿈 있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가상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하더라고. 예전 데카르트도 '... 우리는 수면과 각성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확실한 표시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꿈을 꾸고 있고, 나의 지각 모두 가짜일 가능성도 있다.'라고 했다고. 이전 장자의 나비의 꿈도 비슷한 이야기고."


그는 나비의 꿈이라던가, 왜 꿈이 모의실험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지 등에 무척 궁금했지만, 그녀의 말이 길어지는 게 싫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밀려오는 나른함에 레스토랑 알 콜롬보 야외 테라스의 따뜻한 햇살까지 더해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 한 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 마치 매트릭스처럼 우리의 뇌가 지구 깊숙이 어딘가에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뇌에는 영양분만 공급되고 있는 거야. 인간이 영속된 삶을 살기 위해 육신 중 뇌만 남기고 뇌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소만 계속 공급하게 만든 거지. 우리는 그 뇌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 방금 전까지 이야기한 모의실험 가설과 비슷한 이야기지만,  좀 더 현실적이지 않아? 지구 종말이 올걸 알고... 인간은 아주 작은 인큐베이터에 뇌를 넣는다. 운석 충돌과 그 외의 자연재해에도 피할 수 있는 지하 깊숙이 뇌를 감춰놓는 거지. 뇌에 필요한 영양분은 지구 표피에 태양열이라던가, 물에서 에너지를 뽑아 긴 호스 같은 걸로 공급하고. 그러면 우리의 뇌는 1,000년 이상을 살면서 아주 다양한 삶을 반복해 가며 사는 거야. 그게 꿈에 반영되는 거고. 이를테면 내가 꾸는 꿈들이 모두 실제로, 아니 실제는 아니지만 우리 뇌가 이미 지금 살아가는 삶 이전, 혹은 이후의 삶을 투영하는 거라고. 아, 맞다. 그건 양자역학과도 관계가 있어. 양자역학 말이지. 양자역학이라는 건..."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잠이 들었지만 무척 긴 꿈을 꾸었다. 그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이와 비슷한 꿈을 꾸었다. 1997년까지 TV영화로 제작된 피터 포크가 탐정으로 출연한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으로 그가 나오는 꿈, 익숙한 누군가에게 너무나 가슴 아프게 차여 자살을 하기 전 깨는 꿈, 그리고 깡패에게 끔찍하게 구타를 당한 뒤 잔인하게 고문을 당하는 꿈, 이 세 가지 꿈을 한 번에 차례로 꾼 뒤 그는 소스라치게 떨며 잠에서 깼다. 그는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뻘뻘 나고 있었다. 반 즈음은 눈이 풀린 멍한 정신으로 시계를 본 그는 겨우 3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 그런데 양자역학은 어려우면서도 신기해. 아 참, 최근에 양자역학 컴퓨터 만들어진 거 알아? 구글에서 만드었다고 하던데.. 그 컴퓨터 말이야..."


그녀는 그가 무서운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지금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뺨을 세 개 쳐보기로 한다.







AL COLOM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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