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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Jan 11. 2021

생일

마늘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그는 그녀를 위해 한적한 konyv bar를 예약해 두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애한 지 700일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그와 그녀는 예약이 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웬일인지 늘 손님이 많은 konyv bar에는 그들밖에 없었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뉴브 강을 따라 좀 걷고 루이 비드 히 미술관에 가서 미술관을 보고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가 가볍게 생일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일 선물로 준비한 티파니 목걸이와 프러포즈를 할 까르띠에 반지도 함께 전해줄 생각이었다. 700일 가까이 연애한 그들이기에 남녀 간의 에로틱한 사랑이 식은 지는 오래였다. 

"여기 전에 한 번 와봤지? 오늘의 테마는 신데렐라래. 신데렐라를 소재로 어떤 음식들이 나올지 기대가 되네."

그가 조금 더 말을 이어가려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녀의 문자 알림이 울렸다. 아마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으리라. 그는 그녀의 친구들을 꽤 알고 있었다. 사실 700일을 만나는 동안 100명이 넘는 그녀의 친구들을 만났고 인사를 해왔지만 붙임성이 좋은 그녀에게는 친구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과 친할 수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하지 못하는 여자 친구에게, 아니 그녀의 친구들에게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늘 그를 남자 친구라고 당당하게 소개했고 그래서 둘이 친구가 많은 문제로 싸울 일은 거의 없었다. 

"메뉴 봐봐. 좋은 결말과 나쁜 결말 중 선택할 수 있어. 당연히 좋은 결말로 선택하는 게 좋긴 하겠다만...."

그때 또 그녀의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이야기했다.

"생일이란 거 짜증 나. 아마도 오늘 100여 통 이상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연락이 올 거야. 선물 보낼 테니 주소 알려달라고도 할 테고.. 전화도 올 테고."

뜬금없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좀 놀랐다.

"아니, 생일을 축하해 주는 건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시 그녀의 핸드폰에 알람이 울린다.

"알아, 안다고. 그런데 매년 이렇게 연락들이 오고 생일 축하한다며 만나자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에 일일이 답장을 하는 내 시간이 아깝다고. 아마 오늘 온 문자에 답하려면 1~2 시간은 답장을 해야 하고 또 이래저래 안부 묻고 하면 소중한 오늘 내 생일의 시간이 4~5시간은 사라질 거라고. 당신과 함께 식사하고 데이트하는 이 시간도 이런 알람 때문에 방해받고 있잖아."

그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핸드폰에는 다시 문자가 왔는지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능숙하게 알림을 꺼버렸다. 아마 지금부터는 알림 소리 나 진동으로 인해 테이블이 흔들리는 일은 없으리라.

 "나는 해피엔딩에 와인 페어링을 할래? 자기는?"

"응, 그럼 나도 같은 걸로."

그들은 웨이터를 불러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가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의 전화였다.

"아, 미안해. 잠시만. 여보세요. 아, 응. 고마워. 어떻게 알고 이렇게 전화까지 했어?...."

로 시작된 그녀의 통화는 1분 정도 이어졌고 조용한 레스토랑 안에서 눈치가 보였는지 그녀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사인을 주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호박을 오랫동안 저어가며 잘 끓여낸 호박 수프가 나올 때 그녀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야, 미안. 일 때문에 급하게 전화 올 수도 있는 것 때문에 전화 알림은 끌 수가 없는데 이렇게 전화가 와버렸네. 많이 기다렸지? 아 수프가 나왔네? 맛있겠다."

그래도 그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실례에 대해 미안해 한 그녀에게 그는 오히려 고마웠다. 무엇보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기도 했었고. 그들은 호박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함께 나온 슬로베니아산 소비뇽 블랑 와인도 한 잔 하고. 함께 나온 빵도 수프에 찍어 먹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지만 그와 그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 여보세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생일파티요? 아, 아니요. 오늘은 남자 친구와 보내야죠. 네. 네."

그녀는 다시 그에게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내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먹은 수프 접시를 웨이터가 주방으로 가져가자 레스토랑 안에는 그 밖에 없었다. 테이블에는 빵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고 음악 하나 없는 레스토랑 안은 조용했다. 그는 오늘 하루가 꽤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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