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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Mar 12. 2021

거꾸로 된 장유유서

마늘단편- 맛없는맛집 소설







그가 특이한 사람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특이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가 범상치 않은 특이한 사람, 소위 괴짜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명한 전통식당인 piaristenkeller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아니, 정확히는 식사를 마치고 서였다.

"음, 맛있게 잘 먹었네. 고맙네. 이런 식사에 날 초대해줘서."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그의 말에 난 조금 의아했다. 왜냐면 정확하게 짚어 이 식당에 날 초대한 것은 그였다. 그리고 식당에 앉자마자 제법 고급스러운 와인들과 남겨질 정도로 많은 음식을 주문한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당연히 그가 음식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한 마디에서는 조금도 그가 식대를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어요?"

라고 나는 그를 떠보듯 물었다.

"암, 자네 덕분에 잘 먹었네. 오래간만에 봄향나는 와인도 맛보고 눅진한 맛의 꿩 수프와 양고기, 다 좋았네. 고맙네. 고마워."

그의 답변을 봤을 때는 이 식대는 내가 내야만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값을 지불하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왠지 억울했다. 기본적으로 그가 얼굴을 보자며 나를 불러냈고, 그리고 그가 나보다 사회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었으며 게다가 나이도 나보다 열 살 가까이 많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가 밥값과 술값을 계산해야 하다니. 억울했다.

"아니, 선생님. 오늘 선생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럼, 자네를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인가. 내가 그대를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대에게 술 한 잔 얻어먹고 싶었네."

오늘 그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홀로 작은 방에서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그리고 남은 냉동 튀김을 튀겨 와인과 함께 먹으며 적당한 영화를 한 편 틀어놓고 저녁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의 대답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나를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나에게 술 한 잔 얻어먹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름 행복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넘어가려다가...

"선생님, 선생님은 저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나은 위치에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수익도 많으실 테고... 솔직히 제가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술을 사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으나 제가 식대를 계산하면 선생님께서 나중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여쭈어봅니다."

"아니, 이 사람아.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기회를 주는 것 아닌가. 자네가 나 같은 사회적 위치의 사람에게 술과 밥을 살 기회가 언제 있겠나. 이 또한 경험일세. 자네가 거의 해보지 못한 상황을 내가 이렇게 편한 분위기에서 만들어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 아닌가."

뭔가 말은 되지만 억울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선생님, 선생님 저보다 열 살 이상이나 많으시잖아요. 보통은 장유유서라고 어르신이 밥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스승의 날이라던가 뭔가 특별한 날에는 젊은 사람이 식사를 살 수도 있겠지만요."

나의 말에 그는 테이블을 탁 치고는 일어나 말했다.

"젊은이, 말조심하게!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이 밥을 사야지! 자네는 앞으로 나보다 살 날이 십 년 이상이나 되지 않는가. 게다가 나보다 건강하고 살날이 많지 않은가. 앞으로 자네는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그러니 당연히 자네가 내게 밥도 사고 술도 사야지! 에헴."

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그로 인해서 새로운 경험도 했고, 따뜻함 감정도 느꼈고 (나를 찾는 사람도 있다는) , 식사까지 대접한 것으로 (나보다 살 날이 적어 왠지 불쌍해 보이는 사람에게) 뭔가 단단해진 것 같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계산서를 조용히 집어 들었다. 약 100만 원 이상의 식대와 술값이 나왔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piaristenkeller의 계산서에 내 카드를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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