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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Apr 01. 2021

세상모를일

마늘단편- 맛없는 맛집 소설






한 여성이 나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전 세계의 누구라도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아티스트였다. 최근 앨범도 내고 각종 예능프로그램 등에도 출연을 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아티스트였다. 내가 매력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의 유명인에게 고백을 받은 건 처음이다. 사실 알게 된 건 작년에 몇 번 보았을 뿐. 이후로 그녀는 내가 소셜에 올리는 글에 짧은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곤 한 정도였다. 작년 출간된 내 책 저자 사인회 때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고. 그러던 그녀가 갑작스레 시간 좀 있냐고 내게 DM을 보내왔고 거절할 이유가 없던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손님이 없기로 유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tanti에서 그녀와 만났다.

"작가님 팬이에요. 일 년 전 행사 때보고 뒤풀이 술자리에서 몇 마디 나누었지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귀여웠고 정말이지 예뻤다. 

"아, 네. 그저 감사할 뿐이죠, "

나는 넘버가 기억나지 않는 스미스 티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저기...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아... 네? 여자 친구는 고사하고 결혼도 아직 못한 터라 늘 부모님께 '다른 사람들은 이혼도 두세 번씩 척척 잘하던데 넌 결혼 한번 못하니?'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죠."

그녀는 잠시 텀을 두고 이야기했다.

"저... 저는 어떠서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요즘은 소소한 전희 없이 이렇게 바로 고백을 하는 것이 유행인가 싶어 나도 일단 룰에 따르기로 하고 내 생각을 바로 이야기한다.

"예뻐요. 귀엽고. 게다가 저와 스무 살이나 차이도 나고. 전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지금 엄청 설레고 있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당신은 유명인이에요. 저한테 있어 유명한 건 피곤한 일이라고요.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도 못 지르고 노상방뇨도 못한다고요. 마음에 드는 이성과 눈이 맞았다고 생각해 손을 잡는 순간 성추행죄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죠. 게다가 세금조사는 어찌나 자주 하는지. 제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당신과 연애, 혹은 결혼을 한다면 저를 향한 악플이 어찌나 많을지. 어휴, 전 생각보다 멘털이 약하다고요. 지금처럼 살짝살짝 사람들이 아는 정도가 좋아요. 미안해요. 난 딱 이 정도가 좋아요." 

그녀는 그간 살아오면서 이런 거절에 익숙지 않았던 탓인지 가뜩이나 상기된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더 빨개졌고 테이블 아래 양손을 더 빠르게 만지작 거렸으며 한동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무척 귀여웠고 그녀에게서 피어올라오는 사랑의 기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난 토마토도 참 좋아했다. 

"그럼, 그럼 말이죠. 제가 유명 안 해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림도 그만 그리고 음악, 방송 활동도 그만하면 되죠. 그간 모은 돈으로 작가님이 좋아하는 온천여행도 하고 산에서도 자고, 술도 매일 퍼마시고.,." 

이 부분에서 나는 화가 났다. 

"이봐. 보자 보자 하니까. 술을 마시는 게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지 알아? 그리고 고주망태가 돼서 타인의 시선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이건말이지 당신같은 유명인들이 할 수 없는 고귀한 자유로운 삶이라고. 그림 한 점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여기저기 큐레이터, 콜렉터들 사이에서 웃음을 팔 필요도 없고..,  그냥 걷고 보고 느낀 것에 대해 타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쓰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잠을 자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데. 그걸 당신 같은 유명한 예술가가 따라 한다고?"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도 안 잡았고 비속한 말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키스하는 상상만 했지, 실제로 키스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 일, 아무 일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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