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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Jun 01. 2021

천부적인 재능

마늘단편- 맛없는 맛집 소설







 나는 오늘 베니스 아트 비엔날레에 초청작가로 온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이 곳 FiaschetteriaToscana 에 왔다. 그녀는 차세대 쿠사마 야오이라 불릴 정도로 일반인들은 물론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가였다. 시간에 맞춰 그녀가 도착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가벼운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익숙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인생에 딱히 풍파라고는 없었어요. 집안이 어마어마하게 유복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다하게 해 주시고 가지고 싶은 것도 모두 사주셨죠. 학업에 대한 욕심도 없어서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도 딱히 하지 않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이나 제가 학업에 절실했다면 의사나 판검사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제 천부적인 재능을 깨닫게 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예요. 다양한 인생 경험도 해보고 싶고 그냥 막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나이잖아요? 그래서 남자들에게 술도 팔고 몸도 파는 업소에 들어갔어요. 나에게는 그냥 재미였을 뿐이었고 나중에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아셨을때도 다행히 그들은 내가 선택한 일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죠. 나나 그들이나, 예나 지금이나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반에 일했던 유흥업소는 학교 선생님들이나 양아치 같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절실함이 없던 저의 태도와 용모가 그틀의 눈에는 새롭게 보였는지 대우가 꽤 좋았죠. 딱히 별걸 하지 않았는데도 지명이 늘어갔어요. 문제는 함께 일하는 다른 종업원들의 시기와 질투로 한 달도 되지 않아 좀 더 나은 업소로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한 달 이 지나지 않아 우리 도시의 최고의 업소로 옮겨갔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내 나이에 꽤 많은 돈을 번 나는 내가 이 쪽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한 편 내 재능을 너무 남발하면 타인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6개월간 나와 밤, 낮 시간을 보냈던 남자들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일을 그만둘 때 나는 나 혼자 살 수 있는 오피스텔과 반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모았어요. 일을 그만두고 뭘 해볼까 고민을 하며 거리를 걷던 중 카일리 미노그의 음악이 작은 펍에서 흘러나오는데 그게 어찌나 좋던지. 그래서 이런 음악도 만들어보고 춤도 추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그 길로 서점에 가서 관련 서적을 사기 시작했어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어차피 대학에서 배우는 건 인생에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 돈과 시간으로 정말 내가 하고 싶을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적과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들을 녹화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음악과 춤을 공부했어요. 그렇게 일 년 정도 연습을 하고 몇 곳의 동호회 등에서도 활동을 했는데 저도 모르게 다른 친구들보다 음악을 만드는 실력이나 춤 실력이 월등했던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거나 연습을 많이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이름만 대도 알만한 가수들의 앨범에도 참여하고, 백업댄서로도 활동을 했는데 역시 이 쪽 세계도 이 전 세계와 크게 다를 바 없었어요. 노력한 거 없어 보이지만 본인들보다 확실히 탁월한 실력이 보이는 저는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 상대가 되었죠.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이 일은 이 정도의 경험이면 충분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그리고 굳이 이제 조금씩 친해져 가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싶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늘 내 실력보다 못한 척 하기 시작했어요. 안 틀려도 될 동작을 바보처럼 틀려버려 친구들의 조언도 이끌어내고 말이죠. 그래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 나오는 요조의 어린 시절처럼 말이에요. 춤과 음악적인 부분은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에 스포츠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스키도 타고, 스노보드도 타고 다이빙이나 수중 레포츠도 하고... 하지만 결국 무엇을 하건간에 나는 남들보다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했고 어느새인가 무언가를 하던 남들에게 그것을 드러내기보다는 못하는 척 포장하기에 바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빠지게 된 게 예술이에요. 어릴 때 배웠던 예술은 국경도 없고 신분도 초월한다고 했죠? 다 거짓말이에요. 글 쓰는 거에 재미를 붙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즐겁기도 하고, 다양한 예술가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어요. 역시나 주변 친구들의 재능이 내 몸속에 빠르게 흡수되었고 내 몸에서 융화되어 저의 손과 발, 신체를 통해 새로운 예술로 만들어지게 되었죠. 행복했어요. 하지만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다는 예술가들 조차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저를 질투하기 시작했죠. 당시 제가 가장 친했던 친구는 제게 이런 이야기까지 했어요. 제발 예술 안 하면 안 되냐고. 왜 이 예술시장에 들어와서 우리 밥그릇을 빼앗느냐고. 나는 놀랐죠. 이 자유롭다는 예술시장도 결국 돈의 논리로 돌아가고 강자가 나타나면 약자들의 밥그릇은 빼앗기는, 그냥 자본주의적인 시장이었던 거예요. 전 절망했어요. 더는 갈 곳이 없었죠. 더는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예술이라는 테두리에 들어가서 잠시 자유로웠을 뿐이었는데 그 또한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어느새인가 나의 행위는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는 있었지만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의 경쟁 순위를 한 단계 하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죠. 인생이란 그런 거였어요.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내가 좋은 그림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사회에서는 결국 누군가가 우리의 그림 중 하나를 구입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요. 그림을 판 작가는 그 비용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해요. 누가 잘되고 누가 못되고의 문제고가 아니죠. 누군가 유명해지고 누군가 유명해지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무척 본질적인 문제라고요. 그래도 덜 유명하다면 적들이 적어질 테고 그만큼 살아가는데 무게도 덜해질 수 있겠죠."

 여기까지 쉴 새없이 말한 그녀는 잠시 포크와 스푼을 들어 포크를 이용해 파스타를 스푼 위에 말아올렸다. 작고 섬세한 그 동작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파스타를 말아 스푼으로 올리는 동작 중 가장 완벽했고 그런 멋진 파스타를 말 수 있는 그녀에게 나는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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