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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Jan 18. 2021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마늘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이렇게 온천을 좋아해서야 어떻게 해. 지금부터 온천 좋아하면 나이 들어서 할 게 없어진다고!"


맞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머리를 가볍게 '콩' 치며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나를 불러내 여행을 함께 하곤 했다. 나는 그때 그게 여행인지도 몰랐을뿐더러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는 게 좋아서 졸졸 따라다녔다. 부모님 역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이 세상 사는데 도움이 더 많이 된다고 생각을 하셨고 그래서 조부모가 국내, 혹은 해외를 여행할 때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하면 흔쾌히 학교 선생님께 전화해 내 수업시간을 빼주었다. 조부모는 내가 어렸을 때 60대였고 그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산, 그리고 자연을 벗 삼은 하이킹을 즐겼다. 낚시도 하고, 때로는 캠핑도 즐기며 맛있는 요리도 해주셨다. 그들은 나를 무척 사랑했지만 엄격하셔서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이나 자연에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는 어김없이 벌을 주시곤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무주공산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찌 보면 겁 없이 훈계를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고 그래서 그들도 내가 귀엽기도 하고 또한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워 나에게 나쁜 짓을 안 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조부모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아한 것은 등산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온천. 그런 이유에 조부모는 온천이 있는 지역을 찾아 등산을 즐기고 난 뒤 숙소에 머물면서 온천을 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여행을 했기에 좋든 싫든 등산을 함께 했고 온천도 함께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냥 좋았고 그래서 그들을 따라 우리나라와 세계의 여러 산을 오르는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온천을 처음 접했을 때는 찝찝하고 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상한 냄새도 나는 데다가 물도 뜨겁고, 오래 들어가 있으면 살이 쭈글쭈글해지고. 하지만 조부모는 그런 온천탕 안에서,

"어허이, 시원하다." 

를 연발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이 왜 시원한 거예요?"

라고 내가 물으면,

"곧 너도 알게 될 거야. 왜 뜨거운 물이 시원한지. 언젠가 네가 그걸 알게 될 때 그때 우리는 네 곁에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 미소도 싫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른다는 것에 기분도 나빴다. 그래서 그들과 여행하며 사실은 싫지만 억지로 온천에 들어갔다. 그들과 같은 타임라인에 맞춰 움직였다. 온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갔다가, 열탕에 들어갔다가, 다시 온탕에 들어갔다가, 여유가 되면 노천탕까지.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 어느새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때도 역시 수업을 빼먹어가며 종종 조부모와 여행을 다녔다. 그러던 중 비엔나의 RAX를 등산하고 난 뒤 바드 블루마우를 들렸을 때였다. 큼지막한 실내외 수영장 형태의 온천을 즐기다가 조부모와 함께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온천물이 너무 좋아지게 된 것이 아닌가. 가볍게 오스트리아의 진판델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그들에게 가감 없이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갑자기 온천이 너무 좋아졌어요. 조금 전까지 배가 무척 고팠는데 이렇게 와인을 한 잔 하고 리조토와 샐러드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 나니 또 온천물에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 몸을 담그고 싶어 진 걸요. 식사하고 물에 들어가면 '아, 시원하다.'라고 말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는 좋은 듯, 걱정하시는 듯 한 표정으로 머리를 '콩' 하고 치며 말씀하셨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이렇게 온천을 좋아해서야 어떻게 해. 지금부터 온천 좋아하면 나이 들어서 할 게 없어진다고!"

어렸던 나는 그런 할아버지 말씀에,

"어때요. 골로 가는데 순서 없는데. 하고 싶은 건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야죠. 제가 얼마나 오래 살 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런 좋은 온천들이 언제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이런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임춘애라는 마라톤 선수가 있었단다. 한국의 유명한 마라톤 선수지. 금메달리스트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당연히 유명한데 그 선수가 더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사실 라면 때문이란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이 임춘애 선수가 너무 가난한 탓에 매일 같이 라면만 먹고 마라톤 연습을 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 많은 한국의 국민들의 그런 임춘애 선수를 안타까워하고 응원했단다. 그리고 그녀는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지. 엄청났어. 당시 그녀의 인기는 정말 엄청났단다. 지금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기억하는 건 있다. 그녀가 방송에 나와 정말 어렵게, 어렵게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 라면을 왠지 뺏어 먹고 싶었던 거야. 그 라면이 너무나 맛있어 보였던 거지. 정말,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꼭 임춘애 선수가 라면을 먹는 곳에 가서 꼭 그 라면을 뺏어 먹고 싶단다."

당시 나는 할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너무나 많은 온천을 다니고 스파를 다닌 지금, 그리고 나의 조부모가 없는 지금. 왠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온천을 좋아했던 것이 문제였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온천을 좋아하는 시기를 조금 늦추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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