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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Aug 03. 2021

필요한 사람

마늘 단편- 맛없는 맛집 소설







우리는 부다페스트의 <코스테스 다운타운>이라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당신, 처음 본 게 벌써 10년 전인가 그래요. 그런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그리고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네요."

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10년 전에 만난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을 테고 그리고 그 첫 만남에 우리는 서로 간에 정이 쌓일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테니. 

"웃기죠? 어쩌다가 우연찮게 소셜 계정으로 오래간만에 당신과 다시 연결이 되었고 간간히 당신의 소셜을 보다가 이렇게 당신이 있는 부다페스트까지 온 내가."

사실 좀 의아하긴 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10년 전의 우리는 정말 별 일없이 짧은 시간을 보냈고, 최근에 연락하고 지낸 몇 주간도 서로 안부를 묻고 그간의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살고 있는 도쿄와 부다페스트까지는 직장이 있는 그녀가 맘 편하게 비행기로 휙, 하고 날아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그러게. 그래도 오래간만에 이렇게 얼굴 보니까 좋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당신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어. 하얀 피부, 작은 키에 긴 생머리라던가, 큰 눈 같은 것들은 흐릿하게 떠오르긴 했지만 그게 조합이 쉽게 되지 않아서 말이지."

그녀는 애피타이저로 나온 치즈 칩을 가녀린 왼손으로 집고는 입에 넣고 바스락 소리가 나게 씹었다. 그러고 난 뒤 오른손으로 준비된 헝가리산 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일련의 행동들이 이런 파인 다이닝과는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행동을 따라 했다.

"당신은 하나도 늙지 않았네요. 왜죠?"

"글쎄, 정말 그래 보여? 고마운걸. 뭐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스트레스가 없어서랄까. 그냥 적당한 것에 초점을 맞춰 적당하게 살고 있다랄까. 아직까지는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아내나 자식이 없으니 딱히 책임져야 할 것도 없고, 50년 간 벌어온 돈은 적당한 곳에 투자가 되어 있는데, 최저임금 정도로만 벌어도 투자되고 있는 것의 수익금과 합치면 매달 내가 좋아하는 샤토 오브리앙이라던가 발베니 25년 한 병 정도는 부담 없이 사 마실 수 있는 정도니까. 그 정도랄까."

"그렇군요. 예전에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했죠. 당신과 만났던 20대의 저는 성공하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많은 돈도 벌고 싶었죠. 그래서 그 치열하다던 도쿄에서 꽤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어요. 여행 가거나 쇼핑 갈 시간 없이 정말 바쁘게 살았다고요. 그러다 보니 함께 금융권에서 일하던 간부와 결혼도 하고 저 역시 어느새 금융계열 회사의 대표가 되어 있었죠. 아이도 있구요. 자리를 잡고 나서도 쉼 없이 일했어요. 사고 싶은 것도 생각 없이 샀죠. 집도 사고, 좋은 외제차도 보이면 두 세대씩 사기도 하고,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니 쇼핑은 그냥 좋은 거다, 좋은 브랜드다 하면 그냥 스트레스 푸는 차원에서 마구 사댔죠. 그래도 남편과 나의 비즈니스는 늘 호황이었고 돈은 계속 불어났어요. 그런데 그래도 나보다 더 잘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왠지 그들에 비하면 늘 뒤처지는 것 같아서 더 바쁘게 일하게 되고, 그들과 비교하고, 또한 늘 그들을 이기고 싶어 하고 있더라구요. 20대 때 내 꿈의 10배 이상을 벌고 있는데도 계속 바쁘고, 계속 경쟁하고, 계속 스트레스받고... 마음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은데 어느새 습관처럼 그렇게 되어버린 거죠."

웨이터가 우리 자리에 와서 다 마신 와인 잔과 치즈 플레이트를 치워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빵과 버터를 가져다주었다. 당근으로 만든 버터와 잘츠부르크 산 소금이 곁들여진 버터 두 가지였다. 빵은 바로 구워져 나온 빵이 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바로 버터를 발라 먹으면 이후에 나올 메인 요리인 대구 스테이크의 식전요리로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웨이터가 새로 바꾼 잔에 헝가리산 까르베네 쇼비뇽 와인을 채워주었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최근에 친구들을 몇 명 잃었어요. 암도 그렇고 코로나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도 있고. 전 아직 30대고, 제 친구들도 충분히 건강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지더라구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참 힘들어졌어요. 사랑하는 사람은 늘 제 곁을 떠나고, 전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힘들어졌죠. 차라리 그냥 좋아했더라면. 약간 거리를 두고 좋아했더라면 제 멘탈이 흔들릴 만큼 힘들지는 않았겠죠."

나는 잔에 채워진 와인을 한 번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미안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니에요. 그때 당신 생각이 났어요. 한 번 밖에 안 봤지만 그때 무척 인상 깊었어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던 당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소셜을 찾아봤죠. 소셜 속의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자유로왔고 우리의 첫 만남도 생각났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말이 내 생각나나요? 그 말이 내 인생에서 주는 영향이 컸어요. 물론 나는 당신이 한 말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10년 전의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내가 어떤 말을 했을까. 하지만 도무지 10년 전우리의 대화는 기억나지 않았다. 

"글쎄. 뭐였을까?"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좋은 제품을 사지는 못하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은 있어야 한다.' 였어요. 어릴 때 저에게는 참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뭔가 참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두 번째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였어요."

그녀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빵에 당근 버터를 잔뜩 바른 뒤 손으로 뜯어서 입에 넣었다. 나는 생각보다는 무난했던 내 과거의 발언에 대해 다소 안심스러워하며 조금 전 웨이터가 다시 채워 준 적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뭔가 바꾸고 싶었어요. 아니, 바뀌고 싶어요. 내 인생은 돈이 목적도, 행복? 아니, 돈이 행복이 아니니 행복이 목적도 아니었어요. 아니, 아니야.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남부럽지 않은 집에 가족에, 돈과 명예에,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내부에서는 이미 많은 게 망가져 있다구요. 그런 시기에 당신이 생각났고, 그리고 당신과 연락이 닿았고, 그래서 이곳 부다페스트에 왔어요."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가련한 여성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나는 문득 최근 내가 좋아하는 부다페스트의 단골 바에 전 세계에 몇 병 없는 야마자키 위스키가 입고되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병에 4 억정 도고 한 잔에 삼천만 원 정도인 위스키다. 내 한 달 생활비를 4~5개월은 모아야 한 잔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의 몰트 위스키다. 일단 나는 내 앞의 와인을 남김없이 비웠다.

"혹시 야마자키라는 위스키에 대해 알고 있어?"

그녀는 바로 대답한다.

"당신 술 좋아했죠? 저도 도쿄에서 야마자키는 물론 히비키부터 요이치, 하쿠슈등등 좋다는 술들은 많이 마시고 있어요. 야마자키 좋은 술이죠. 12년도 지금은 제법 비싸고, 그 이상의 빈티지는 가격이 상당히 올랐죠?"

"응, 잘 알고 있네. 부다페스트의 내 단골 바에 최근 야마자키 50년 산이 입고되었다고 하더라고. 식사를 마치고 한 잔 하러 갈까."

그녀 역시 앞에 놓인 와인 한 잔을 바로 비우고는 대답했다.

"좋아요. 제가 한 잔 살게요."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그녀 곁에 있어만 주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녀가 내 곁을 떠날 때까지, 그저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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