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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Jun 22. 2022

맛은 주관적이니까

마늘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어때? 타코 맛이?"

식사할 때 언제나 묻는 그녀의 질문이기에,

"나한테는 좀 매운데? 이 집이 주변에서 그렇게 호평을 받을만한 집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녀는 나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하긴 그녀가 몇 해전부터 이 집에 대해 자랑을 무척 많이 해왔었고 그래서 오늘도 꽤 먼 곳에서 이 집의 멕시칸을 먹기 위해 왔으니 그녀에게 거짓이라도 좀 좋게 답해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니야, 그런데, 뭐. 맛이야 주관적인 거니까."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오답이었다. 대답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미치도록 뜨거운 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를 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확실히 틀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당신, 맛이 주관적이라고? 미안하지만 맛은 데이터야. 무수하게 많은 데이터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라구. 만약 당신이 단 한 번도 샤퀴테리나 하몽, 따진 같은 것을 먹어보지 못했어. 그런데 누군가 그 요리를 당신에게 대접했는데 당신 입맛에 더럽게 안 맞는 거야. 그럼, 당신은 이 건 맛없는데. 하긴, 맛은 주관적이니까.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 한국의 평양냉면. 처음 평양냉면을 접하는 사람은 그 미묘한 맛에 대해 참 어려워하지. 평양냉면을 처음 먹는 사람이 나한테는 맛없는데? 하긴 맛은 주관적이니까.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염소요리를 한 번도 못 먹어 본 사람이 나는 염소요리는 별로야. 먹어보지 않았지만 틀림없어. 내 입맛은 주관적이니까.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사실 그건 그냥 무식한 거지. 모르면 공부를 해야지. 평양냉면도 수차례, 수십, 수백 번을 먹어야 그 맛을 알기도 하고, 소고기도 부위별로 에이징을 어떻게 하느냐, 어떤 소금을 쳐서 먹느냐, 돈가스를 어떻게 다지고 튀겨내서 먹느냐 등등에 대해 공부해가며 차근차근 데이터를 쌓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구. 와인도 매일 고작 1~2만 원짜리 마시는 주제에, '나는 와인 좋아해. 그러니까 와인이 말이야...'라고 말하는 게 와인의 맛을 안다고 생각해? 그러다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아, 맛이야 주관적이니까라고 말해버리면 되니까? 아니, 그건 엄청 무식한 거야. 그래, 만약 누군가 맛이야 주관적이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사실 그 수준이 엄청나야 해.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수긍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지. 당신, 내가 전 세계의 맛집을 몇 곳이나 다니고 와인을 몇 병이나 마셨는지 알아? 최소 5000곳에 수천병의 와인을 지금까지 마셔왔다고. 어떤 음식이 맛있고 어떤 음식이 맛없고는 개인의 입맛이고 개인의 취향 차이라고? 그런 멍청한 소리 앞으로 하지 마. 그건 그냥 멍청한 거야. 아니, 뭐 잘난 체를 하고 싶은 건가? 자존심이 상한 건가? 아, 그래? 당신 영상 제작 회사도 운영했고 연출도 꽤 많이 했었지? 그런 당신한테 한 초등한생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정말 1시간을 두세 컷의 롱테이크로 나눈 벽과 바다만 나오는 영상을 찍어서 당신에게 보여주며 이 작품의 미장센이 어떻고 ARRI 카메라와 DI가 어떻게 들어갔고 이야기를 했어. 그래서 당신이 좀 더 디테일 한 부분을 물어보니, 이를테면 DI에서의 색감이 왜 저렇게 블루가 되게 돌아갔는지, 그게 기계적 결함이 아닌지, 카메라 앵글과 미장센들이 흔치 않아 보이는데 촬영은 누가 했고 왜 저런 앵글로 촬영을 한건 가요 등등... 그랬을 때 그 아이가 '아, 그건 주관적으로 보시면 돼요. 예술은 주관적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거랑 같다구. 메밀면을 만들고 삶고 그걸로 막국수를 평생 만들어온 사람 앞에서 막국수를 처음 먹은 사람이 '이거 왜이리 텁텁해요. 맛없네요. 하지만 맛은 주관적이니까.'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맛은 정확한 데이터라구. 그 안에 어떤 화학적인 혹은 자연적인 식자재들이 인간의 혀와 침등과 만나 만들어지는 화학작용이라구. 그 안에 무수하게 많은 맛이 있고 이런 맛들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구. 진심인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된 음식이나 와인, 술도 못 먹어본 사람이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맛은 주관적이라고?"

나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 앞에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이미 여러 번 있었을뿐더러 그때마다 그녀가 따로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처럼 별생각 없이 그런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속내를 바로 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당신, 지금 내가 왜 뜬금없이 평상시 답지 않게 같은 말로 화를 내는 건지 궁금해하고 있지? 사실 당신이 나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때 그 말을 하는 거 수도 없이 들어왔어. 하지만 그때는 그것에 대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 왜냐면 어차피 당신은 내가 지금 같은 이야기를 했어도 이해도 못했을 테고 그냥 내가 화가 난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화를 풀어주려 급급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당신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이런 거 또한 당신에게는 큰 경험이라구. 어디에 가서 이제 함부로 맛은 주관적이라느니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지."

자존심이 상한다던가, 화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맞았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해준 것이 앞으로 나의 미식 인생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주눅 들어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몇 입 베어 먹었던 타코를 다시 들고 한 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래서, 여기가 왜 후버타코라고 불리는 거지? 그리고 여기, 이 녹색 소스 처음 보는 소스인데 대체 뭐야?"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한동안은 다툴 일은 없으리라.






맛은 주관적이니까 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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