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냉면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배고프니 일단 밥이나 먹자구.. 평양냉면과 불고기 궁합이 괜찮지…”

필립은 자리에 앉으면서 주문을 한다. 배도 고팠지만, 냉면 전문점에서 다른 것을 고를 이유가 없었다.


“이야~ 불고기 냄새 좋네!”

데이비드는 광통교에서부터 종로와 을지로를 통과하는 익숙지 않은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쌓인 약간의 피곤함이 식당에서 풍기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 휩쓸려 사라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방인들에게는 불고기가 잘 알려져 있기는 한데, 냉면을 위한 조연에 불과하지. 물론 값이 아닌 맛과 멋으로 말이야!”


“글쎄, 먹어보면 알겠지. 미국에도 평양냉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릴 때 내 기억으로는 아무 맛도 안 났던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는 걸!”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조금은 신나고 흥분된 모습이다.


데이비드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양냉면에 대한 호불호는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그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이걸 왜 먹나 싶은 음식이어서 서로 다른 입맛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절대 같이 가면 안 되는 식당들이 있다. 필립은 어려서부터 평양냉면의 메밀 향과 은은한 육향이 혀에는 다소 심심하지만 향과 맛이 어울려 새로운 고급스러움을 창조하는 평양 냉면의 맛을 사랑했다. 그래서 평양냉면이 아닌 여타 물냉면의 시고 달며 자극적인 양념 맛의 냉면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아마 반대인 모양이다.


"그럴 수 있지.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닐 거다. 그리고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 되면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되기도 하니까.."


"뭐 음식 인문학 그런 거야? 요새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던데.."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닐 거야. 왜냐하면 내가 인문학을 들먹일 정도로 음식에 정통한 사람도 아니고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해봐야 같은 고등학교 나온 너나 나나 딱 그 정도 수준일 것이 뻔해서 그런 고급스러운 이야기들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구먼. 다만, 언젠가 옛날 신문을 찾아보다가 읽은 기사가 기억이 나서 하는 말이지."


"네 말이 아니라 신문 기사라면 그나마 좀 믿을만하겠네."


데이비드는 언론의 자유는 필요하지만, 뉴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정보는 그 양에 비해 그 정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보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그 정보에 대한 검증을 하고 내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미디어의 변화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의 일인 방송 시대에서는 무엇을 듣고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부 동의할 수밖에 없겠다. 신문은 이제 거의 사라진 미디어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나름대로의 기능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거든.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인 차원에서 말이지. 물론 여기에도 편향성이라는 것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서 신문도 여러 개를 같이 보곤 했는데, 요새는 그저 인터넷으로 기사를 슬쩍 소비하는 수준이고, 종이 신문은 생선가게에서도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하긴 신문이 생선 가게에 제일 많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네. 그런데, 넌 무슨 신문에서 냉면 기사를 봤다는 거야?"


“1936년 7월 23일 자 매일신보(每日新報). 좀 황당하지? 그런데 그 신문에 냉면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있더라고. 냉면은 반죽하는 솜씨가 국수 맛을 결정하고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이제는 서울 냉면을 손꼽을 수 있다는 기사가 있더라.”


매일신보. 1936년 7월 23일


데이비드는 영국인 베델 (Ernes Tomas Bethell)이 창간한 민족진영 신문이었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를 사들인 일본이 국권침탈 후 앞의 두 자 대한(大韓)을 떼버리고 총독부의 기관지(機關紙)로 바꾼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기사 내용이 조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아주 한국 문화까지 깊숙이 정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하긴 역사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식민지배가 어려웠겠지. 그런데 서울 냉면은 뭐야?”


“기사를 보면 서울 냉면이라는 것이 특별히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평양냉면의 조금 다른 버전인 것 같아.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경제가 착취를 당하다 보니 평양의 냉면 기술자들도 벌어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많이 이동을 한 모양이더라. 그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평양냉면집이 서울에 많이 생긴 것 같더군.”


“그럼 뭐 냉면 맛은 똑같았겠구먼.. 치킨 집 생기듯이 막 생긴 모양이네.”


“맛은 조금 달랐을 것이야. 지방 특성에 따라 같은 음식도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냉면은 조금 더 특이한 음식이야. 일단, 찬 음식이기 때문에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먹을 수 있던 것인데 서울이 평양보다는 기온이 높았고 가을 메밀도 수확이 많지 않아서 서울에서는 메밀에 고구마 가루 같은 것을 섞어 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겨울에, 게다가 일제 강점기 동안 경제도 어렵고 하여 동치미 국물에 꿩 고기 등을 넣어 육수를 만들기도 힘들어 맛도 좀 달랐었는데 신비의 가루가 나오면서 원래 육수의 맛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야.”


“신비의 가루라면 보통 마약 같은 거 아니냐? 그 당시에 마약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니 그 가루가 마술 같은 맛을 낸 모양이군!”


필립은 마술 같은 맛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는 것을 빗대어 마약 김밥이니 마약 떡볶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쓰지만 음식에 쓰기에는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었다. 때문에 마술 김밥이나 마술 떡볶이라고 하면 오히려 귀여워 보이기라도 할 것 같다.


“마술 같은 맛이지. 아지노모도라는 것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만 영어 단어에 우마미 (umami)라는 말이 있지?”


“우마미 (Umami)라고 하면 뭔가 입에 가득 찬 느낌의 풍성한 맛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토마토케첩 같은 것들이 내는 맛을 표현할 때 쓰기도 하지. 한국말로는 대략 감칠맛이라고 하던데. 그럼 그 신비의 가루라는 것이 감칠맛 나는 인스턴트 육수를 만드는 조미료였던 모양이군.”


“그렇지. 그 Umami라는 단어가 사실은 한자로 맛있는 맛이라는 뜻의 ‘지미(旨味)’이고 일본말로 읽으면 ‘우마미’라고 읽는다는 것이야. 일본 과학자가 만들어낸 말이지. 인스턴트 육수를 만든 것은 아니고 소위 감칠맛을 내는 화학조미료를 판 것이지. 일본의 화학조미료인 아지노모도 (味の素)가 바로 그것이고 1910년 말 서울의 냉면집에서는 아지노모도의 소위 신비한 맛을 내는 조미료가 첨가된 육수로 냉면을 말아 팔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서울에 얼음 공장도 생기면서 얼음과 아지노모도가 여름냉면을 가능하게 한 것이지. 사실은 너도 잘 알고 있는 상품이야.”


“내가 아는 상품이라고?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인데…” 데이비드는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MSG라고 들어 보았을 텐데. 최근에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여 조미료로 잘 쓰지 않았었지만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하고, 요새는 다시 광고를 많이 하더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주식회사 대상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주식회사 미원이었던 회사가 해방 후에 아지노모토를 카피해서 미원이라는 상품을 만들었던 것이야. 한자로 味素나 味元이나 다 같은 뜻이지 뭐. 상품 디자인도 유사하고…”


“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구나. 하여간 그 아지노모도라는 것이 아주 많이 팔렸었겠어.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는 식재료도 풍부하지 않았을 것이니…” 필립의 설명이 매우 흥미롭다.


(왼쪽) 감칠맛 미원 (오른쪽) Umani 한 아지노모도


마침 주문한 불고기와 냉면이 나와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필립은 냉면의 육수를 먼저 한 입 들고 마신다. 데이비드도 필립을 따라 일단 냉면 육수부터 맛을 본다.


“네 말을 들어서 그런지 담백하네! 그런데, 이것은 아지노모도를 사용한 것은 아니겠지?”


“넣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아닐 거야. 꿩고기는 못 넣더라도 제대로 육수를 우려냈으니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 아니겠냐?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주 대 놓고 냉면집에서 아지노모도를 사용하는 집이 맛있는 집이라는 광고를 했다고 하더라. 맛있는 거 먹으면서 할 말은 아닌데, 그 당시 광고를 보면 아지노모도를 쓰는 여성은 신여성이고 개화된 여성이라는 인상을 깊게 심어주려고 한 것 같더라.”


아지노모도 신문 광고, 당시의 냉면집은 종이나 천으로 국수발 모양을 만들어 걸어놓았었다.


데이비드는 신여성, 개화라는 말을 들으며 일본에 의한 근대화라는 말을 떠올렸다.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그야말로 애매했기 때문이다. 1919년 유관순 누나로 대표되는 삼일운동 이후 일본은 조선인에 대한 강압적인 무단통치의 한계를 느끼고 문화통치라는 방식으로 조선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의 회유통치를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심한 감시를 시작했다. 친한 척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식이다. 다만 조선인들은 웬만해서는 뒤통수를 맞지 않았고 서로를 이용하며 불편한 동거를 하는 중에 일본의 상황은 태평양 전쟁으로 휩쓸려가고 있었고, 아지노모도가 성행하던 1930년대에는 조선을 병참기지화하기 위한 경제 통합의 명목으로 자본과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수탈하기 시작하던 애매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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