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몇 백 년 전 브리지인데도 꽤 단단하고 화려하구나. 이탈리아의 리알토 다리와는 다른 화려함이야."
"데이비드, 베네치아도 가봤냐?"
"아니, 그냥 사진으로만 봤지. 언젠가는 갈 일이 있겠지 하다가 못 갔네.. 아예 못 갈 곳이면 생각도 안 했을 텐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 생각하니 또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실행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
"하긴, 역설적이긴 하네, 너무 유명한 장소에는 안 가봐도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된 탓이거나 놔뒀다가 진짜 가보고 싶을 때 가려고 미루다가 결국 못 가보곤 하는 거 같어. 거기에는 늘 만약이라는 조건이 붙어있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같은 그런 가정말이야."
"시간이 많은 줄 알거든. 특히 젊을 때 말이지. 그런데, 또 사람만이 지구상에서 자기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사는 생명체인 탓인지 아니면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이런 다리도 만들고 이야깃거리도 만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네."
필립은 사람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사는 생명체라는 데이비드의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의 한 명이 반려견인 제리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했었다. 만약 그것을 알면 늘 한결같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늘 한결같기 어려운 이유 또한 궁극적으로는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알토 다리는 나도 못 가봤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건설 중에 자꾸 무너지기만 하는 다리를 완성하려고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 다리잖아. 결국 전설에 의하면 다리 건설자의 아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인데, 여기 광통교도 그것에 못지 않은 화려함 뒤의 잔인함이 서려있는 이야기가 있지. 다만, 리알토 다리의 전설과는 달리 역사적인 사실에 가깝고 눈앞에 그 증거도 있다는 것이 좀 다르지."
"어떤 잔인함의 역사적 증거가 여기 있다는 거냐? 돌에 새겨진 무늬가 화려하기만 한데.."
"잘 보면 무늬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데이비드는 필립의 말에 돌에 새겨진 무늬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필립의 말대로 뭔가 조금 이상한 구석이 느껴졌다.
"그래 조금 이상하긴 하네. 네 말대로라면 청계천을 명당수가 아닌 생활하천으로 관리했다는데, 돌에 이토록 화려한 무늬를 새겨 넣은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이토록 정성스럽게 만든 것을 뒤집어 놓은 것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좀 이상하지? 생활하천이면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흐르던 물인데, 이렇게 공을 들여 조각까지 할 필요가 있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또, 네 말대로 돌 몇 개의 무늬가 거꾸로 놓여있지. 일부러 그런 거야. 우리나라 초딩들도 다 아는 것이지만 이 돌은 신장석이라고 해. 영어로 말하면 대략 stone of divine general 정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석으로 쓰이는 거야. 원래 이 돌들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강 씨, 신덕 왕후의 능에 있던 것인데 태종 이방원이 흙다리였던 광통교가 홍수에 쓸려 내려가자 자신의 계모인 신덕왕후 능의 돌을 가져다가 오물이 흐르는 청계천 광통교의 다리를 만들 때 기초로 썼어."
데이비드는 비로소 화려함 이면의 잔인함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태종 이방원과 왕자의 난.. 바로 그것이 이런 결과로 돌아와서 수 백 년이 지난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을 위해서는, 특히 권력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천륜을 어기는 일일지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극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자란 인간들의 어이없는 짓에 불과해 보여 오히려 헛웃음만 나왔다.
"웃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는 모양이네. 사실 세상에는 잘 이해되지 않고 어색한 것들이 종종 있더라. 이집트의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가 서있는 것도 어색하고 경주에 있는 첨성대를 모두들 천문대라고 하는데 천문대가 산 정상 같은 곳이 아니고 왕실 귀족(王室貴族)들의 무덤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것도 어색한 일이긴 해.”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도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런 미스터리 한 이야기들에 대한 내용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또 우리는 당시의 일을 지금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잣대에 놓고 이해할 수도 있게 된 거 아니냐? 그러고 보니 여기도 QR 코드가 있는 것을 보니 이런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하는 모양이네. 한 번 확인해 볼까?"
필립은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핸드폰을 꺼내는 데이비드를 말렸다. 자신도 언젠가 광통교에 붙어있는 QR 코드를 확인해 보았는데, 서울시설관리공단 홈페이로 연결이 되어 실망했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 사이에 달려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대로라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냥 가자. 광통교에 얽힌 이야기는 아직도 많으나 천천히 다른 것도 보고 우선 밥이나 먹는 게 좋을 것 같네. 구경도 식후경이어야 할 만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