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물이 동쪽으로 흐르네..."
광통교에서 청계천을 내려다보던 데이비드는 아침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용케도 알아챘네. 사람들은 청계천이 동쪽으로 흐른다는 것에 별 관심도 없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건데.. 생긴 거와 달리 꽤 눈썰미가 있나 보네. 네 말대로 청계천은 동쪽으로 흐르는 동류천(東流川)이야.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도 하지."
데이비드는 무심코 한 이야기였지만, 필립은 그것이 중요했다고 하니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졌다.
"물이야 동서남북으로 다 흐를 수 있고 일부러 물길을 내기도 하는데 무슨 말이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청계천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서울에 있었던 개천이라는 건 알지?"
"응, 알지."
"그럼 세종대왕도 알아?"
"뭔 그런 시답지도 않은 말을 질문이라고 하나?"
"그렇지. 아무리 한글을 잊었다고 해도 세종대왕은 알아야 정상이지. 우리나라는 지형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서 강물이 거의 모두 서쪽으로 흐르는데, 청계천은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조금 특이하긴 해. 하여간, 세종대왕이 계실 때 집현전에서는 청계천을 풍수지리상 동쪽으로 흐르는 명당수로 관리 할 것인지 한양 백성들의 생활터전으로서 생활하천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논쟁이 있었어."
"뭘 그런 것을 가지고 논쟁을 했다니?"
"세종 시대는 조선 초기라서 아직도 나라의 틀을 잡아가고 있던 때이고, 왕궁이 들어서있는 한양에 명당수가 흐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런 명당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생활폐수며 쓰레기들이 버려질 수밖에 없어서 아무래도 오염이 많이 되었겠지. 명당수를 그렇게 관리해서는 안된다며 쓰레기 투입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집현전 수찬이었던 이선로(李善老)의 주장이었고, 집현전 교리였던 어효첨(魚孝瞻)의 주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
"누가 더 직급이 높았던 거야? 직급으로 눌렀을 것 같은데.."
"반만 맞았다. 교리는 정 5품이었고 수찬은 정 6품으로 어효첨의 직급이 더 높았지. 그리고 결국 청계천은 명당수가 아닌 생활하천이 되었어. 어효첨은 도시란 원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생활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넓은 개천이 그러한 쓰레기를 흘려 내려보낼 수 있어야 도성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어. 세종대왕이 두 의견을 모두 듣고 어효첨의 주장을 받아들였는데, 풍수학이 옳은지 그른지는 왕이 독단적으로 정할 수 없으니 별도로 논의토록 하되, 백성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을 한 것이지."
"세종이 왕으로서 하기는 어려운 결정을 했구나. 백성보다는 왕실의 안녕을 먼저 따졌을 것 같기도 한데."
"세종대왕이 한글도 만들고 측우기도 만들고 조선의 천문서도 만든 이유가 결국은 백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충분히 그런 결정을 내렸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게다가 또 도성 백성들이 즐기던 세시풍속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개천이기도 했어"
"세시풍속?"
"유두라는 말은 들어봤겠지? 모르려나?"
"유두라는 풍습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뭐여?"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긴 한데,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엄마들이 창포에 머리 감는 날이 단오라는 명절이었어. 창포는 강이나 연못에 있는 풀인데, 비누 같은 것은 아니고 머릿결을 매끈하게 하고 탈모 방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 요즘으로 치면 샴푸가 아니라 트리트먼트 린스 같은 것이라고 하면 될 듯하네. 여하간, 지금은 거의 사라진 명절이지만 여름에는 유명한 단오(端午)와 유두(流頭)가 있었어, 단오(端午)는 음력 5월 5일이고 ‘수릿날’이라고도 하지. 양(陽)의 수(數)인 5 가 중복되어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로, 왕이 신하에게 단오선(端午扇)이라는 부채와 얼음 같은 것을 내려 주었다고 해. 어린애들은 창포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꽂고 창포 달인 물로 머리를 감았다고 하고, 남자 어른들은 씨름판을 벌였다고 하니까 꽤 큰 명절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왜 이름이 유두야?"
"음력 6월 보름을 유두라고 하는데, 동류두목욕 (東流頭沐浴)이란 말의 약어로 민속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가서 머리를 감는데, 그 까닭은 동방이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한국민속의 세계 5, 세시풍속 전승놀이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그래서 청계천을 명당수라고 하는구먼. 하긴 동쪽이 주는 의미가 좀 다르긴 해. 석가모니도 동쪽을 보고 앉아서 도를 깨우쳤다고 하잖아."
"의외다. 석가모니도 알고.. 모를 만한 것을 띄엄띄엄 아는 게 신기하네.. 말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물 따라 좀 걷다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둘은 광통교 아래로 내려가 물 따라 걷기로 한다. 동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