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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Aug 14. 2022

음지의 이야기로 양지에서 사랑받은 첫 번째 작가

음울한 짐승(1928) 에도가와 란포

[세계 추리문학전집] 31/50


과장을 걷고 문자 그대로 동시대 '일본 미스터리의 신'인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작가 인생을 시작한다. 그로부터 60여 년 전 데뷔한 또 다른 신이자 개척자인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따 제정한 추리문학상이다. 신인 공모전이기 때문에 훌륭한 추리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무려 히가시노 게이고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뜻깊다. 두 거장은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소설가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포함한 많은 일본의 후배 작가가 란포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나아가 출판, 영화, 만화 등 일본 미스터리와 관련된 모든 영역이 란포의 자장 아래 있다. 에도가와 란포의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그의 이름을 차용한 캐릭터 '에도가와' 코난을 알고 있다.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인 모리 '코고로' 그리고 <소년탐정 김전일>의 '아케치' 경시는 작가의 대표 캐릭터인 탐정 아케치 코고로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러 편이 만들어질 정도로 대중적인 작품이 아케치 시리즈였다면, 중편 「음울한 짐승」은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작가 자신이 중시한 본격 미스터리 요소와 대중이 원했던 퇴폐 미학을 결합했다.


주인공인 소설가 '나'는 우연히 내 작품을 좋아하는 여인 시즈코를 알게 된다. 친구로서 편지를 주고받던 어느 날 시즈코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과거 자신에게 집착했던 남자 히라타 이치로가 협박장을 보내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예고한 대로 시즈코의 남편을 살해한다. 사건을 조사해보기로 한 나는 점점 여인의 매력에 이끌린다. 결국, 특별하고 괴이한 관계를 맺게 된 나는 쾌락과 별개로 일련의 사건에서 전해지는 이물감을 느낀다. 소설가 탐정은 명쾌한 추리로 결론을 끌어낸다. 반면, 뒤틀린 욕망이 남긴 꺼림칙한 기운은 오래 지속된다.


치밀한 설계와 완벽한 트릭은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소설의 설정을 범행과 연계하는 장치도 극적 재미와 몰입도를 높인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자세한 동기 묘사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기괴하고 변태적이라 하여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란포가 비일상적 소재와 분위기에 매료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비판받을 지점은 아니다. 인간 내면에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정리된 언어로 표현되지 못했던 음지의 심리를 문학화하여 제시한 것이 란포가 이룬 업적 중 하나다. 그가 필명을 에드거 앨런 포에게 빌린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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