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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Nov 02. 2022

애도의 방식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법

우리집은 정규방송만 나온다.

그래서 재밌다고 소문난 드라마와 예능은

나와는 먼 얘기다.

아는 척하기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화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나,

학생들로부터 TMI를 인정받은 나는

그저 소외되지 않기위해, 트렌드를 알기 위해

유명한 드라마와 예능의 이름 정도를

알려고 노력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 집 테레비는

주로 백색소음을 위해 틀어놓는 용도이다.


지난 토요일도 나에겐 그랬다.

무얼 봤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작하길래

이제 무서운 것이 시작되니 자야겠다 싶어서

얼른 테레비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좀처럼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는 남편이

새벽녘에 '사람이 많이 죽었어, 일어나봐' 하며

나를 흔들었고,

나는 무슨 소리냐며 뭉그적 거리다가

'백 사십 삼명이래'하는 남편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테레비를 틀었더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울 혹은 수도권, 혹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러 보았을 그곳에서

이토록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중환자실 근무경력이 있기에

왠만한 일에 덤덤함을 유지할 수 있듯이

내가 중환자실 근무경력이 있어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떠한 사고로 다쳤을 때

어떠한 모습에 있을지,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어떠한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탓이다.


나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정교히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이

선의와 절박함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그 장면에서

너무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의 이과적 머리는

나의 경험치와 합쳐져서

이미 최악의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 장면들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그토록 식상한 말 한마디가

절히 와닿는 일이 또 일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는 늘어났고,

하나마나한 조치들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과,

필요치 않은 도움들을 제공하겠다는

허망한 위로들이 계속 전해졌다.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을 안다.


그러한 일요일을 어찌어찌 잘 보냈다.

월요일 출근길 운전하는 차안에서 튼 라디오는

내가 아는 전세계의 슬픈 노래는 다 틀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디제이가 기어코 BTS의 '봄날'을 틀자,

나는 엉엉 울며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

오너라서 다행이었다.

나는 내 차안에서 실컷 울며 출근했다.

코로나 놈 덕분에 화장을 안한지도 오래라서

화장이 망쳐질까 걱정할 일도 없이

나는 엉엉 울 수 있었다.


BTS의 '봄날'은

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만들어진 곡이라고 알고 있다.

아직도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그 분들까지 얹혀져서

내 마음은 나의 애도는 터져나오고 있었다.


참사를 대하는 내 나라의 모습은

기대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리고 어제 공문이 왔다.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하라고 하였고,

교무부 선생님들은 수업과 업무 중간중간 짬을 내어

검은색 부직포와 핀을 사오고,

옹기종기 모여 오리고 접어 검은 리본을 만든뒤

일일이 나누어 주셨다.


감사하지만,

나의 애도 방식은 내가 정하고 싶다.

나는 달으라고 해서 달아야 하는

검은 리본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고, 가슴에 새길 것이며,

이 젊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애닯아 할 것이다.


나의 애도 방식을 강요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교무부 선생님이 주신 검은 리본은

보건실 문에 붙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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