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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둘기 Oct 30. 2022

우리들의 메타버스

work and care and life balance


*이 글은 픽션 (fiction) 이며 논픽션(fiction)입니다.

픽션: 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 또는 그런 이야기


유하씨는 드디어 이직하게 된 새로운 회사 근처에 이사를 마쳤다. 오늘은 첫 출근날이다.


‘올해 11월, 65세 이상 독거하는 고령자 비율이 36.4%까지 도달하였습니..지지지..직’

출근길 라디오는 또 그 소리다.

“밍아, 아침에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  

‘내가 저 나이 되면 한다리 건너면 다 노인들이겠네.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랑가~”

얇지만 쨍쨍한 그녀의 눈꺼풀은 아직 창창하다고, 젊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유하씨는 남일 같지가 않다. ‘아 나는 그래도 아직은 혼자가 좋다. 특별한 일 없음 결혼은 안할래.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녀는 1년 전, AI 반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로봇 로카(roka)를 만들어낸 35살의 수재이다.

로카는 모든 대화가 사람처럼 가능한 반려 로봇으로 언어 치료에도 쓰이지만, 혼자 있는 어르신들이 인구의 1/3을 육박하면서 집에 하나쯤은 놔줘야 하는 로봇청소기처럼 필수템이 되어버렸다.


유하씨는 첫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근무했다. 유하씨와 그녀의 팀은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인 로카를 만들어내기위해 5년동안 수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많은 노력을 가했다.

그녀는 프로젝트 성공 후에도 여전히 고민이 있었다. 유하씨네 엄마는 로카의 도움 밖에 있는 노인이기 때문이다.

‘딸이 만들어도 울 엄마는 쓰지도 못하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내가 만든 로봇 로카. 로카는 커녕 나도 간간히 못알아보는 우리 엄마. 이미 다 써버린 내 리프레시 휴가. 엄마가 있는 병원은 다른 환자들 대기가 길어 타 병원으로 이전도 고려해 보셔야 할 것 같다는 병원의 문자가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나만 성공하면 뭐하냐~.’


프로젝트나 연구개발에는 장기간의 씨름이 필요하고 그 기간 중 하는 일은 고되고 어렵다. 활력 회복을 위해 1개월 이상의 장기 유급휴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도 마땅했지만, 이미 유하씨는 어머니의 간병으로 본인에게 주어진 4개월의 리프레시 휴가와 앞으로 있을 일 년치 휴가를 다 당겨 쓴 상태였다. 앞으로 더 쓸 수 있는 휴가는 없었다. 회사는 그럼에도 그녀의 능력을 알기에 붙잡았지만 얼마나 더 내야할지도 모르는 휴가를 더 달라고 하기에도, 앞으로 있을 새로운 연구, 동료 연구원들과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난감한 일이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간병휴가가 없는 곳에서 계속해서 휴가를 쓰며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이 많던 유하씨는 그러던 중 포럼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선배 익현씨의 제의를 받고, 얼마전 직장인 간병센터가 바로 옆에 있는 회사에 지원했다. “유하씨, 업무는 지금 유하씨가 해오던 거랑 비슷하다더라. 회사 옆에 센터는 뇌종양 환자분들에게 특화되어있는 곳이야. 엄마도 회사 바로 옆에 모실 수 있고, 직원 대상으로 케어링 팰리스 입주신청도 선지원 가능하다고 하니까 한번 신청해봐.”

사실 유하씨의 본 거주지인 서울에서는 살짝 떨어져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도 되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너무 좋은 제의인데. 연봉은 똑같아도 간병 휴가도 따로 있고 말이야.’


유하씨의 이직은 성공적이었다.

오늘은 퇴근하고서 서울 집에 남은 짐을 정리하러 간다.

앞으로 엄마의 얼굴은 더 자주 보고, 휴가 때문에 고민은 덜게 되었다. 회사에서 새로 하게 될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이한씨는 올해로 46살이다.

4개월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오늘은 아침에 복지센터와 계약을 맺었다. 저번 주에 면접 본 어르신 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1시까지가 이한씨의 근무시간이다. 이후에 시간에 이한씨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로 프리랜서로 일한다.

‘이 집은 다행히 로카가 있다. 말벗은 안 해도 되겠네.’ 조금이라도 일을 덜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모든 직업이 어느 정도 그렇겠지만 육체노동에 감정노동까지 있기 때문에 이한씨는 조금은 덜 피곤하게 일하고 싶다. ‘자율주행 시대에 뒤떨어지게 속옷에 부착해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로봇은 왜 없는 걸까,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생각하는 날이다.


18살 초은씨는 서로세움 마을공동체에 가입했다.

매달 일정의 돈을 내면 마을 공동체에 가입된 이웃 주민들이 지원하여 아버지를 돌봐주러 온다.

 ‘딩동’ 마을 공동체 어플 서세(서로세움)의 알람이다.

‘담당자가 배정되었습니다. 30분 뒤 출발 예정이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뭐야 아, 산묵이 아저씨가 오늘 담당이시네ㅎㅎ’

익숙한 담당자의 이름에 등교를 준비하는 초은씨의 손놀림은 조금 더 가볍다.

-디리리링 디리리링-

“여보세요? ㅋㅋ김초은 나 바쁘다고 지금. 왜 전화했어?”

“야 지경은~~~ 오늘 너네 아빠가 우리 아빠 담당이다. 아저씨한테 오늘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줘.”

“ㅋㅋㅋ 알겠어. 안 그래도 일 잡혔다고 방금 신나 하던데! 오늘은 너네 집이구만? 아빠가 어제 귤 사 왔는데 너네 집에 귤 좀 가져가라 그래야겠다.”

“오케이~~ 내 거까지 많이 가져와라ㅋㅋ”

“에라이 ㅋㅋ 엉, 이따 봐~”

산묵이 아저씨는 초은씨와 같은 반 경은씨의 아버지다.


70세 만오씨는 오늘 설레는 스케줄이 있다.

손자가 알려줘서 메타버스에 입문해, 어느덧 메타버스 6개월 차인 만오씨는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과 토성의 고리에서 만나 장기를 두기로 했다. ‘다리는 다쳤지만 나는 토성까지 갈 수 있다!’ 오늘은 왠지 빨간 모자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입장하고 싶다.


메타버스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최씨~ 최씨가 지금이랑 똑같이 태어나고 자라고 하는데, 만약에 가상인간이 돼서 아기 때부터 최씨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하면 학교라든지, 부모님 일자리라든지, 직업이라든지 어떻게 도와줄 거야?”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궁금하니까~”

“음.. 안 도와줄 거야.”

“....? 으잉, 왜~~?! 최씨 맨날 일반적인 삶을 바랐잖아.”

“일반적인 삶을 바라지도 않아.”

“왜?”

“일반적인 삶..? 평균적인 삶..? 그런 건 있지도 않고 사람들마다 각자 힘든 게 있는 거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는 거니까.”

“그-으-래-?”

“난 나야.”

“‘나’가 뭐야?ㅎㅎ”

“난 나 자체로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존재지.”

최씨는 말했다.

‘뭐야.. 멋있잖아. 이 남자.’


내가 종종 힘들 때마다 최씨는 말해준다.

삶을 사랑하기로 결정하면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나는 수많은 시간들을 거쳐왔을 그를 생각해본다.


“그래도 꼭 하나만 말해봐! 나 소설로 이 글을 마무리할 거란 말이야.”

“그래도 하나 말하자면 마을 공동체가 필요하겠지?”

마을 공동체라.

시골에서 아니면 가능할까 싶은 상상이 안 되는 공동체다.


둘이라면 적당하고 셋이라면 작아진 이 집.

혁이씨에게 서재 방 하나를 내어주고는, 작아진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옷들과의 동침을 하지만 서로의 인생을 소중하다고 여기는 우리다.

혁이씨의 완치를 기도하면서도 얼른 혁이씨와의 제대로 된 합가, 이사를 꿈꾸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마을 공동체를 얘기해보면서 잠드는 밤이다.

옆 방, 혁이씨는 오늘도 두 발로 걸어 서울 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


주말이 지나면 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일을 하고 케어를 하고 쉬기도 하며 웃고 짜증내고 다시 힘 내보고 각자의 몫의 일상을 살아가겠지. 그리곤 이불 위에 누워서 ‘오늘 하루 왜 이렇게 빨리 갔지’ 하고 눈을 감겠지.

지난한 시간과 대면해야 하는 날들이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메타버스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을 부비고 사는 삶을 택할 것이다.

가끔은 내가 키운 가상의 숲이 잘 자라고 있는지 들어가 볼 테지만, 아무래도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못생긴 몬스테라가 더 좋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를 조금 더 사랑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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