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덤엔 관이 없었다. 무덤 자체가 하나의 관처럼 보였다. 바닥은 돌로 다져놓았고, 사면은 통나무를 쌓아 올려 널을 완성 했다. 부장품이 많았다. 왼편에 긴 창검이, 오른편에 항아리와 토기들이 놓여 있었다. 돌검과 도끼, 화살촉과 덩이쇠가 머리맡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모두 주인 없는 물건이었다. 무덤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한 사람이 몸을 누이기 넉넉한 공간. 바라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저기 누워보고 싶다. 나는 생각하는 중이었다. 자석에 끌리듯 무덤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남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사진 좀 찍어줘.”
우리는 대성동고분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던 참이었다. 내가 발견한 무덤은 건물 로비의 벽과 바닥에 걸쳐 그려놓은 트릭 아트였다. 평면의 그림을 원근과 명암의 기법을 동원해 3차원 공간으로 살려 놓았다. 그곳에서 관람객은 가야 왕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뒤늦게 출구로 나오던 남편이 내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웬일이지? 남편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다 무덤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핸드폰 잠금 화면을 해제하는 동안에도 그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왜 저런 데서 사진을 찍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덤 앞에 서 있는 내가 카메라 화면엔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화사한 봄날의 오후였다. 죽음 따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만큼이나 아득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부부는 천년만년 살 것이다. 방금 가야인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왔음에도 편견은 견고했다. 그런데 내 돌발 행동이 그는 물론 나 자신도 진실과 대면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카메라를 통해 나의 죽음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천년만년 살 수 없으며, 둘 중 하나는 홀아비나 과부가 될 것이다. 그 점을 깨닫고 그는 눈살을 찡그렸다. 반면 내가 목도한 진실은 좀 달랐다. 나는 무덤에 누운 채로 두 손을 포개 가슴 아래에 얹고 미소 짓는 중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무덤의 돌바닥이 침대보다 편안했다. 나무 벽과 고대의 물건들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속에서 장난기 가득한 즐거움마저 샘솟았다. 대체 이 감정이 다 뭐지?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을 축제로 다룬 바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병원 장례식장에 죽음을 가둬버렸다. 삶에서 죽음을 분리해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시키고 그곳에서 박물관 유물처럼 죽음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문상을 가서야 ‘아참, 우린 모두 죽지?’하고 깨달으며 한 번씩 놀랄 뿐이다. 죽음을 내 몸으로써 이렇게 체험해보긴 처음이었다. 찰칵, 하는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 죽음이 이런 건가? 나는 남편에게도 이 느낌을 권해보고 싶었다.
“자기도 한번 찍어봐.”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박물관을 나섰다. 우리는 도로를 건너 해반천으로 내려갔다. 산책 삼아 좀 걷기로 했다. 아이를 혼내고 있는 젊은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기 딸이 흙을 만졌다고 나무라는 중이었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저렇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흙에는 생명의 정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가 죽어 돌아갈 곳도 흙이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는 흙을 바이러스가 들끓는 폐기물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본래 한 덩어리였다. 인류의 조상은 이점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죽음을 삶 가운데로 가져와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고구려에는 가무를 행하며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상여놀이나 다시래기 같이 유희적 요소가 가미된 죽음의례가 지방마다 전해져 온다. 인도인도 경쾌한 가락의 주문을 외며 장례를 치른다. 마다가스칼에선 장례를 지내고 일정기간 후 고인의 유골을 파내 비단에 싸서 축하행사를 벌이기까지 한단다. 멕시코의 합동 제삿날인 ‘죽은 자들의 날’은 영화 ‘코코’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일 년에 한 번 망자가 가족을 찾아오면 등불을 밝히고 음식을 마련해 축제를 즐겼다. 이탈리아 위령의 날, 중국의 중원절, 일본의 오봉 축제, 서아프리카 말리 소수민족 도곤족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삶 가운데로 모셔와 축제로 승화시킨 예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현대인은 분리해선 안 되는 덩어리를 둘로 갈라 그중 하나를 지하 장례식장으로 몰아넣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흙으로 인해 감염될까 전전긍긍하는 엄마처럼 우리도 죽음이 삶을 오염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둘을 떼어놓으면 삶을 청정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유물론을 신봉하는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이 두뇌에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몸이 멸하면 그것으로 모든 건 끝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아이들이 흙놀이를 못 하고 자라나듯 우리는 죽음을 만져보지 못하고 나이 들어간다. 흙에서 멀어진 삶이 몸의 면역력을 저하시키듯, 죽음에서 멀어진 삶이 정신의 면역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인류의 선조들이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건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을 존재 형태가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몸을 벗어난 영혼은 조상의 자리로 옮겨가 후손들과 교류를 이어간다. 삶과 죽음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트릭 아트는 인간의 시각이 속임수에 약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예술이다. 착시와 착각, 고정관념과 편견은 육체의 눈뿐만 아니라 정신의 눈도 가린다. 무덤에 누워볼 것을 제안한다. 누워보면 당신의 몸이 말해줄 것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무덤은 로켓이다. 망자를 새로운 세상으로 쏘아 올리는 로켓. 내 마음속에서 장난기 가득한 즐거움이 샘솟았던 이유를 그것 말고 달리 어떻게 설명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