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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이라 부르는 인생극장

(Operative theatre) - 그리고 우리 삶 속의 명화들

         프롤로그



 수술실이란 곳은 통제 구역이자 청정 지역이다. 수술을 앞둔 환자분이 이동카를 통해 이송원과 수술실 입구의 자동문 너머로 사라지고 나면 남은 가족들은 굳게 닫힌 수술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조용히 대기실 의자에 앉아 수술실 전광판만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특히, 생사가 걸린 외상 수술이거나 암수술인 경우 특히 보호자들은 수술의 결과를 알기 전까지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시거나 염원을 담아 기원하시게 된다.    

 

  나는 의사 면허를 딴 이후 근 30년의 대부분을 수술실에서만 근무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이다. 수술실이란 곳은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이며 또한 때로 수술의 상황에 따라 숨 막힘과 긴장감이 감돌게 되는 특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왔지만 답답함이라든지 지루함을 느낀 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 작은 공간에서 때로는 한 인간의 삶과 죽음, 미래가 결정되기도 하고 다양한 직종을 가진 많은 근무자들이 같이 일하면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심심할 수가 없었다. 


 수술실을 영어로 operating room(OR)이라고 부르지만 과거에는 operating theatre(OT)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직역하자면 ‘수술 극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전에 수술실은 의학에 관심 있는 대중이나 학생들이 참석하여 관람하고 수술 수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방된 극장과 같은 공간에서 수술이 이루어졌기에 당시 수술실을 수술 극장(operative theatr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실의 무균 개념이 생기면서 극장식의 수술실은 사라지고 지금의 폐쇄된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OT라는 용어보다는 OR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지만 수술실에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서 OT야말로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 실제로 폐쇄된 수술실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독립된 관람석이 구비된 그야말로 럭셔리한 OT가 나온다. 내가 OR보다 OT를 좋아하는 이유는 좁고 폐쇄적인 수술실이 아닌 우리 인생살이처럼 슬픔과 사랑,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수술실의 독특한 모습을 담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수술을 앞둔 환자를 마취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과거 병력, 현재 병력, 사회력 등을 파악하게 되는데 환자의 의무기록을 열심히 보다 보면 환자 인생의 한 조각과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된다. 또한, 수술실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많은 이야기들을 바라보면서 OT에서 목격한 일들을 글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들곤 했는데 아마도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작은 열망 때문인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집에서 뒹굴거리며 읽을 만한 책들을 찾다가 '읽어버린 동화'라는 우하 박 문하 선생님의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부산에서 작은 의원을 열고 그곳에서 진료를 보시면서 만난 환자분들과의 사연이 담긴 수필집을 쓰셨다. 그리고 얇고 작았던 그 책 한 권이 결국은 나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우하 선생님처럼 글을 쓰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결국 의사가 되었으나 내 꿈의 반쪽만 실현한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수련병원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전공의 교육과 관련하여 임상 논문들을 가끔 쓰기는 했으나 무언가를 놓치고 사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의 꿈으로부터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는 것을 어느 주말 아침에 문득 깨달았다. 나는 유명한 명의도 아니고 글재주도 딱히 있는 것 같지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일개의 봉직의다. 그러나 어릴 적 꾸었던 꿈을 그냥 꿈으로 묻어 두자니 너무도 아쉬워 무식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꼭 해야 할 일들만 하면서 꼬박 앉아 써 내려가기 시작하니 그동안 수술실에서의 기억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특히, 안타까운 사연들로 가슴 아팠던 환자들의 기억들과 회상에 글 쓰는 중간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약 30년간 마취통증의학과에서만 종사해오다 보니 숫자로 기억할 수 없는 꽤 많은 환자분의 마취를 담당해 온 것 같다. 대형 병원, 대학 병원에서만 일한 것이 아니어서 전공의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직접 마취한 환자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때로는 국적도 다양했던 환자들. 어떤 분들은 때로는 안타까워 가슴 아팠던 분들, 혹은 고마운 존재들로 유난히 생생하게 기억되는 분들이다. 그분들 중에는 현재 건강하게 생존해 계신 분도 계실 것이고 돌아가신 분들도 계신다. 그분들 모두의 평안함을 기원하며 혹 나의 기억과 기록이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끝으로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내가 경험했던 환자들의 의무 기록을 다시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쓴 글이 아닌 나의 개인적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그중에서 환자 개인이나 병원에 누가 될까 우려되는 부분은 조금씩 각색했으며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두고 싶다. 또한, 글 중에 가명조차도 혹여 환자에게 실례가 될까 싶어 그냥 무명으로 두고 글을 쓴다. 


 이제는 인터넷 덕분에 먼 나라에 있는 박물관 안의 명화들을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명화를 보다 보면 우리의 삶이 떠오르기에 미술에 대해 무식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찾아보고자 했다.    

                                         



제목: The Agnew Clinic (에그뉴 클리닉, Thomas Cowperthwait Eakins 작품, 1844-1916)  

 무균 수술, 무균 수술실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의 수술실의 모습으로 교육 목적으로 수술실이 작은 원형극장 모양을 하고 있다. 1889년, 펜실베이니아 의과 대학의 D. Hayes Agnew 박사의 은퇴를 기념하여 제자들이 의뢰하여 그린 작품. Philadelphia Museum of Art 소장, 출처: Wikipedia 




제목: The first operation under ether (에테르 마취를 이용한 첫 수술, Robert C. Hinckley 작품, 1893)    

1846년 10월, 치과의사인 William T.G. Morton이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에서 John C. Warren의 목 종양 제거 수술에 에테르 마취를 처음 사용한 것을 그린 그림. 

 Morton이 손에 들고 있는 유리병이 에테르 흡인기이며 안에 거즈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병원에서는 이 수술실을 ether dome이라 명하고 현재는 관광 명소로 남아 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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