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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두려운 아이

 -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4 화

 요즘 전공의 선생님들은 전공의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과거 우리가 거쳐 왔던 전공의 시절보다는 여러 면에서 나은 대우와 근무 환경을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전공의 기간 동안 배워야 하는 공부량도 많이 늘었고 또 전공의 시험의 자격을 얻기 위한 논문 작성 및 발표도 우리가 전공의 시절이었던 과거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또한, 작년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시험이 매우 어려웠고 유사 이래로 가장 낮은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률을 보이는 등 전문의가 되는 과정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논문 발표를 위해 마취과 학회지에 본인이 경험한 드문 케이스의 환자를 증례 보고를 투고하면 학회지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의 내용인 경우 전공의의 노력을 고려하여 게재 허가를 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증례 보고 논문으로는 희귀 케이스가 아닌 경우 학회지에 게재 허가를 받기도 매우 어려워졌고 영문으로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니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되고 있다.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 병원에서 전공의가 수련 과정 중 특이한 증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수술이나 마취의 다양성이 일반 대학 병원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50대 초반까지는 희귀 증례가 생기길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수련하고 있는 전공의의 1 년 차 때부터 해당 전공의의 임상 논문 자료를 미리 준비하고 연구에 참여하도록 하여 4 년 차가 되어 본인의 논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왔다. 그러다 보니 마취라는 업무뿐 아니라 논문 작성에도 늘 애를 써야 했는데 한 번은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전자 차트 500 개 이상을 반복하여 리뷰하다가 오른손에 카팔 터널 증후군(carpal turnel syndrome, 손목 관절 장애)이 온 적도 있었다.

 학회지에 보내서 게재 불가의 판정을 받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기에 근 10년 이상을 수련 과정에 있는 전공의들의 전문의 자격시험에 필요한 논문 만들기에 거의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가뭄 뒤에 단비가 내리듯 정형외과 환자 중에 매우 희귀 질환을 가진 환자가 수술 스케줄에 들어왔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 전공의 4년 차 선생님은 행운 아거나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전문의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곤 한다.

 이 전공의 선생님의 선임 선생님들의 경우는 그나마 내가 연구하고 있던 임상 연구 논문 몇 편이 있어 같이 참여시키면서 논문 점수가 해결되었으나 이 선생님의 경우 아직 발표 예정인 논문조차 없었기에 우리 과의 전문의들은 모두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증례는 매우 드물다 보니 아무리 까다로운 학회지라도 꼭 게재해 줄 증례였다. 수면과 관련한 희귀성 질환을 가진 소년이었는데 희귀 증례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우리 과 의국은 이 증례가 스케줄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경사 분위기였다고 솔직히 고백하겠다. 


 잠과 관련한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레데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이란 그림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명화이다. 아름답고 아슬아슬하기까지 한 잠자는 미녀와 그녀 주변에 작은 소품들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는 조금은 아찔한 그림이다. 죽음과 같은 잠을 자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당시 죽음과 같은 잠과 연결되어 평생을 살아온 그 소년이 떠오른다.


 17세의 고등학생이었고 골육종 수술이 예정된 환자였는데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했던 '선천성 중심성 저 호흡 증후군(congenical central hypoventilation syndrome)’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가진 환자였다. 이 질환에 대해 쉽게 설명하자면 잠을 자면 숨을 쉬지 않게 되는 질환이다. 물론 이 외에도 심장 질환, 자율 신경계 이상을 동반할 수 있으며 5만 명에서 20만 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질환이다. 가장 전형적인 증상은 이 학생처럼 태어나자마자 아기가 자면 파랗게 변하기에 놀란 부모들이 병원에 내원하게 되며 보통 기관절개술을 받고 수면 시에는 항상 장비가 대신 호흡을 도와주어야 하기에 보통 가정에 호흡을 담당하는 장비를 구비해 놓아야 한다. 


 이 학생 역시 생후 1달에 기관절개술을 받고 8세까지 기관절개술 부위로, 이후에는 얼굴에 마스크를 통해 수면 시마다 호흡을 담당하는 정비로 호흡을 조절해 주어야 했다. 아이는 졸거나 수면에 빠지면 호흡을 담당하는 중추가 기능을 상실하니 순간적으로라도 이를 파악하지 못하면 금방 저산소증으로 사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 학생의 어머니는 늘 아들 곁에서 아이가 잠자면 장비와 아들을 연결하여야 했고 중간에 점검까지 해야 했으니 어떻게 17년 세월을 보내셨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학생은 아기일 때 기관절개술 받으러 내원하고 8살에 기관절개술 부위를 봉합하기 위해 내원한 것 외에 특별히 아픈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의 호흡을 담당하는 장비를 관리하고 다루는 데 이미 호흡기 내과 전문의만큼 전문가라고 하니 역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은 '어머니'라고 하겠다.


 학생의 수술 당일 담당 마취과 전문의와 우리 전공의 4년 차 선생님은 희귀 질환을 가진 환자의 성공적인 마취와 더불어 성공적인 증례 보고를 위해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이 질환의 경우 진정제나 마취제에 취약하여 이러한 약제를 사용한 후 각성 상태로 회복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가능한 진정제, 전신마취제, 마약 제제는 사용하지 않고 부위 마취와 부위 진통 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수술실에 도착한 학생은 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를 지닌 미소년이었다. 17세라면 보통 수술실 들어오는 걸 겁내는 남학생들이 많은데 삶에 굴곡이 많은 아이답게 늠름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부위 마취나 기타 여러 가지 시술들이 많이 불편했을 텐데도 어찌나 모든 것을 잘 참아내던지... 


 나는 환자에 대한 호기심과 4년 차 전공의의 논문 걱정에 이 환자를 자주 가서 관찰하였다. 환자는 수술 중에도 약간 졸거나 진정 상태가 되면 무호흡에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여름이나 점심시간 후 식곤증으로 수업 시간에 참 잘 조는 학생이었다. 독서실이나 야간 자습실에서도 참 잘 졸았는데 그때마다 이런 무호흡이 온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학생은 맘대로 학교 수업 시간이나 버스에서도 졸지도 못할 것 아닌가? 이 학생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 이 학생의 어머니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갈지 상상이 되었다.      


 마취와 수술이 잘 진행이 되어 수술이 마무리되고 처음에 계획된 바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이송하여 환자의 호흡이며 상태를 의료진들이 관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환자는 회복실을 거쳐서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시고 호흡 치료의 전문가이신 환자의 어머니 곁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역시 수술 당일 이후 큰 문제없이 환자의 수술 부위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 퇴원하였다.     


 이후 우리 전공의 4년 차 선생님의 논문이 완성되고 드디어 학회지에 여러 번의 투고와 수정 끝에 게재 허가를 받았다. 전공의 한 명을 선발한 후 수련을 잘 시키고 논문도 발표하여 자격 있는 전문의로 양성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님들의 어려움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퇴근길에 마주치는 두 모자가 떠오른다. 나는 전철을 타러 가고 그 모자는 전철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들은 다운증후군의 전형적인 얼굴이고 그 어머니께서는 아이를 아마도 교육기관이나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 길인 것 같았다. 항상 아이의 팔에 팔짱을 끼고 한 걸음 앞서서 본인보다 큰 아이를 이끌면서 걸어오시곤 한다. 항상 같은 시간에 서로 그 길을 지나가다 보니 주중에는 거의 매일 보는 것 같다. 항상 바쁜 어머니께서는 마주 오면서도 나의 눈길과 마주친 적이 없는데 아마도 마음이 분주하신 탓인 것 같았다. 아들은 항상 앞보다는 옆을 바라보고 걷고 있고...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이다 보니 이런 경우 아이보다도 엄마를 먼저 보게 된다. 얼마나 힘드실까? 그 노곤함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세상의 다양한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키우시는 어머님들.. 


장하고 훌륭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제목: Flaming June (타오르는 6월, 프레데릭 레이턴 작품, 1895, 푸에르토리코 폰스 미술관 소장)    

 

투명한 오렌지 시폰 드레스를 입고 자고 있는 여인의 이름은 도로시 딘. 화가인 레이턴과 연인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프레데릭은 영국에서 남작이라는 칭호를 받은 다음날 협심증으로 사망한 비운의 화가이다. 오른편의 꽃은 협죽도라는 꽃으로 독성이 있어 작가 자신의 병으로 인한 영원한 잠, 즉 죽음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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