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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아기들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3 화

 인터넷 뉴스를 통해 러시아의 무너진 아파트에서 35시간 동안이나 생존해 있다가 구출된 11개월 된 아기의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아기는 동상, 뇌진탕, 다중 골절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구조원이 다가가자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수술실이나 신생아실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지 않은 아기들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산과나 신생아 수술에 참여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더구나 요즘은 출산율 감소로 인해 산부인과가 출산보다는 부인과 진료가 대부분인 상황이고 대형 병원이나 대학 병원에 가야 출산하는 산모들을 볼 수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요즘 수련받고 있는 마취과나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제왕절개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제왕절개술은 최근 몇 년 동안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장 마지막으로 이 수술실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그런 이유에서도 잊을 수 없지만 아마 수술실 식구들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아기가 보여준 신기한 생명력 때문이다.    


 산모는 임신 주수가 28주가 겨우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28주면 태아의 폐 기능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으므로 세상에 태어나 집중 치료를 받으면 생존이 80% 이상 가능하다고 한다. 태아가 이렇게 조기 출생해야 했던 이유는 순전히 태아의 엄마 때문이었으니, 엄마인 산모가 임신 중에 골육종이라는 암이 발견되어 하루라도 빨리 종양 제거술과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산부인과와 정형외과의 협의 끝에 아기가 태어나서 생존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지나자마자 제왕절개술로 아기를 출생시키고 동시에 종양 제거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산모가 수술실에 입실했을 때 그 수술 방은 수많은 의료진으로 가득 찼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집중 치료를 담당할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 제왕절개술을 집도할 산부인과 팀, 산모의 종양 제거술을 할 정형외과 팀, 마취를 담당할 마취과 팀 등 진료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이 모였다 그 들뿐 아니라 출산이라는 경이로운 수술이 워낙 희귀했던 상황이라 이를 보고 싶어 하는 다른 마취과 전공의들, 인턴들까지 모이니 우리 병원 수술실 중 가장 넓은 정형외과 수술 방이 비좁을 정도였다. 사실 나 또한 내가 담당한 환자가 아니었기에 굳이 그 수술 방에 갈 필요는 없었으나 수년 동안 경이로운 아기의 탄생을 본 적이 없다 보니 마취가 시작될 즈음에 저절로 나의 발길이 그 수술실로 향하였다.     


 드디어 마취 유도가 시작되고 제왕절개술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긴장된 침묵 속에 조용히 수술이 진행되었다. 제왕절개술 시 마취는 산모와 아기 모두를 고려하고 이루어지는데 산모에게 투여된 약제가 탯줄을 타고 아기에도 전달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마취 약제만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마취 유도 후 길어도 3-5 분 이내에 아기가 출생하여 탯줄을 겸자로 막아야 아기의 출생 후 상태가 좋기 때문에 마취 전 산모의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소독포를 덮고 집도의가 수술 부위를 절개할 메스를 든 후에 마취가 시작된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전신 마취되자마자 수술이 시작되었고 3분, 5분, 10분이 지나가고 있었으나 아기가 나오기 전 양수가 터지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입이 바짝 마르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수술이 워낙 까다로운 케이스였는지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까지 같이 참여하고 얼마 후 아기를 번쩍 들어 올리는 산부인과 집도의 선생님의 팔이 보였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경우 탯줄을 자르고 아기의 입안에 든 양수나 기타 분비물, 태변 등을 흡인하고 아기의 엉덩이나 등에 자극을 주어 아기를 깨우면 건강하게 출생한 아기들은 즉각적으로 그 아름다운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이 아기는 흡인과 자극을 주어도 반응이 없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이 재빨리 아기를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께 넘겨주자 전문의 선생님은 아기에게 마스크 및 앰브백으로 산소를 주면서 자극을 주고 입안을 흡인하였으나 아기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출산 시 아기의 상태 중 심박 수, 호흡 정도, 근육 긴장도, 피부색, 자극에 대한 반응을 점수화하는 아프가 점수(apgar score)를 출생 후 1분, 5분에 정하게 되는 데 아기의 아프가 점수는 최하였다. 결국, 즉각적으로 아기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고 담당 마취과 선생님께서 아기의 기도 내관 삽입을 나에게 부탁하여 기도 내관 삽입을 시작하였다.     

 

 내 나이 오십 대 중반, 이미 노안이 온 상태였고 이런 신생아에게 기도 내관 삽입을 해 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목에 걸고 있던 돋보기를 끼고 숨도 죽이고 기도 내관 삽입을 하였다. 기도 내관 삽입 후에는 앰브 백으로 아기의 호흡을 유지하였고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께서 심장 마사지며 에피네프린 등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약제들을 투여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기의 피부색은 아기 특유의 선홍색이 아닌 잿빛이었다.     


 우리는 아기를 신생아실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계속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아기를 신생아실로 옮겼다. 내가 그때까지도 계속 아기의 호흡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신생아실까지 따라가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구호를 외쳤다. 

‘아가야 움직이렴... 아가야! 힘내. 아가야! 힘내.’     


 신생아실에 도착한 후에도 한참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니 아기의 피부색이 조금씩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여전히 아기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묵묵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의료진들은 모두 같은 구호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아가야!, 움직이렴... 힘내, 아가야!’ 그런데 갑자기 아기의 손가락과 팔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리고 숨을 쉬려고 하는 가슴의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신생아실 도착 후 얼마나 지난 후였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기가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고 우리에게 사인(sign)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께서는 신생아의 집중 치료를 위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시키기 위한 연락을 취했다. 아무래도 암 전문 병원보다는 나은 진료를 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곧 아기를 위한 앰뷸런스가 준비되어 그동안 소중히 쥐고 있던 앰브백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선생님에게 넘겨주면서 나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다음날 우리 과 전공의 4년 차 선생님이 전해준 바로는 아기가 이송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고는 있는데 간 기능 수치가 매우 높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기의 소생과 건강을 빌었으나 워낙 태어났을 때부터 반응을 보이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기에 그 정도만으로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 아기가 그 대학 병원에서 잘 치료받고 퇴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문득 우리 집 둘째 아이가 떠올랐는데 그 아이도 쌍둥이로 태어나 1.8 킬로그램의 미숙아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다. 출생 후 처음 중환자실에서 만난 둘째는 조그마하다 못해 쪼글쪼글한 외계인 모습이었고 콧줄에, 혈관이 없어 중심 정맥 로를 삽관한 상태였다. 


 출산 후 4일이 지나 나와 쌍둥이 중 첫째 아이와 퇴원하면서 둘째를 신생아 중환자실에 놔두고 나오는 것이 안타까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잘 나오지 않는 모유 10 밀리리터를 유즙기로 억지로 짜 모아 매일 아이 아빠가 중환자실에 가져 다 주었는데 2 밀리리터도 소화시키지 못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퇴원 후에도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 매끼 2시간을 걸려 음식을 먹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토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쇠약했던 아이가 이젠 대입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이고 이틀 후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다. 나보다도 훨씬 커져서 엄마인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곤 한다.    


 세상의 아기들은 모두 신비한 존재들이며 생명력 또한 우리 의료인들이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 신비로운 존재들이 요즘 세상에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명화 속 아기 중 가장 신비한 모습을 가진 아기는 단연 라페엘로의 ‘그란두카의 성모 마리아’에 나오는 아기 예수일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인 라파엘로는 성모자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먼저 그린 이 성모자상을 자세히 보면 아기 예수의 신비하다 못해 성숙한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아기라고 보기에는 눈빛이나 표정이 너무도 남다르고 우량아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라 그야말로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애늙은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데 상대적으로 성모 마리아는 젊고 우아하고 온화한 표정이다. 라파엘로의 다른 성모자상의 사랑스러운 아기들에 비해 유독 아기 예수를 다르게 그린 점이 무척 궁금하여 르네상스 시대로 날아가 여쭈어 보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천진한 표정의 아기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화가 나름 위대한 아기를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제목: Madonna del Granduca (그란두카의 성모 마리아, 1505, 산치오 라파엘로 작품, 피렌체의 피터 미

 술관 소장)    


 성모의 푸른 옷은 천국의 여왕을, 안의 붉은 옷은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도가 극히 단순하고 배경이 없어 어두움 속에서 성모와 아기가 부상하는 듯한 두 인물의 종교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라파엘로는 교회의 화가였으나 성모자상을 통해 모성의 사랑을 나타내고자 의도했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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