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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영접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2 화

 어느 날 가족이나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암이란 그 종류에 따라 예후가 매우 다양하지만 어찌 되었건 암이란 진단을 받은 후 당사자나 가족 모두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것이다.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암흑과 같은 긴 터널 안에서 완치라는 불빛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나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설치 미술가이자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제임스 터렐 이란 작가가 있다. 우리나라의 원주 뮤지움 산에 그의 작품이 실제로 전시되어있는데 계단이 있고 계단 끝의 빛이 나오는 곳이 관람객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시장의 입구인 구조라고 하며 관람객들은 명상을 체험하게 된다고 한다. 퀘이커 교도인 그는 빛과 공간을 이용하여 내면의 빛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빛이란 인간의 생명의 줄기’라고 표현할 만큼 빛에 몰입한 작가이다. 나는 뮤지움 산에 아직 가보지 못했고 인터넷으로만 그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가서 본다면 빛을 영접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삶의 어두운 면과 절망감을 느낄 때 나는 가끔 인터넷으로라도 그의 작품을 감상하곤 한다. 언젠가는 원주든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이든 방문하여 그의 작품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암 환우 분들이나 가족 분들에게도 여행지로 추천드리고 싶다.    


 암의 원인은 무엇일까? 흡연이나 폭음과 같은 나쁜 습관, 식습관, 스트레스, 유전적인 면, 등 다양한 원인들이 밝혀져 왔다. 나는 암 전문 병원에서 종사하는 의사이지만, 암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마취과가 암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요구하는 분야가 아닌 관계로 다른 과에서 암을 연구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에 비교하면 우리는 주로 수술적인 면을 고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마취과에서도 마취와 관련된 행위 중 암 수술 중에 미칠 수 있는 요인들, 즉 수혈, 환자의 체온, 마취 약제, 통증 관리, 등이 수술 중 환자의 면역력 감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또한, 환자의 고유한 면역력이 감소될수록 수술 과정에서 암세포의 전이가 일어나기 쉽다는 이론이 거론되면서 마취 중 환자의 면역력 유지를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마취과 의사들은 암에 관하여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 많은 암 환자를 마취해 오다 보니 다른 마취과 의사들보다는 암 환자의 예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는 이전에 암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같은 암의 재발이나 혹은 다른 암의 발병으로 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오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마취 약제와 암의 재발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시 내원한 환자분 중에 정말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되었는데 ㅇㅇ의 경우가 그러했다. 암을 앓기에는 너무도 어린 환자였기에...


 ㅇㅇ가 처음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의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한 살 미만이었던 같다. 양쪽 눈에 발생한 악성 종양으로 종양이 심한 쪽 안구를 적출하였고 증상이 덜한 눈은 여러 가지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를 받아 안구 적출 수술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종양이 남아 있는 안구를 한 달마다 검사해야 했는데 환자가 너무 어린 관계로 그 검사 날마다 수술실에 와서 전신마취를 받아야 했으니 어린 환자에게는 안구 검사가 보통 어른들이 받는 그런 검사가 아닌 수술에 해당하는 검사였다.     


 처음에 수술실에 입실할 때는 너무 어렸기에 엄마와의 분리불안도 없어 울지도 않고 그냥 마취과 의사가 안아 수술실에 입실하면 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점차 성장하여 한 살이 넘어가면서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몹시 거부하고 어느 정도 지나서는 수술실 입구에 들어서기만 하면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도 결국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늘 ㅇㅇ의 어머니께서 항상 수술실 입실 시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수술실에 오다 보니 ㅇㅇ나 그 어머니나 수술실 유명인사가 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오면 늘 어머니께서 아이를 안아주며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곤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나오는 울음과 안타까움을 몰래 삼키곤 했다. 


 나는 그 해에 병원에서 어떤 포상으로 소액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던 공돈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에 내가 개인적으로 쓰기에는 부담되어 병원 내 기부를 담당하는 부서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기부 시 환자를 지정할 수 있다기에 그때 갑자기 ㅇㅇ가 생각이 나서 그 환자의 진료비에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였다.     


 ㅇㅇ는 한 달이 지나 어김없이 수술실에 울면서 들어왔고 회복실에서는 역시나 어머님께서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셨다. ㅇㅇ가 병실로 간 후 회복실 간호사가 나에게 작은 쪽지 하나를 전달해 주었다. 펴보니 ㅇㅇ의 어머님이 쓰신 쪽지였다. 내용은 감사하다는 내용과 앞으로 더 열심히 아이를 키우겠다는 등등의 내용이었다. 얼마 후 ㅇㅇ는 더 이상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쾌유되었는지 아니면 예후가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ㅇㅇ를 점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수술 스케줄 상에 ㅇㅇ랑 똑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십 대 소년이 정형외과에서 골육종(osteosarcoma, 뼈에 생긴 암) 수술을 받을 것으로 올라와 있었다. 흔한 이름이 아니었지만 설마 같은 아이는 아니겠지 하고는 잊어버렸는데... 수술 당일 그 방의 마취를 보조하던 간호사가 하는 말이 그 환자가 십 년 전 우리의 단골손님이었던 그 ㅇㅇ라는 것이었다. 나는 ㅇㅇ가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아마도 예후가 매우 나빠져 더 이상 검사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병을 잘 이겨내고 중학교까지 입학한 것이었다. 안구의 악성 종양이 양쪽 눈에 발생한 환자 중 가장 치료가 잘 된 환자의 예라고 안과 선생님께 나중에 전해 들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그 아이가 다시 골육종이라는 암이 발병한 것이었다.     


 극히 드물지만 이렇게 안구의 종양이 있었던 아이들 중에 치료 후 성장하면서 골육종으로 다시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어렸을 때 받았던 방사선 치료로 인해 이차적으로 두개골에 골육종이 발생하는 경우는 이해가 되는데 ㅇㅇ이 경우는 다리에 생긴 골육종이었다. 우리 병원에 많은 골육종 환자를 마취해 본 경험으로 성장기 아이들에게 잘 생기는 골육종이라는 암이야말로 정말로 치사하고 얄미운 종양이었다. 수술을 잘 받고 항암 치료까지 해도 폐로의 전이가 왜 이리 잘 발생하는지 그리고 폐 수술을 하면 또 금방 재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ㅇㅇ와 어머니가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의 한 복판에 놓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수술이 끝난 후 아이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여 회복실에 가보니 유아였을 때의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중학생 연령의 다른 아이보다 훨씬 작은 아이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수많은 힘든 과정을 겪었던 아이라기에는 너무도 밝고 예쁘게 성장해 있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혼자 회복실에 늠름히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회복실에서 마취에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병실로 이송원 님과 같이 수술실 입구를 떠나는 아이를 멀찍이 따라가 보았다. 아이의 침대가 수술실 입구 자동문에서 나오자 한 어머니가 침대에 다가왔다. ㅇㅇ의 어머니셨다. 아이가 한 살 미만일 때 보았을 때는 너무나 젊은 어머니셨는데 이제 어느덧 그녀의 머리에도 흰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나타났다. 나는 서로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왠지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모퉁이에 숨어 그들 모자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 자신이 그녀를 아는 척하면서 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힘든 상황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들 모자는 잘 견디어 낼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뒷모습을 향하여 ㅇㅇ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 아이는 그 후 한 번쯤 더 수술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왔고 그 이후 아직까지는 수술실에 들어온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본인이 진료 목적으로 맡게 되는 환자가 아닌 경우 진료 기록을 의료진도 볼 수 없는 규정이 있기에 나는 그 아이의 진료 기록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ㅇㅇ가 골육종이 치료가 잘 되고 재발이 없어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는 건지 아니면 상태가 악화되어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더 최악의 상황에 이미 도달했는지 모른다. 


 다만, 늘 기원한다. 골육종이 잘 치료되어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기를... 그들이 제임스 터렐의 긴 터널의 끝, 환한 빛에 도달했기를....



  제목: Akhob (아크홉, 제임스 터렐 작품, 2013)    


 제임스 터렐은 미국의 설치 미술가로 빛의 미술가로 불리는 작가이다. 그는 빛과 지각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빛과 우주와 관련한 설치 미술을 창작해 왔는데 이 아크홉은 루이비통의 협업으로 루이뷔통 라스베이거스 매종 시티 센터에 설치된 작품이다. 작가는 1977년 세계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대지 미술 프로젝트인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는데 애리조나의 로덴 분화구를 매입하여 분화구를 천체의 움직임에 맞게 방위를 계산하여 조각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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