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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그녀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1화

 너무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황홀경에 빠져 호흡곤란, 위경련, 현기증, 전신 마비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작가인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라는 명화를 보고 호흡곤란과 다리에 마비가 오는 증상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증후군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누오바 병원에는 해마다 이러한 증후군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있다고 하며 19세기 이후부터 약 100여 명 이상의 환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명작이 많이 보유되어 있는 피렌체에서 1979년에 이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였는데 환자 중 20-40대가 많았고 혼자, 혹은 소규모의 여행객들 사이에 나타났다고 한다. 나 또한 명화 보는 것을 좋아하여 몇 년 전 피렌체에 갔을 때 꽤 많은 명화들을 보러 다녔으나 그러한 신드롬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때 내 나이가 증후군을 느끼기에는 늙은 50대여서 인가 보다.    


 스탕달을 황홀에 빠지게 만든 아름다운 소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1572-1599)였다. 16년의 짧고 불행한 생을 살다 간 소녀였으나 그 아름다움으로 당시에도 매우 유명하였으며 일명 ‘너무나 아름다워 죽은 소녀’라고 불렸다고 한다. 귀족의 딸로 태어났으나 몹쓸 친아버지에 의해 계속적인 능욕을 당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기에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마는데 당시 교황이 사형 선고를 내려 어쩔 수 없이 사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소녀는 슬프고 여린 모습으로 나 또한 이렇게 아름다웠으나 짧은 생을 살다 간 여인을 알기에 이 그림을 보다 보면 그녀가 생각이 난다.    


 그녀는 꽃보다 아름다울 나이인 24살이었다. 그녀의 찬란하게 빛났던 미래가 악성 종양에 하루아침에 어두워질 줄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장비나 의료인의 기술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병원에서 하복부에 있는 악성 종양을 수술로 제거할 수 없다는 판정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환자나 가족들도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에 왔을 것이다. 또한, 우리 병원의 외과 선생님과 흉부외과 선생님들 역시 그녀를 보는 순간 너무도 안타까워 어찌 보면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수술을 시도하기로 결정하였을 것이다. 솔직히 이에 대해 내가 직접 본 바는 없었지만 우리나라 빅 파이브 병원에서 수술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들었다는 과거력이 환자의 의무 기록에 나와 있었다.     


 일반 외과에서 수술 전날부터 종양이 큰 혈관들과 엉켜있고 크기도 커서 엄청난 출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마취통증의학과(이하는 간단하게 마취과로 표기하기로 함)에 준 상태였다. 마취과 의사로서 이러한 환자를 맡게 되면 심적 부담이 많이 되어 수술 전날 밤에는 이런저런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 종교가 있는 선생님들은 신께 기도드릴 텐데 나는 무교였던 상황이라 딱히 부탁드릴 신도 없었다.    


 나의 머릿속에 많은 상념이 가득 찬 채 그녀를 수술실 입구에서 만났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며칠 전 병원 1층 로비에서 병원복을 입고 산책을 하던 한 아가씨가 떠올랐다. 출근길 아침이었는데 병원복을 입고도 그렇게 아름답기가 쉽지 않아 한참을 쳐다보았던 환자였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녀를 쳐다보는 것으로 나만 느끼는 아름다움은 아닌 것 같았다. 바로 그 아가씨였기에 나는 가슴이 시려 오는 것을 느꼈다. 하얗고 뽀얀 피부, 커다란 눈, 빨간 입술, 그 젊음만으로도 아름다울 진데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목소리도 맑고 청아하여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환자분들을 만나면 마취과 의사는 미안함부터 든다. 이런 아름다운 몸에 마취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관을 삽입해야 할 입장이어서 왠지 절대자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훼손시키는 죄송함이랄까 죄책감이 들곤 했다.


“제가 환자분의 마취 담당의입니다. 마취는 처음이시지요?”


“네. 사실 좀 무섭네요.”


그녀가 씽긋 웃으며 대답한다. 미소마저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가 마취를 시작하기 전 나에게 한 말은 ‘잘 부탁드려요.’였다.      


 아침 8시 반부터 시작된 수술은 점심 전까진 별 무리 없이 진행이 잘 되고 있었다. 집도를 맡은 외과 선생님이 위험성이 높은 수술인 만큼 살얼음 위를 걷듯 수술을 조심스럽게 진행하셔서 수술의 진도는 매우 느린 편이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수술실 안에는 수술 시야에서 나는 흡인 소리와 수술기구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여오고 있었다. 종양과 혈관의 조심스러운 박리를 바라보면서 나는 마치 지나가기로 예정되어있는 토네이도가 비켜 가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수술이 진행될수록 예상했던 출혈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 시간 만에 수십 개의 농축 적혈구가 수혈되어야 할 정도의 심한 출혈이었다. 출혈이 심한 경우 가능한 한 빨리 종양을 제거하고 집중적인 지혈을 해야 환자의 결과가 좋은데 예상대로 종양의 박리 및 제거는 매우 어려웠다. 나는 수술시야의 출혈과 종양의 상태를 보기 위해 발판 위에 올라가서 계속 관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복부에 커다란 악마 덩어리가 그녀의 생명의 끈을 조율하는 듯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도 수술에 동참하여 종양의 박리 및 지혈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복부의 큰 동, 정맥인 장골 동, 정맥이 종양과 밀접하게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종양 자체를 먹여 살리던 혈관도 많았고 그 많은 혈관과 종양이 엉켜있었으며 혈관 중 동맥과 정맥이 서로 비정상적인 해부학적 연결(동 정맥 기형)이 되어있어 외과적으로 지혈하기엔 역부족인 형태로 수많은 곳에서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혈액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혈액제제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왔다. 농축 적혈구 오십 개 넘게 수혈하고 있을 때였다. 최근에 들어서서 헌혈의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혈액원에서 각 병원에 지급하는 혈액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결국, 대량 수혈이 필요한 시점에서 각 병원에 보유하고 있는 혈액으로는 모자라는 경우가 있어 급하게 혈액원에 혈액을 사러 가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혈액이 확보될 때까지 마취과 의사는 수술 중단과 지혈을 외과 집도의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 혈액이 올 때까지 수술을 중단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수혈을 너무 많이 했고요!”


“근데 출혈 부위를 압박하기도 쉽진 않아요. 여기저기 울혈처럼 출혈이 올라오고 있거든요.” 


그러나 일단은 혈액이 공급될 때까지 수술 부위를 최대한 압박하여 출혈을 막고 기다리기로 논의하였다. 많은 출혈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출혈성 쇼크는 극복이 되고 있었다.     


 대량 출혈과 수혈 때문에 마취과에서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기에 다른 수술방의 인력을 최소로 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이 이 환자분에게 배치되었다. 우리 과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동으로 대량 수혈이 되는 기계 3 대 모두를 사용해서 분당 몇 리터씩 혈액을 그녀에게 수혈을 하고 있었다. 


 혈액은행에서 혈액제제가 도착하고 수술실로 혈액이 도착하자마자 다시 수술이 진행되었다. 일단은 수술의 진행보다는 출혈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어느덧 우리는 농축 적혈구 100개째를 그녀에게 수혈하고 있었다. 보통 체격인 사람의 체내 혈액량이 약 5-7 리터라고 따질 때 환자의 혈액을 약 7,8번 이상 다른 사람들의 혈액으로 바꾸길 반복한 꼴이 된다. 그러니 우리 혈액 내에 존재하는 모든 혈액응고에 관여하는 요소들이 다 엉망이 되었기에 출혈을 줄이기 위해 혈액 응고에 필요한 신선 동결 혈장, 혈소판도 같이 투여하고는 있었으나 출혈과 수혈이 반복되는 사이 서서히 그녀의 몸은 미만성 혈관 내 응고 장애 (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opathy, DIC)라는 지혈 기능 장애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일단 DIC에 빠진 환자의 경우 수술적 처치로 지혈되기란 쉽지 않아 외과 집도의에게 지혈을 위한 다른 방도를 상의하였다.


“선생님. 혈압이 불안정해요. 아마도 환자분이 DIC 상태인 것 같아요. 일단 복부를 거즈로 패킹하고 봉합하고 중환자실로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근데 패킹해도 출혈이 줄 것 같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혈관에서 나는 출혈인 상태라...” 


수혈된 적혈구 농축액이 150 개가 넘어가면서 결국 그녀의 혈압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고 엄청난 출혈이 발생하면서 수술 부위에서 출혈하는 혈액을 모으는 8 리터 사이즈의 병들이 그녀의 혈액으로 가득 차기를 반복하였다. 


 얼마 후 그녀의 심장은 느려지더니 심실세동이 발생하였고 수술방의 모든 의료진들은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출혈로 인한 심정지시 심폐소생술은 그 출혈이 멈추지 않는 한 의미 없다는 것을... 그러나 너무도 젊은 환자이었기에 우리는 심폐소생술을 한 시간 넘게 계속하였다. 


 집도한 외과 선생님께서 심한 출혈이 발생하면서부터 환자의 위급한 상황을 보호자에게 설명한 상태였으나 다시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환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마취과를 선택한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적어도 우리가 직접 환자의 사망을 보호자 앞에서 선언할 일은 없으니... 아무것도 몰라서 겁도 별로 없었던 20대 시절에도 이런 상황은 자신이 없었던 걸까?    

 그녀의 심전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 사실 나는 수혈과 혈압 상승제 투여에 정신이 없었던 상태라 심적으로 동요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되고 시간이 가면서 점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면서부터는 정신이 멍해지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절망감이 들어서였던 같다.    


 보호자들에게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에 대한 설명과 소생술 중단을 허락받고 중단하고 나니 그동안 심폐소생술로 뛰는 듯이 보였던 심전도의 심장 리듬은 그녀의 몸에 심전도를 붙이기 이전의 모양새인 직선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리는 표식처럼... 절대자의 아름다운 걸작이었던 그녀는 다시 절대자의 곁으로 떠난 뒤였다.    


 외과 선생님들은 그녀의 개복된 배를 정성껏 봉합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고 있는 여러 가지 관들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시신을 관에 넣기 전 닦아내는 작업을 하듯 그녀의 몸에 묻어있던 혈액 덩어리들, 소독 액들을 닦아내었다. 그녀는 출혈로 인해 몸 안에 혈액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에 마치 얼음공주처럼 투명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흔들어 깨우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를 우리는 중환자실 이동카로 조심스럽게 옮기고 중환자실로 이송하였다. 수술실 입구 자동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오열하는 젊은 여성이 달려와 그녀의 이름을 재차 불렀다. 


"oo야, 눈 떠봐, 제발 눈 좀 떠봐... 흑흑" 그 여인이 계속 무언가를 말하면서 따라왔으나 지금은 정확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따라오시면서 그냥 흐느끼기만 하셨다. 5분밖에 안 걸리는 중환자실이 그 당시에는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중환자실에 도착하여 우리는 환자를 중환자실 침실로 옮기고 여러 생체 감시 장치들을 부착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그녀의 심장이 다시 뛰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희망을 잠시 품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동안 그 환자에 대한 기억 때문에 괴로웠다. 마취과 의사로서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는지... 혹시 내가 다른 방법으로 해서 그녀가 소생할 혹은 사망으로 이르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까 그 날의 일을 되새김질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지라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괴로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는 있었으나 그녀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 아름다웠던 얼굴과 ‘잘 부탁드립니다’ 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눈과 귀에 선하다

.

그녀의 명복과 남은 가족의 평안함을 빕니다.         




                                       

제목: Portrait of Beatrice Cenci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 귀도 레니 혹은, 엘리자벳 시라니 작품으로 추정, 1599, 로마 고 예술 국립 박물관 소장)    

베아트리체 첸치는 귀족가의 자녀로 한때 절세 미녀로 유명하였으나 자신을 능욕한 아버지를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겨우 방년 16살이었다고 한다. 사형장에는 그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뒤를 돌아본 모습을 보고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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