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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질 이들을 위하여

  - 세상 속으로 1 화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1920년에 창간을 시작한 신문사에 오랫동안 근무하셨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에 다른 것들은 부족한 것이 참으로 많았으나 신문과 잡지는 집안에 넘쳐나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성장한 후, 어느 순간부터 신문과 뉴스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 형제들에게 신문을 꼭 읽으라고 강조하셨건만 우리들은 그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약한 나에게 너무도 우울한 이야기뿐이었던지라 뉴스와 신문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나의 반려자도 신문을 멀리하고 인터넷 뉴스만 클릭해서 주요 내용만 보는 듯하였다. 아이들 어릴 때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거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모르고 살다가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부터 가끔 인터넷 뉴스를 보고는 하는데 요즘은 아이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며칠 전 작은 아이가 연예인인 구하라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집에서 연예인 소식통인 작은 아이말로는 전에도 구하라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공(?)하였다고 말해주는데....


 전에 헬스장의 러닝머신 앞에 달려있는 TV에서 연예인 집을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구하라 집에 서양 아가씨들이 방문하여 같이 며칠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구하라라는 연예인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착하구나라고 생각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젊은 연예인들 대부분을 모르기에 얼마 전에 사망했다고 하는 설리라는 연예인 이야기도 들은 바가 있으나 사실 그 고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젊은 나이에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구하라의 집도 보고 그녀의 생전의 모습을 보아서 인지 가슴이 많이 아파왔다.


 한창나이인 데다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한류스타에 어린 나이에 재력도 갖추고 더구나 너무나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그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터넷으로 그녀에 대해 찾아보니 전 남자 친구와의 안 좋았던 일들, 악플에 힘들어했던 과거, 친구인 연예인의 자살 등의 이야기들이 나와있었다. 그 일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세상의 이목과 사랑을 받고 있는 순간에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지....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닌 탓에 알 수가 없다.


 나의 지인 중에 가족이 자살하고 난 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자살한 경우 남아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처는 전쟁을 겪은 것에 비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자살한 사람 뒤에 남겨진 유가족 들 즉, 자살 생존자 (suicide survivor)들은 남들에게 가족의 죽음을 말하기도 어렵고 자신이 힘든 상황임을 밝힐 수도 없기에 더욱더 힘들 수밖에 없다. 나의 지인 역시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수년이 지났음에도 평소에 환한 미소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삶에 대해 의욕도 많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는데 가족을 잃은 이후 삶의 모든 에너지와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잃은 가족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머릿속에 남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주변에서 얼마나 가족들이 무심했으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놔두었겠냐는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숨을 쉬고 억지로 의무감에 살아가고는 있으나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삶이었다. 그러기에 자살 생존자의 자살률이 일반인들에 비해 매우 높아 잠재적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오늘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너무나 힘든 사람이 이 지구에 있다면, 딱 한 번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주기를, 남아 있을 그 사람들의 고통을 꼭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든다.


 며칠 전 골육종(osteosarcoma, 뼈에 생기는 암)이 폐로 전이가 되어 폐 수술을 받게 된 30대 초반의 여성을 마취하고 수술 종료 후 중환자실로 모시고 가게 되었다. 골육종이 워낙 폐로 전이가 잘 되어 폐 수술만 10번 가까이 받았던 환자분인지라 폐속도 유착이 너무나 심하여 수술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 자체도 쉽지가 않았다. 폐로의 전이된 종양이 거의 모래가루처럼 폐에 퍼져 있어서 모든 전이 부위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종양을 제거할 수가 없었다. 환자분의 수술은 정규 수술 시간을 훌쩍 넘어 다른 정규 수술들이 모두 끝나고 난 후에야 종료되어 보호자 대기실에는 그 환자분의 가족분만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수술이 큰 무리 없이 잘 종료되어 환자분을 중환자실로 이송하고 중환자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환자분의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얼굴을 감싸고 중환자실 앞에서 오열을 하고 계셨다. 딸의 고통과 암울한 예후를 집도의에게 들은 직 후였기에 슬픈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환자의 예후가 예상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옆에 앉아 같이 울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복도를 걸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환자분은 얼마나 자신의 생명줄을 놓고 싶은 순간이 그동안 많았을까? 끝없이 반복되는 재발로 인한 연이은 수술로 대부분의 일상이 고통 속이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삶을 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걸까? 그녀 옆에서 슬퍼하는 부모님이 그녀의  시야안에 늘 자리 잡고 있었기에 차마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이기 어려웠던 걸까?


 내가 그런 입장이었다면 과연 그녀처럼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을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에 그녀가 위대해 보였다. 나 또한 일상에서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살면 뭐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듯 삶이란 고통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을 부여잡고 쓰레기 더미를 뒤집고 다니는 어르신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 삶일지라도 그분들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시는 위대한 분들이심을 그분들이 아시길 간절히 바라본다.


 오늘도 조조할인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전철을 갈아타고 직장으로 향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린다. 삶은 고통일 수 있으나 이런 삶들도 위대할 수 있다고... 그러니 이 삶의 끈을 잡고 열심히 살아가자고...


 황금빛을 그림에 사용하여 특이한 분위기를 표현해 온 구스타프 클림트가 사망하기 2 년 전에 완성한 ‘죽음과 삶’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게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이 아기를 행복하고 안고 있는 모습과 그 옆의 작은 소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해골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해골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다양한 모습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생명을 호시탐탐 누리며 미소 짓고 있는 이유는 뭘까?  굳이 자신이 쥐고 있는 방망이를 쓰지 않아도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 Death and Life (죽음과 삶,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1915, 비엔나 레오폴드 뮤지움 소장)   

 

 황금빛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말기 작품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표현한 이 작품을 클림트 자신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겼다. 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60세가 되기 전 뇌출혈로 사망한 것에 대해 자신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고 하며 그의 예상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작품을 작업해가는 초기에는 클림트 스타일로 황금색 바탕으로 시작하였다가 화가 자신의 심리적인 상황을 반영한 듯 초록빛이 도는 검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출처: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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