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스스로 거리두기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참 착실히 우리나라 연평균 독서량을 까먹었다. 그때 책을 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책에 있는 지식은 최신의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서의 목적을 정보 획득에 한정 짓는다면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정보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깨달을 때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지금 책은 내 인생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은 책만의 매력이 있다. 책 속의 공간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다. 작가가 던진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기도 한다. 영상으로 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글의 역할은 존재한다.
책은 연료가 되어준다. 내 생각에, 삶에 발전의 여지를 제공한다. 작가의 생각에 감탄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며 그들의 말을 적어두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써먹곤 마음속으로 뿌듯해하기도 한다.
책은 쉼표도 되어준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야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정지는 아니지만 생각과 고민은 잠시 내려두고 책과 마주한다. 그들은 그렇게 내 일상의 틈새를 풍요롭게 채워 준다. 인생의 문장 사이사이를 의미 있게 채워준다.
책이 내 삶의 일부분을 채워준 덕분에 어느 하루는 서양의 철학자처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하루는 살면서 고민 따위는 해본 적 없는 주인공처럼 결정하기도 했다. 작가가 남긴 그들의 모습 그리고 내가 읽고 느낀 그들의 모습으로 물든다.
물론 독서에 대한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권하고 싶은 마음이 내 지적 허영심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들이 책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쉽다. 일단 시도해 보고 책과 맞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거리를 두는 방법도 있다. 그대로 거리를 둘지, 나중에 돌고 돌아 책을 다시 잡게 될지는 이제 그들의 몫이다.
그래서 아침 독서 시간을 정했다. 등교해서 1교시 시작 전까지 다 함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아침 독서 시간은 학생들의 등교 시간마다 차이가 난다. 우리 반 친구들은 늦게 등교하는 편이라 평균적으로 10분 정도 아침 독서 시간을 가지는 것 같다. 되도록 자율적으로 읽도록 한다. 정말 책을 읽기 싫은 친구들 중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교과서를 뒤적이는 친구들도 보인다.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되도록 용인해 주고 있다.
나는 강요 대신에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독서 시간에 나도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반에 가장 일찍 오는 사람은 나다. 교실에 들어왔을 때 먼저 온 사람들이 하는 일이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이 할 행동에 영향을 준다. 따로 통계나 논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상 그렇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독서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오늘의 경험이 언제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들이 오늘의 할 일을 쓸 때 혹은 기차에서 할 일을 고민할 때 책도 그들의 선택지 중에 하나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