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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Oct 02. 2022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우리 반에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몸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을 좋아한다. 이야기하기, 장난치기, 호기심 가지기 등등 세상에 즐거운 것이 너무 많다고 한다. 수업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말하는 것, 장난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본인 말로는 참기가 힘들단다. 그래서 가끔은 진정시키다 수업시간이 다 가기도 한다.      


그런 친구가 오늘 아파서 조퇴를 했다. 교실이 허전해진 기분이다.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친구와 몸 쓰는 장난을 하지 말라고,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일이 줄었다. 그 말들의 대주주가 사라지니 거의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얌전해진 듯했다. 어색하고도 허전한 오후 시간을 맞이했다.     


먼저 나서서 대답하는 친구가 집에 갔다. 수업시간도 한결 조용해졌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좋게 말해서 차분한 것이지 수업에 생기가 없어졌다. 앞장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대답을 하는 학생이 없어지니 장군을 잃은 병사들처럼 학생들도 우왕좌왕하는 듯했다.     


고학년들 수업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나는 사춘기다!’하고 온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대답을 잘 안 하고 수업에 호응이 별로 없다. 물론 본인들이 흥미를 느끼는 활동에는 잘 참여를 하지만, 평상시에는 여러 번 물어봐야 대답을 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오늘 조퇴한 친구는 그런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언제든지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수업에 관련 있든 없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학생이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보다는, 관련이 없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 했다. 내일 학교에 오면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일 그 친구가 복도를 뛰면 말리고, 수업시간에 딴 소리를 하면 다시 집중시키고, 다른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왜 안되는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학생의 역할이고, 알려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내일은 나도 그 친구도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반 친구들이 별일 없이 즐겁게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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