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것은 참 피곤하다. 물론 그런 사람과 가까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 있다. 직장동료나 가족 구성원과 맞지 않을 때가 그렇다.
나에게는 한 가지 상황이 더 추가된다. 반에 맞지 않는 학생이 있는 경우이다. 그럴 때 나는 더욱 신중해진다. 내가 불편함을 느낀 경우 상대방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이기 전에 나도 사람이다.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가 학생들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매년 무작위로 몇십 명씩 만나다 보면,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가끔씩 극단적으로 결이 다른 학생도 존재한다. 나는 그들과 1년을 지내야 한다.
군대도 비슷했다. 그곳에서는 무작위로 몇십 명씩 만나서 더 오랜 기간을 불평등한 관계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의 상황이 더 낫긴 하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할 말 많은 곳이지만, 그럴 때는 군대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만의 처세술이 생겼다. 첫 번째 방법은 흐름을 타는 것이다. 최대한 그 사람의 흐름에 맞춰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힘든 일이다. 내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지점에서 충돌할 경우, 나는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금만 틀어져도 걷잡을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이 필요하다, 그건 거리 유지이다.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관심이 닿는 범위 안에서 풀어 주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거리를 두고 멀어지겠지만, 내 눈앞의 존재는 내 학생이다. 나와 지낸 1년이 그들에게 의미 있었으면 한다. 교사가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신념이다.
내가 취하는 자세는 방임과는 거리가 있다. 어쩌면 내가 들이는 노력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건 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 위한 일이기도 하다. 너무 깊게 개입해서 부딪히면 그 학생이 튕겨 나가는 경우도 있다.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들 중에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함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너무 깊게 개입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학생이 내 옆에서 머무를 공간을 내어준다. 내 흐름에, 속도에 너무 가까워지면 상대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곁에 있으며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상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거리에서 맴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도 나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되는 관계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인 듯하다.